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전국의 패왕, 오다 가문
일본 전국시대의 주역 중 하나가 바로 오다 가문입니다. 전국시대는 잘 몰라도 오다 노부나가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수없이 많지요. 그런 오다가문의 파란 만장한 역사를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못코木瓜/아게하쵸揚羽蝶
오다 가문의 기원
보통 오다 가문은 타이라(平) 가문의 후계로 여겨집니다. 타이라 가문은 덴노 가문의 분가로, 헤이안 말기 미나토모노(源) 가문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의 명가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오다 노부나가가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내쫓고 권세를 차지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라는게 정설이고, 실제로는 후지와라(藤原) 가문의 혈통일 것입니다.
노부나가의 기틀을 마련하다, 오다 노부히데
오다 노부히데 초상화
오다 노부히데(信秀)는 노부나가의 아버지입니다. 위에 거창하게 써놓기는 했지만 당시 노부히데의 세력은 아주 보잘것 없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오다 가문은 오와리의 수호대인데다가 오와리 자체도 상 4군, 하 4군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상 4군을 맡고 있던 오다 가문의 봉행이었던 노부히데는 세력을 길러 주군을 압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오와리를 넘보는 이마가와, 사이토와 분쟁을 거듭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통일되지 않아 잡음이 많던 오와리를 뒤로하고 그는 겨우 향년 42세로 병사합니다.
오다의 바보 아들이 권세를 잡다
노부나가가 통일한 오와리
오다 노부히데의 죽음 뒤에 노부나가가 가독을 상속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습니다. 당시 유명한 바보 양아치였던 오다 노부나가는 가신들의 신망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동생 오다 노부유키가 신망을 받고 있었지요. 여기서 노부나가는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선택을 합니다. 거성인 스에모리성과 노신들을 모조리 노부유키에게 넘겨줘 버린 것입니다. 이마가와의 지나친 압박을 막는 것을 동생에게 시켜버린 것이지요.
그는 숙부 노부미츠와 손잡고 일족인 노부토모를 토벌해 키요스성을 탈취합니다. 그리고 노부유키가 모반을 일으키려 하자, 병을 가장하고 성에 불러 주살해 버립니다.(노부유키 주살) 이복형인 노부히로가 사이토 도산과 연합해 공격해 오지만 이것 또한 막아내고 이와쿠라성의 노부야스를 굴복시키며 엄청난 단기간 내에 오와리를 정리해 갑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위험이 될 수 있는 노부미츠 등을 배신하고 암살해(노부미츠 암살) 자신만의 강력한 가신단을 만들어 갑니다.
오케하자마로 천하포무의 뜻을 펴다
노부나가의 천하포무 도장
이후 사이토 도산이 자신의 아들에게 죽자(니가라가와 전투)'미노를 오다 노부나가에게 맡긴다.'는 도산의 유언장을 들고 노부나가는 사이토 가문을 공격합니다. 하지만 이를 이마가와 가문이 가만히 보고 있을 리도 없고, 상경을 1 시도합니다.(이마가와 상경) 이에 노부나가는 오케하자마에서 빗길을 뚫은 기습을 통해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쳐버립니다.(오케하자마 전투) 여기서부터 이마가와 가문은 몰락해 가고, 기세를 탄 오다의 군세는 7년 뒤인 에이로쿠 10년 (1567년) 이나바야마성을 점령하며(이나바야마성 공방전) 미노를 손에 넣습니다. 그리고 이나바야마성을 기후성으로 개명한 뒤, 이곳을 거성으로 삼습니다.
그는 거성을 자주 바꾸었는데, 이를 통해 가신단의 지역밀착을 거의 없애 버렸습니다. 게다가 오다 사천왕을 매우 중용한 반면, 자신의 일족은 거의 기용하지 않았는데요, 오다 노부나가 특유의 합리적인 인사가 빛을 발한 것입니다. 떠오르는 태양인 그에게, 가쿠게이(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찾아오고, 노부나가는 그를 명목으로 상경을 시작합니다.(노부나가 상경) 하지만 천하포무의 뜻을 마음껏 펴는 노부나가 가문에, 요시아키와 결국 대립하게 되고, 요시아키의 공작으로 일본 전국에 반 노부나가 포위망이 펼쳐지게 됩니다.
반 노부나가 포위망을 쳐부수어버리다
살벌한 노부나가 포위망
하지만 이런 포위망으로 잠재우기에는 오다 노부나가의 그릇은 너무 컸습니다. 아자이, 아사쿠라 가문을 아네가와 전투(아네가와 전투), 가타다 전투(가타다 전투)에서 패퇴시키고, 상경하던 신겐은 노다성 공방전 이후 병세가 악화되어 죽었으며(노다성 공방전) 나가시마 잇코우 잇키도 정리하고, 시라타가하라 전투(시라타가하라 전투)에서 다케다 가쓰요리를 패퇴시키는 등 노부나가는 포위망을 하나씩 찢어 갑니다. 이 이후에도 상경을 준비하던 겐신이 죽고, 그 자식들(양자들)의 오타테의 란(오타테의 란)이 일어나고, 카가 잇코우 잇키도 정리하고, 이시야마 혼간지까지 굴복시킨 그는 가쓰요리의 껍데기만 남은 다케다 가문을 멸망시킨 뒤, 츄고쿠로 눈을 돌립니다. 하지만 그의 명운은 여기까지 였는지 오다 사천왕의 아케치 미쓰히데가 일으킨 혼노지의 변으로 한 줌 재가 되어 버립니다.(혼노지의 변)
몰락해 가는 오다 가문
혼노지와 함께 몰락한 오다 가문
오다 노부나가의 아들인 노부타다는 유능해서 노부나가에게까지 인정받을 정도였으나, 그 역시 혼노지의 변으로 인해 쓰러지고 맙니다. 야마자키 전투(야마자키 전투)에서 승리해 실권을 잡은 하시바 히데요시는 노부타다의 아들, 즉 노부나가의 손자인 산포시를 후계로 세우고, 자신은 후견인이 되어 오다 가내의 권력을 장악합니다. 이에 반발하는 노부카타와 시바타 가쓰이에를 히데요시는 시즈가타케에서 꺽어 버립니다.(시즈가타케 전투) 그리고 남은 노부오는 노부나가에게 '바보'소리를 들었던 인물이었습니다. 여하튼 그는 도쿠가와 이야에스와 결탁해 고마키, 나카쿠데 전투를 일으키나(고마키 나카쿠테 전투) 자신의 바보성을 입증하듯이 갑자기 화의해버려, 히데요시가 실권을 잡고 실질적으로 오다 가문은 몰락해 버립니다.
그리고 오다 가문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기후성을 거성으로 하던 오다 히데노부가 서군에 가담해 이야에스의 동군이 공격을 가한 기후성 공방전이 있었습니다.(기후성 공방전) 당연하게도 히데노부는 패배해 할복을 각오하나, 후쿠시마 마사노리의 설득으로 할복은 하지 않고 불가에 입문합니다. 그는 자식이 없이 죽었지만, 오다 노부오의 자손들이 살아남아 탄바 국의 카이바라 번(柏原藩)을 지키는 소 다이묘로 살아남게 됩니다.
- 다양한 설이 있긴 합니다만, 해당 항목을 참고해 주십시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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