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숨통을 뚫다, 가타다 전투와 사와산성 함락
겐키 원년(1570년) 오다 노부나가와 아자이 나가마사, 아사쿠라 요시카게 연합군이 격돌한 '가타타 전투(堅田の戦い)'가 있었습니다.
아네가와 전투(아네가와 전투)로 오미의 아자이 나가마사와 에츠젠의 아사쿠라 요시카게의 연합군에 승리한 오다 노부나가는, 이대로 나가마사의 본거지 오타다성을 공격하자는 가신의 진언을 뿌리쳐, 오타다성 근처의 토라고젠산(虎御前山)에 쌓아 올린 성채와 요코야마성(横山城)을 키노시타 히데요시에 지키게 한 것으로 끝을 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교토로 돌아오는 길에 아네가와의 전장으로부터 도망간 아자이의 가신, 이소노 가즈마사(磯野員昌) 등이 지키는 사와산성(佐和山城)을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 등에 포위하게 하고 자신은, 7월 교토에 들어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에게 견제를 다시금 시작합니다.
가타다 전투 개요도
그러나 이 시기는 요시아키의 요청에 의해 노부나가 포위망이 생겨서, 주위는 이미 적뿐인 상태였습니다. 노부나가가 상경때에 쫓아 버렸던 미요시 삼인중은 아와를 나와 셋츠에 집결해 8월 즈음에는 혼간지의 켄뇨(摂津)가, 전국의 신도에게 '타도 노부나가'를 호소해 오미에서의 잇코우잇키가 발발하게 됩니다. 게다가 이 기회를 탄 아자이, 아사쿠라군이 태세를 고쳐 세우고 교토로 향해 옵니다. 사카모토 근처로 진군하는 연합군에 우사야마성(宇佐山城)을 지키는 모리 요시니리(森可成)는, 노부나가의 남동생 노부하루(信治)와 함께 얼마안되는 군사를 일손해 역공하지만, 분전했음에도 허무하게 그 두명과 그 휘하 병사 반수 이상이 전사 한다고 하는 비극의 패배를 입습니다.(우사야마성 공방전)
이 두 명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노부나가는 교토에 흩어져 있던 군사를 집결시켜, 급히 3만의 군세를 정비하고 사카모토 방면으로 향하게 합니다. 이것을 눈치챈 아자이, 아사쿠라군은 히에이잔에 도망치고 렌라쿠지에 숨게 됩니다. 그를 쫓는 노부나가는 렌라쿠지에 무장해제해 중립의 입장을 취하라 하지만, 히에이잔렌라쿠지는 이것을 무시합니다. 게다가 10월에는 아사쿠라 요시카게 스스로, 새로이 2만의 군세를 인솔하고 에츠젠으로부터 진군하는 사태가 되어, 이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국시대에 큰 영향력을 가졌던, 히에이잔렌라쿠지
노부나가 자신도 근처의 우사산성에 들어가 결전을 준비합니다. 이렇게 해서 겐키 원년(1570년) 현지의 토호를 아군에게 붙인 노부나가의 중신 사카이 마사히로(坂井政尚)가 선봉으로 가타타에 친 진으로 들어갑니다. 큰 맥락에서 보면 가타타는 히에이잔의 북동쪽으로 여기를 차지하면, 아사쿠라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 일은 누구보다도 아사쿠라군이 잘 알고 있었지요. 현지의 잇코우잇키와 제휴한 아사쿠라군은 즉석에서 가타타 진을 기습합니다. 진에 들어와 얼마 되지 않은 때의 기습인데다가, 지키는 군사가 불과 1,000이었기 때문에, 마사히로 이하 병사들은 분전하지만 대패하고맙니다.
시와산성의 모습입니다
그 후도, 소규모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지만, 이미 노부나가의 주위는 적이 포위한 상태였습니다. 한편의 요시카게라고 해서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대로 겨울을 맞이하는 것은 여러모로 좋지 않았지요. 결국 오오기마치덴노에 의해 전투 중지의 윤지가 내려져 양측은 강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강화는 새해가 되고 곧바로 찢어지지요. 니와 나가히데가 둘러싸고 있던 사와산성, 강화 후에 요코야마성에 있던 히데요시가 '사와산성은 나가히데의 포위로 함락 해 성주 이소노 가즈마사는 노부나가의 산하가 되었다' 라는 거짓말 정보를 오미 일대에서 계속 흘렸습니다. 그 정보를 믿은 나가마사는, 농성을 계속하는 사와산성에 병량의 보급을 끊어, 자신의 가신을 스스로의 손으로 궁지에 몰아넣어 버리고 있었습니다.
2월이 되어 병량이 바닥난 가즈마사는 결국, 성문을 열어 정말로 항복합니다. 이것으로 노부나가는 본거지의 기후와 교토와의 동맥을 확보한 일이 됩니다. 다만, 방금전도 말했듯이, 현재로서는, 노부나가의 적은, 아자이, 아사쿠라만이 아닙니다. 이들을 어떻게 노부나가가 해쳐 나가는지, 지금부터 같이 보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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