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시즈가타케 전투(1) 누가 천하를 쥘 것인가?
덴쇼 11년(1583년) 봄 시바타 가쓰이에의 키타노쇼 출진을 들은 하시바 히데요시가 결전을 대비해 오미 사와야마성(佐和山城)에 들어가 시즈가타케 전투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덴쇼 10년(1582년) 6월 2일, 천하를 눈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혼노지의 변)에서 죽은 뒤에, 야마자키 전투(야마자키 전투)로 아케치 미쓰히데를 토벌해 주군이 원수를 갚은 하시바 히데요시는 그 뒤에 열린 오다의 계승자를 결정하는 키요스 회의(키요스 회의)를 유리하게 진행시켜 후계자를 본인이 추천하는 노부나가의 손자 산포시로 결정하고 후견인이 됩니다. 물론 이에 오다의 가로 시바타 가쓰이에, 칸베 노부타카 그리고 다키가와 가즈마스는 큰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기후성의 노부타카는 기후성의 산포시를 아즈치성으로 옮겨달라는 히데요시의 청을 무시하기 까지 해 긴장이 팽팽해 지나, 덴쇼 10년(1582년) 말 결국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등을 보내 관계를 수복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는 겉모습 뿐인 평화였지요.
당시상황 모식도 (노부타다가 아닌 노부타카 입니다 ㅠㅠ)
노부타카의 본거지인 키타노쇼우(北ノ庄)는 폭설 지대인 엣츄에 있었기에 키요스 회의에서 정해진 가쓰이에의 영지의 최남단인 나가하마성에 원군을 파견하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가쓰이에는 노부나가가 기나이를 수중에 넣었을 때 이시야마 혼간지나 여러 무장들이 포위망을 친 것처럼, 아키의 모리나 시코쿠의 초소카베와 함께 히데요시 포위망을 만들기 위한 시간 벌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히데요시도 여간내기는 아니지요. 이 가쓰요리의 제스처의 의도를 파악한 히데요시는 의논을 해 보겠다며 시간을 법니다.
나가하마성의 모습
히데요시는 얼마 뒤 츠츠이 준케이(筒井順慶), 이케다 쯔네오키(池田恒興)와 함께, 5만의 대군을 인솔해 나가하마성을 포위해 버립니다. 당연히 겨울에 에츠젠으로부터의 원군을 기대할 수 없는 나가하마 성주 시바타 카츠토요(柴田勝豊: 가쓰이에의 양자)는 분전했지만, 반달도 채 지나기 전에 함락 되어 버립니다. 히데요시군은 이어 노부타카의 기후성을 목표로 정합니다. 이나바 잇테쓰(稲葉一鉄)등 미노의 쿠니진들은 이미 히데요시의 편이었습니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차남 오다 노부오의 이름을 빌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노부오에 반대하는 것은 죽은 주군인 노부나가에 반하는 역도가 되는 것이지요. 미노의 쿠니진들도 노부오의 서명이 있는 편지를 보고 히데요시에 붙게 된 것입니다. 결국 노부타카는 항복하게 됩니다.
이런 히데요시에게 저항한 것은 다키가와 가즈마스(滝川一益)였습니다. 그는 카메야마성(亀山城)을 시작으로 미네성(峯城)이나 코우다성(国府城), 세키성(関城)등을 점령해 히데요시와의 국경선의 수비의 강화를 합니다.
현재의 시즈가타케
겨울이 가고 봄이 온 덴쇼 11년(1583년) 초 마에다 토시나가(前田利長)를 선봉으로 사쿠마 모리마사(佐久間盛政),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등 호쿠리쿠에서 선발대가 출진합니다. 그리고 나서 드디어 가쓰이에가 키타노쇼에서 출진했습니다. 한편, 이세에서 고전하던 중에 가쓰요리의 출진 소식을 들은 히데요시는 곧 바로 오미를 목표로 해서 사와 야마시로에 들어갑니다. 히데요시 아래에 모인 병사는 4만이고, 그에 대항하는 가쓰이에의 병사는 2만이었습니다.
요고호(余呉湖)의 북쪽에 있는 최전선의 교우이치산(行市山)에 모리마사가 진을 치고, 가쓰이에도 후방의 우치나카 오야마(内中尾山)에 진을 칩니다. 그날 히데요시는 나가하마성으로 이동해 양자는 남북으로 대립 상태가 됩니다. 가쓰이에는 모리와 쵸쇼카베에 동맹을 요청하고, 그들의 대답을 기다리면서 주변에 성채를 쌓아 올리기 시작합니다. 한편, 히데요시가 오미에 간 일로, 여유가 생긴 가즈마스는 노부타카와 결탁해 히데요시측의 고쿠진에게 공격을 개시합니다. 이로 인해 2만의 군세를 기후로 돌린 히데요시를 보고, 이때를 호기라 판단한 가쓰이에는 공격을 결의합니다. 사쿠마 모리마사의 선제 공격에 의해서, 시즈가타케 전투의 포문이 활짝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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