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쵸소카베 모토치카의 아와 평정
쇼우즈이성 공방전
덴쇼 10년(1582년), 쵸쇼카베 모토치카가 소고 마사야쓰(十河存保)의 쇼우즈이성(勝瑞城)을 점령해 아와를 평정 했습니다.
소고 마사야쓰(十河存保)
덴쇼 3년(1575년) 7월의 시만토가와 전투에 승리해, 토사를 통일해 기분이 좋던 쵸쇼카베 모토치카(長宗我部元親)는 3개월 전의 나가시노의 전투에서 다케다 가쓰요리에게 승리해 역시 기분이 좋았던 오다 노부나가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노부나가에게 모토치카는 시고쿠 통일의 허가를 얻어 냅니다. 그는 조속히 아와에 진공을 개시하고, 동시에 사누키에도 출병해 서서히 그 세력범위를 넓혀 갔습니다. 그런데, 노부나가가는 갑자기 말을 바꾸어 사누키와 아와의 북쪽은 미요시 야스나가(三好康長)에 주려고 한다며 초소카베는 토사와 아와의 남부만을 지배하라고 합니다.
혼노지의변 당시 니와 나가히데의 시고쿠 정벌군
그리고 야스나가를 아와 북부의 쇼우즈이성으로 보냅니다. 야스나가는 원래 아와의 이와쿠라성의 성주였던 인물로 현재는 노부나가의 부하가 되어, 카와치에 영지를 가지고 있는 무장이었습니다. 즉, 노부나가는 시코쿠를 완전하게 자신의 발아래 두려고 생각을 바꾼 것입니다. 물론 이를 그냥은 납득할 수는 없는 모토치카는 철저히 항전할 각오를 하고 노부나가는 삼남의 간베 노부타카와 중신 니와 나가히데를 시코쿠에 보내려 합니다. 그러나 출진직전, 혼노지의 변(혼노지의 변)이 발발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시고쿠로 갈 수 있을 리도 없고, 시고쿠 정벌군은 카와치로 향했습니다.
당시 시고쿠 상황
텅 비게 된 쇼우즈이성을 지키는 것은 야스나가의 형의 손자에 해당하는 소고 마사야쓰였습니다. 한편, 오다가의 이변을 알게된 초소카베는 곧바로 쇼우즈이성을 공격하려 카이후성(海部城)에 들어온 장남 노부치카(信親)를 달래고, 오코우성(岡豊城)에서 차분히 작전을 짭니다. 차분히, 군의를 거듭한 모토치카는 8월 말에 해안가와 요시노가와(吉野川)를 따라 두 패로 나뉘어 출진합니다. 요시노가와의 남쪽 기슭에서 합류한 2만 3천의 대군의 지휘를 맡은 것은 모토치카의 남동생 코소카베 치카야스(香宗我部親泰)였습니다.
전투개요
한편, 쇼우즈이성을 나와 쇼코사(勝興寺)에 본진을 두어 마사야쓰가 인솔하는 미요시군은 약 6천이었습니다. 얼마 뒤 이들은 나카토미가와(中富川)를 사이에 두고 결전이 시작 됩니다. 먼저 강을 넘으려는 미요시군을 향해 미리 구축했던둑을 파괴해 상류에서 물을 단번에 흘려 적의 사기를 크게 낮추고 도강한 초소카베군은 장렬한 전투 중에 미요시의 유력 무장들을 모조리 죽여 버립니다. 이에 마사야쓰는 혼란 상태에 빠진 미요시군을 이끌고 쇼우즈이성으로 도망쳐 농성을 시작합니다. 쵸쇼카베군은 본격적인 농성전 전에 주변의 이치노미야성(一宮城), 우시키교우성(牛岐城)등의 성을 점령한 뒤 쇼우즈이성을 포위했습니다.
드디어 시고쿠를 통일한 모토치카
그러나 당분간의 호우가 내려, 성은 쉽게 점령되지 않고 약 1개월 정도 지난 뒤에 마침내 쇼우즈이성이 함락 당합니다. 마사야쓰는 사누키의 토라마루성(虎丸城)으로 피했습니다. 이로 인해 쵸쇼카베 모토치카의 아와 평정이 끝났습니다. 노부나가의 죽음으로 휘청거리는 오다의 판세를 잘 읽은, 모토치카의 판단이 아와 평정을 이끌어 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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