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가즈마스, 패퇴하다 간나가와 전투
덴쇼 10년(1582년) 6월 18일, 주군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을 알아 상경을 시도하는 다키가와 가즈마스와 이 기회에 우에노를 강탈하려고 하는 호조 우지마사가 간나가와(神流川)에서 격돌했습니다.
다키가와 가즈마스(滝川 一益)
덴쇼 10년의 3월에 다케다 가쓰요리를 할복시킨 오다 노부나가(다케다가 멸망하다) 노부나가는 우에노 우마야바시성(厩橋城)을 다키가와 가즈마스에게 지키게 해 구 다케다의 영지를 맡깁니다. 고슈(甲州)의 위협이 없어진 노부나가는 이제 에치고의 우에스기의 세력권내에 있는 호쿠리쿠 제패를 향해서 힘을 쏟습니다. 선대의 우에스기 겐신의 죽음으로 인해 일어난 후계자 분쟁 오타테의 란(오타테의 란)으로 인한 혼란을 틈타, 서서히 북으로 진공하여 간 오다군 호쿠리쿠 정벌군의 시바타 가쓰이에에게, 후계자 자리를 차지한 우에스기 카게카쯔가 호쿠리쿠의 최전선을 사수하기 위해 원군으로 참전하려 합니다.
당시 상황
이것을 본 가즈마스는 성주가 부재중인 우에스기의 본거지 카스가야마성을 공격하려 하고, 이에 당황해 카게카쯔가 본거지로 돌아와 고립된 호쿠리쿠 우오츠성은 호쿠리쿠 정벌군의 공격에 의해 점령 당합니다.(우오츠성 공방전) 그러나 이 전날 사실 노부나가는 혼노지에서 눈을 감았었습니다.(혼노지의 변) 이에 히데요시는 급히 돌아오고(츄코쿠 대귀환), 이에야스는 급히 미카와로 도망칩니다(이가코에).
우마야바시성에서 주군이 죽은 소식을 들은 가즈마스는 곧바로 1만 8천의 군세를 인솔해 상경하려 성을 나옵니다. 그러나 노부나가의 죽음은 곧바로 우에노와 인접한 호조에도 전해집니다. 당연하게도 호조 우지마사는가즈마스에게 편지를 보내 정세를 살피는 한편으로, 우지마사의 아들 우지나오가 쿠라가노에 진군 해, 오다군의 동향을 살핍니다.
전황 전개
그리고 드디어 덴쇼 10년(1582년) 6월 18일, 가즈마스는 간나가와를 건너 우에노에서 무사시의 혼죠하라(本庄原)로 이동하고 본 것은 호조 우지마사, 우지야쓰 부자가 인솔하는 5만의 군세였습니다. 처음은 가즈마스 측이 우위로 전투가 진행되어 호조의 유명한 무장이 차례차례 목숨을 잃어 갔습니다. 하지만 수로 세배가 넘는 호조군은 절반의 군세를 가즈마스군의 후방으로 보내 전후로 협격 해, 서서히 형세는 역전되어 갑니다. 게다가 가즈마스가 우에노 우마야바시성을 명도받은 직후여서 가즈마스가 인솔하고 있는 군세 중에는 원래 호조의 군세가 상당한 수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의욕이 없어 상황이 이렇게 되자 퇴각해 패배를 당해 버립니다. 전투는 19일까지 계속되었습니다만, 이제 그 무렵에는 가즈마스군은 패배하고 패배해, 반대로 기세를 탄 호조군은 우에노의 시골까지 진공해 갑니다. 결국, 가즈마스는 시나노를 경유해 본거지인 이세 나가시마로 도주합니다. 이 뒤로 벌어진 오다군의 실세를 누가 잡는가에서 가즈마스가 완벽하게 탈락한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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