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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겐신을 이을 자, 과연 누구인가? 오타테의 란

일본 전국시대;

겐신을 이을 자, 과연 누구인가? 오타테의 란



 덴쇼 7년(1579년) 우에스기 겐신의 후계자를 두고 오타테의 란이 일어나, 그 최종 결전 오타테 공방전이 있었습니다.



오른쪽부터 카게카츠, 카게토라, 마사시게


 덴쇼 6년, 세상을 떠난 우에스기 겐신(겐신 사망)은 비사문천의 화신이여서 그랬는지 여성과 동침하지 않아 자식이 없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겐신이 여성이었다고까지 말하지요. 아무튼 그에게는 누이 센토우인(仙桃院)의 아이 카게카츠(景勝), 호조 우지마사의 동생 카게토라(景虎), 노토의 하타케야마의 마사시게(政繁), 세 명의 양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경을 결의해 천하를 노리는 겐신은 후계자가 누구인지 지목하지 않았기에, 후계자 분쟁의 불씨는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합니다. 하타케야마에서 양자로 들어온 마사시게는 중신 카미죠(上条)가를 이었기에, 케게카츠와 카게토라 사이에 후계자 분쟁이 발발합니다.


  겐신이 죽기도 전에, 쓰러지자마자 카게카츠는 재빠르게 행동해 우에스기의 본거지 카스가야마성을 점거해 버리고, 겐신이 자신을 후계자로 지목했다고 합니다. 이에 당연히 카게토라는 반발하지요. 사실 겐신은 이름이 여러번 바뀌었는데, 겐신이라는 법명을 자칭하기 전에 '카게토라'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어, 정통성에서 보면 그도 만만찮았습니다. 결국에 오오바에서 카게카츠파와 카게토라파가 격돌하게 되 에치고는 두 동강이 나 서로 싸우게 됩니다. 


카스가야마

 카게토라는 군사를 이끌고 카게카츠가 있는 카스가야마성을 포위하고 주변의 민가를 태운 뒤 포위해 버립니다. 카게토라는 겐신이 양자로 들어갔던 야마노우치 우에스기가의 우에스기 노리마사가 거주하던 오타테의 노리마사관에 거점을 잡고,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 가지요. 게다가 카미죠가를 이은 마사시게역시 카게토라를 지지해 카게토라의 기세는 날이갈수록 커졌습니다. 사실 포위를 하면 당하는 측의 물자가 떨어져야 하는데, 겐신은 일설에 의하면 통념과는 다르게 전투보다 내정에 능했다는 의견이 있을 만큼 카스가야마에는 어마어마한 물자가 쌓여있었습니다.


 카게카츠는 이 돈을 이용해 다케다 가쓰요리를 끌어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평행을 맞춘 두 세력의 다툼은 계속되어, 오타테도 카스가야마도 많은 상처를 입게 됩니다. 덴쇼 7년 봄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카게카츠는 오타테에 총공격을 가합니다. 장렬한 전투 끝에 오타테는 점령당하고 카게토라는 겨우 탈출해 형이 있는 오다와라성으로 대피하다 카게카츠군에 추격당해 사메가오성(鮫ヶ尾城)으로 도망치나, 포위당해 그 안에서 할복하고 맙니다. 


 처음에는 인질로 카스가야마에 들어온 카게토라였지만, 겐신의 옛 이름을 받을 만큼 사랑받았다고도 합니다. 상당히 능력있는 인물로, 일설에는 카게카츠는 관동관령으로서의 야마노우치 우에스기를 잇고, 카게토라에게는 전국 다이묘로서의 우에스기가를 잇게 하려고 했다고 합니다만, 죽은자는 말이 없고 후계분쟁으로 인해 우에스기는 크나 큰 상처를 입고 맙니다. 덕분에 노부나가는 에치고를 걱정하지 않고 서쪽에 집중하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