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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오다 노분나가, 카가 잇코우 잇키를 종결시키다 가나자와고보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오다 노분나가, 카가 잇코우 잇키를 종결시키다

가나자와고보 공방전



 덴쇼 8년(1580년)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 시바타 가쓰이에(柴田勝家)와 사쿠마 모리마사(佐久間盛政)가 카가 잇코우 잇키의 거점 가나자와고보(金沢御坊)에 돌입해 약 100년간 계속 된 카가 잇코우 잇키가 막을 내렸습니다.


가나자와고보


 우에스기 겐신이 급사해 약 2년간에 걸쳐 전개된 후계자 분쟁(미타테의 란)으로 인해 우에스기 산하의 호쿠리쿠의 여러 장군들은 카게카츠와 카게토라의 세력 중 하나에 속해 전투가 있을 때마다 에치고로 향해 가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우에스기는 외적에게서 무방비 상태가 되지요. 노부나가가 이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미타테의 란의 발발 후 불과 1개월 후에는 원래 엣츄(越中) 출신인 진보 나가즈미(神保長住)가 사자 츄주(佐々長秋)의 지원을 얻어 히다 산중을 지나 엣츄에 침입합니다. 또 그해 여름에는 겐신에 패배해 나나오성을 빼앗긴 쵸우 쯔라타쯔(長連龍)와 쵸우 쯔구쯔라(長続連)부자가 시바타 가쓰이에의 지원을 받아 진격을 개시합니다. 게다가 가을에 노부나가 직속의 중신 사이토 신고(斉藤新五: 사이토 타쯔오키의 동생)이 오와리, 미노의 군세를 인솔해 진공해 엣츄의 지성을 차례로 점령 해 갑니다.


 덴쇼 7년(1579년) 봄 패배한 카게토라의 할복에 의해, 간신히 미타테의 란이 임종을 보이기 시작해 드디어 카게가츠는 우에스기가를 이어 받지만, 이미  엣츄의 여러 무장은 우에스기가에서 떠나 오다군은 거의 싸우지도 않고 엣츄의 대부분을 수중에 넣어 버립니다. 오다세에 있어서는, 이 이식하지 않는 럭키인 전개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10년에 이르는 이시야마혼간지와의 전투(텐노지 전투)가 오우기마치덴노와 묘우코우니(妙向尼: 모리 란마루의 어머니)가 중개해 강화를 타진하게 되자 노부나가는 아직도 계속 되고 있는 카가 잇코우 잇키의 토벌에 집중하려 합니다.



 엣츄에 진군한 군세에 가세해 시바타 가쓰이에, 사쿠마 모리마사 등 1만 5천을, 카가로 진공시키는 노부나가, 카가 잇코우 잇키(카가의 잇코우잇키)는 이떄까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 본거지 가나자와고보는 (고보는 절을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가나자와성으로 불릴만큼 견고한 구조였지요. 여기에 걸출한 무장들이 머무르고 있었기에, 잇코우 잇키는 일개 농민의 반란 세력이 아닙니다. 하지만 가쓰이에와 모리마사는 주변의 지성들을 점령해 가나자와를 고립시키고, 결국에 점령해 버립니다. 이를 본 노부나가는 공을 치하하며 가나자와고보를 모리마사에게 내려주지요. 모리마사는 성의 이름을 오야마성(尾山城)으로 고치고 나머지 잇코우 잇키를 토벌해 100년간 이어진 혼간지의 나라는 하루아침에 재가 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