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카가 잇코우 잇키의 종결, 토리고에성 공방전
덴쇼 8년(1580년) 아직 남은 카가 잇코우 잇키의 거점 토리고에성을 시바타 가쓰이에가 함락 시켰습니다.
토리고에성
장장 10년에 걸쳐 전개된 오다 노부나가와 이시야마 혼간지의 전투는 한 때 우에스기 겐신이 참여하거나 모리의 수군이 진출하거나 아라키 무사시게의 반란 등으로 고생하던 노부나가지만 겐신의 사망, 철갑선의 건조, 덴노의 칙명 등으로 위기를 극복해 냅니다. 그리고 나서 덴쇼 8년 노부나가는 시바타 가쓰이에를 시켜 카가의 잇코우 잇키 진압을 명하고, 가나자와고보가 점령당하며(가나자와고보 공방전) 카가와 잇코우 잇키는 일단락 됩니다. 그러나 본거지가 점령당했다고 해서 끝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여러 지역에서는 잇코우 잇키의 세력이 발호하고 있었습니다.
이 잔당들은 '야마노우치중(山内衆)' 이라고 불렸습니다. 그 말 그대로 그들은 하쿠산 산기슭에에 사는 문도들이었습니다. 오비카와(大日川)와 테도리가와(手取川) 사이에 있는 토리고에산(鳥越山)에 성을 쌓아, 여기를 거점으로 저항을 계속했습니다. 그 사이에 이들의 정신적 지주인 이시야마혼간지가 노부나가에 사실상 항복하고, 이시야마혼간지를 철거함으로서 이시야마 전투가 종결했습니다. (이시야마 전투 드디어 종결하다)그러나, 토리고에성은 니노마루, 산노마루등을 갖춘 견고한 산성이여서 가쓰요리는 공락에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결국 가쓰요리는 토리고에 성주 스즈키 테와노카미(鈴木出羽守)와 그 일족에게 강화를 요청해, 회담장으로 꾀어 토벌해 버립니다. 이에 토리고에성은 대장을 잃어 점령당하고 말지요.
스즈키 테와노카미
하지만 야마노우치중의 생존자들은 다음 해 다시 봉기 해 토리고에성을 탈환해 한층 더 저항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덴쇼 10년(1582년) 노부나가군의 소탕 작전에 의해 점령당해 잡힌 300명의 문도는들은 전원 책형에 처해졌습니다. 노부나가에게 철저하게 당한 이 주변의 마을들에서는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고 당분간, 작물도 여물지 않는 불모의 땅이 되었다고 합니다. 토가시 마사치카(富樫政親)를 할복에 몰아 넣어 혼간지 문도가 통치하는 나라 카가 잇코우 잇키는 마침내 100년에 걸치는 역사의 막을 닫았습니다.(농민들의 국가? 카가의 잇코우잇키)
노부나가는 이시야마 혼간지의 전투 말고도 히에이잔 렌라쿠지 토벌(히에이잔 렌라쿠지 토벌) 등으로 인해 종교를 탄압했다는 이미지가 없잖아 있습니다만, 실제로 히에이잔 렌라쿠지 토벌이 있었는가도 의문이며, 혼간지와도 강화를 맺은 뒤에는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크리스트교 탄압에 비교하면 크리스트교에 대해서도 상당히 개방적이었지요. 노부나가의 이런 일련의 행동들을 보았을 때, 그가 진정으로 원하던 것은 정교분리였습니다. 당시의 종교는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당연했지요. 이는 종교의 타락과 정치에 혼란을 낳았습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본인의 권력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 정교분리를 어느정도 단행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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