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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다케다 멸망의 서곡, 타카마 카미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다케다 멸망의 서곡, 타카마카미성 공방전



 덴쇼 9년(1581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다케다 가쓰요리(武田勝頼) 부하 오카베 모토노부(岡部元信)가 지키는 토노에(遠江), 타카마 카미성(高天神城)를 점령한 제3차 타카마 카미성 공방전이있었습니다.


다케다 가쓰요리


 나가시노 전투에서 하도 심하게 패하여 아버지의 이름값을 못한다는 혹평을 비하지 못하는 다케다 가쓰요리지만, 사실 영지의 크기 자체만 두고 보면 가쓰요리 때가 조금 더 커졌습니다. 물론, 다케다 신겐이 물려준 강대한 군사력과 탄탄한 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되겠지만 말이죠. 어쨌든 이런 가쓰요리의 영지 확대의 상징이 도토미와 스루가의 국경에 있는 타카마 카미성이었습니다. 이 성은 원래 오가사와라(小笠原氏)가의 거성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이에서 남쪽에 진공하려는 다케다에 있어서는, 몹시 탐나는 성이여서 신겐은 몇번이나 공격했지만, 아무리 공격해도 점령할 수 없었던 성입니다.


  덴쇼 2년(1574년)에 가쓰요리는 타카마카미성을 점령합니다. 아버지의 드높은 이름에 도전하려는 아들 가쓰요리에게 이 성의 점령은 그야말로 영광적인 것이었을 겁니다. 가쓰요리는 용장으로 이름높은 오카베 모토노부에게 이성을 맡깁니다.  그러나, 다음 해의 덴쇼 3년(1575년)에 일어난 나가시노 전투(나가시노성 공방전)에서 남쪽의 중요한 거점 나가시노성을 빼앗기자, 가쓰요리의 입장은 흔들리게 됩니다. 게다가 덴쇼 6년(1578년)에 우에스기 겐신이 죽어(겐신 사망) 천하의 정세는 노부나가에게로 돌아가, 가이의 중심에서 먼 곳에 있는 타카마 카미성의 유지가 어려워졌습니다. 덴쇼 7년(1579년) 아내 쯔키야마도노(築山殿)와 아들 노부야쓰를 죽여(도쿠히메의 기구한 인생) 이야에스는 다케다에 칼을 들이 댑니다.




 타카마 카미성을 노리는 이에야스는 본인답게, 신중하게 신중을 거듭해 진군합니다. 덴쇼 8년(1580년)에는 이 성을 공략하기 위해 주변의 산에 여섯채의 쯔이노시로(対城: 공격을 위한 지성)를 구축해 깊은 해자와, 몇 겹이나 목책을 쌓아 올립니다. '새도 지나가지 못한다'고 칭해진 이 포위망에, 이야에스는 가쓰요리의 원군에 대비해 파수병을 배치합니다. 성을 지키는 모토노부 이하 약 1,000명의 성병은 탄약도 자금도 옮길 수 없는 상태의 농성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용장 모토노부는 이 상황에서도 도쿠가와군 공격을 격퇴하며 버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는 데다가, 가쓰요리의 원군도 바랄 수 없는 상황이기에, 모토노부는 결의를 굳힙니다. 


 10개월 이나 도쿠가와를 막은 덴쇼 9년(1581년) 봄의 어느날 밤,  타카마 카미시성의 성문이 열립니다. 사실 타카마 카미성은 해발 132 m의 산 위에 세운 산성입니다. 그 봉우리는 동쪽과 서쪽으로 나누어져 있어 각각 독립한 구조였습니다. 동쪽에는 성의 중심 건물, 어전곡륜, 산노마루가 있었고 서쪽으로는 성의 외곽, 니시노마루 등이 있었지요. 그리고 양쪽의 경사면은 모두 가팔랐습니다. 야음을 틈타 두 부대로 나뉜 오카베군 중 성주 오카베 모토노부가 인솔하는 500은 니시노마루에서 출격해 북서측의 해자를 넘어 오오쿠보 타다요(大久保忠世)부대를 기습합니다. 이에 놀란 오오쿠보대는 잠시 퇴각하나, 여기에 남쪽을 지키던 오스가 야스타카(大須賀康高)의 참전으로 오카베군을 다시 성으로 몰아내고, 이 전투 중에 성주 모토노부는 전사합니다.


타카마 카미성(高天神城)


 한편, 오카베대와 동시에 성의 중심 건물에서 북서를 향해 출격 한  500의 군사를 맡은 에마 나오모리(江馬直盛)의 군세는 절벽을 밧줄로 내려 갔지만 그곳에는 도쿠가와가 구축한 이중의 해자가 있는데다,  이시카와 야스미치(石川康道) 부대와 격돌합니다. 여기에 그 근처를 지키고 있던 미즈노 가츠나리(水野勝成), 그 동쪽을 지키고 한 스즈키 시게토키(鈴木重時) 부대가 이시카와대에 가세 합니다. 도쿠가와분은 5,000 자그마치 에마대와 10배의 병력차이가 나지요. 결국 이곳에서도 다케다측이 패배했습니다.


 이러자 도쿠가와분의 정면 부대인 마츠다이라 야스타다(松平康忠: 이에야스의 의동생)가 인솔하는 부대가 성을 공격하고 성내에 침입해, 퇴각했던 오카베대의 생존자를 토벌합니다. 이렇게 해서 타카마 카미성은 점령당합니다만, 이 성을 지키던 성병중 살아남은 50명은 이 소식을 가쓰요리에게 전달하라는 사명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 근처는 신중하기로 이름난 이야에스가 직접 쌓은 포위망, 결국 그들은 목숨을 걸고 탈출해 겨우 11명만이 살아남아 가쓰요리에게 이 소식을 전달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가쓰요리는 장렬한 타카마 카미성의 공방전에 그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나가시노 전투로 기울었던 다케다에 펀치를 날린 이번 전투의 1년 뒤, 다케다는 커다란 역사의 변환점에 서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