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미미가와 전투(3)
시마즈의 츠리노부세 작전, 오오토모를 괴멸시키다
덴쇼 6년(1578년), 타카기카와 전투로 시작된 오오토모 소린과 시마즈 요시히사세의 미미가와 전투가 본격적으로 겨격화 됩니다.
사츠마, 오스미를 지배하는 시마즈 요시히사에게, 후유가 남부를 빼앗긴 이토 요시스케(伊東義祐)가 분고의 오오토모 소린(大友宗麟)에게 구원을 청해 그것을 듣고 후유가 탈환을 목표로 하는 오오토모군과 이를 저지하기 위해 출진한 시마즈군이 싸운 미미가와 전투의 처음은 타카기카와의 기습전(타카기카와 전투)으로, 시마즈의 대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미마가와 전투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습니다.
대패의 반성과 전략 수립을 위해 열린 오오토모군의 군의는 좀처럼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다키타 시게카네(田北鎮周)가 이른 아침의 돌격으로 설욕을 주장했고, 사에키 소우텐(佐伯宗天)은 주군인 오오토모 소린의 의견을 들어야한다고 주장 했습니다. 결국, 총대장 다와라 시게쓰나(田原 紹忍)는 참모인 쯔노쿠마 세키소우(角隈石宗)도 돌격에 반대했었기 때문에, 시게카네의 의견은 기각되고, 소우텐의 의견이 체택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군의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은 호시노 시네타게(星野鎮種)는 사실 이즈음 시마즈군에게로 은밀히 등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군의의 결과도 흡족하지 않았던 시게카네는 병사들과 술을 먹어 사기를 높이고, 다음날 아침 자신의 군사를 이끌고 마음대로 돌격해 버립니다.
이들이 목표로 하는 것은 타카기가와와 토카와의 사이에 진을 친 혼고우 히사모리(北郷久盛)였습니다. 갑작스런 습격에 히사모리의 진은 대처하지 못하고, 당황해 후퇴를 개시해 타카기카와를 넘어 패주 합니다. 이를 계속해 추격 하는 시게카네의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곤혹스럽게 살피던 소우텐이 아군의 우세함을 보고 결국 참여해 함께 혼고우의 군세를 추격 합니다. 이렇게 되자, 나머지의 오오토모군도 공격에 참여해 갑니다. 그것을 돈대에서 느긋히 내려다 보는 시마즈의 총대장 시마즈 요시히사는 작전도 없이, 전열도 정비하지 않고 마구 추격 하는 오오토모군을 보고 빙긋 웃으며 작전을 개시합니다.
이것이 바로 츠리노부세(釣り野伏せ)입니다. 츠리노부세는 '낚시 복병'이라는 뜻인데요, 정확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우선 낚시의 미끼 역할을 하는 부대가 적에게로 향합니다.
2, 일단, 진 척을 하고 퇴각하지요.
4, 원하는 전장에 까지 적을 유인합니다.
3, 이를 추격하는 적 부대에, 숨어있는 복병 두 부대가 측면에서 공격하고, 도망치던 낚시 부대가 정면에서 공격합니다.
이렇게 해서 세 방향에서 협격당한 적의 부대는 무참히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사실 이 전략은 어느 정도 적의 방심이 필요한 전략입니다. 하지만 오오토모군은 보기 좋게 방심하고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혼고우군을 쫓는 오오토모군에 우선 이쥬우인 타다무네(伊集院忠棟)가 오오토모군의 측면을 찌릅니다. 계속 되어 요시히사의 본대가 돌격하고 거기다 시마즈 요시히로의 군세가 다른쪽 측면으로 돌입해 공격을 개시합니다. 당황해 후퇴하려는 오오토모군이었지만, 그 뒤는 건넌지 얼마 안되는 타카기가와였기 때문에 여기에 빠져 죽는 병사들이 속출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전개 된 전투는 다키다 시게카게, 사에키 소우텐, 쯔노쿠마 세키소우이 차례차례로 전사 해 버렸고 호시노 시네타게는 움직이지 않았던 군대 전원을 데리고 투항합니다. 총대장 시게쓰나와 어떻게든 살아 남은 오오토모의 군사들은 열심히 북쪽을 목표로 해 도망칩니다. 이 타카기가와에서 북쪽으로 25 km 정도 가면 미미가와가 있습니다. 이 미미가와가 오오토모와 시마즈 세력의 경계선이기 때문에 미미가와 너머에는 아군의 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때의 미미가와는 수량이 증가해 물살이 빨라 지나기가 어려워, 많은 병사들이 시마즈를 두려워해 뛰어내렸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무려 3,000의 병사가 미미가와에서만 목숨을 잃었습니다.
수많은 오오토모군을 집어삼킨 미미가와
이 패전의 소식은 소린이 건설하던 무지카에도 닿았습니다. 그리고 시마즈가 곧 이곳으로 향할 것이라는 소문또한 퍼졌지요. 실제로 시마즈는 미미가와까지 추격한 뒤에 군세를 돌리긴 했습니다. 이에 크리스찬왕국을 건설하던 많은 선교사나 백성이 도망쳐 버리고, 식량도 가지지 않은채 무작정 분고로 도망쳐 버립니다. 이렇게, 오오토모 소린이 꿈꾸던 그리스도의 왕국은 무너져 버립니다.
'일본 전국시대 > 역사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 전국시대; 겐신을 이을 자, 과연 누구인가? 오타테의 란 (0) | 2012.12.21 |
---|---|
일본 전국시대; 미미가와 전투(4) 오오토모의 몰락 (0) | 2012.12.21 |
일본 전국시대; 미미가와 전투(2) 미미가와 전투의 막이 오르다 타카기카와 전투 (0) | 2012.12.21 |
일본 전국시대; 오다 수군의 설욕전, 제 2차 키즈가와구 해전 (0) | 2012.12.21 |
일본 전국시대; 덴노의 칙령이 내리다 덴노와 노부나가 관계는? (0) | 2012.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