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오다 수군의 설욕전, 제 2차 키즈가와구 해전
덴쇼 6년(1578년) 오다 노부나가와 이시야마 혼간지의 전투의 승패를 결정하는 제2차 키즈가와구 해전이 있었습니다.
반노부나가 동맹도 거진 반 깨어질 무렵, 새로이 참전한 모리 데투모토의 1차 키즈가와구 해전( 키즈가와구 해전)은 오다 노부나가에게 충격을 안겨줍니다. 결국, 노부나가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 철갑선을 만들어가지요. 때마침 우에스기 겐신이 죽어(겐신 사망) 에치고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노부나가는 이시야마혼간지와 모리로 타겟을 정합니다. 하지만 돌연 아리오카성의 아라키 무라시게(荒木村重)가 반기를 들어 버립니다. 아리오카성은 혼간지에서 가까운 성이기 때문에 오다군이 해상을 봉쇄해도, 육로에서 지원을 할 수 있게 되자 노부나가는 급히 당대 천황 제106대 오오기마치 덴노를 움직여 혼간지에 강화의 칙명을 내립니다.(덴노의 칙령이 내리다) 시간을 벌어, 그 사이에 아리오카성을 함락 시킬 생각이었습니다.
덴노의 칙사가 혼간지에 도착하고 칙명을 받은 켄뇨는 모리측의 의견을 물어봐야 한다며 칙사를 물립니다. 그러나, 그 불과 이틀 후, 아직 칙사의 방문을 받지 않은 모리는 600척의 선단을 거느리고, 오사카 만에 도착하여 혼간지에 자금을 받기 위해 키즈가와 하구로 침입합니다. 당연히 노부나가의 군세는 이것을 저지하려 나서지요. 이렇게 해 덴쇼 6년(1578년) 말 제2차 키즈가와구 해전이 발발합니다. 오전 8시, 하구에 오다의 수군의 지휘를 맡은 쿠키 요시타카(九鬼嘉高)가 승선하는 기함을 시작으로 6척의 철갑선, 1척의 안택선과 무수한 군선이 등장하자, 급선회한 모리수군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재빠르게 움직여 오히려 공세를 겁니다.
오다군의 철갑선
하지만 모리수군의 침입로에는 철갑선이 놓여 있었습니다. 철갑선은 예의 1차 전투 때처럼 기습을 가해도 소용이 없는데다, 가까이 가면 18문의 대포가 발포되고, 너무 가까우면 오히려 철갑선에 부닥쳐 배가 파괴되기 때문에 게릴라전이 효과가 없었지요. 「신초코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6척의 큰 배가 적선에 아주 가깝게 다가서 대장군의 배를 깨달아, 큰 총포로 쳐부수자, 이것을 무서워 해 적은 가까이 오지 않았다.
오다군 철갑선의 구조
물론 이 기록은 오다측이므로 완벽히 신뢰할 수는 없지만, 모리 수군측의 기록은 아예없기 때문에 파악이 불가능 합니다. 심지어는 무라카미 수군이 출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무튼 모리군이 패배한 것이긴 합니다만, 그 와중에 군자금 배달에는 성공해 목적을 이루게 되지요. 하지만 해상권을 잡은 노부나가로 인해 이시야마혼간지는 곤경에 처하게 되고, 육로를 잇던 아리오카성도 함락당했습니다. 이제 명재경각의 혼간지에 의외롭게도 노부나가는 오오기마치 덴노를 사이에 두어 강화를 다시 걸고 혼간지의 명도를 요구했습니다. 카가 잇코우 잇키가 절찬 진행되고 있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인것 같습니다.
쇼군 요시아키의 요청으로 열린 전쟁이니 만큼, 그 위의 덴노의 명령은 꽤나 명분이 되는 것으로 결국 켄뇨는 노부나가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시야마 혼간지를 나오게 됩니다. 이로 인해 장장 11년에 걸친 이시야마 전투가 일단락 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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