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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야마자키 전투(1) 츠츠키 준케이, '호라가토게를 자처하다'

일본 전국시대;

야마자키 전투(1) 

츠츠키 준케이, '호라가토게를 자처하다'


 덴쇼 10년(1582년) 6월 2일에 일어난 혼노지의 변으로 인해 여러 무장들은 각자 행동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가코에(이가코에)를, 하시바 히데요시는 츄고쿠대귀환(츄코쿠 대귀환 )을 했습니다. 6월 10일 히데요시는 정오에 아마가사키(尼崎)에 도착해, 그곳의 무장들에게 자신의 아군이 되도록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히데요시의 요청에 따라 아리오카성(有岡城) 성주 이케다 츠네오키(池田恒興), 이바라키성(茨木城) 성주 나카가와 키요히데(中川清秀), 타카츠키성(高槻城) 다카야마 우콘(高山右近)이라고 하는 무장들이, 즉석에서 히데요시 측의 참전을 표명합니다. 당연히 아케치 미쓰히데는 상당한 충격을 받습니다. 셋츠중이라 불리는 그들은 오히려 미쓰히데에와 가까이 지내던 무장들이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을 때에는 반드시 자신의 편으로 참전해 줄 것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미츠히데도 히데요시와 같이 기나이의 무장에 아군이 되도록 설득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설득하던 무장 중 하나가 츠츠이 준케이입니다. 그는 여기서  '호라가토게(洞ヶ峠)를 자처한다'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츠츠이 준케이(筒井順慶)



 호라가토게라고 하는 것은 교토 남부와 오사카의 히라카타의 경계에 있는 고개의 이름입니다. 전국시대에는 울창한 나무에 둘러싸여 귀신들이 나온다는 소문이 나오는 무서운 곳이기도 했습니다. 야마자키 전투 시에 이 호라가토게에서 츠츠이 준케이가 정세를 보고 움직이지 않으며 정세를 관망했기 때문에, 지금도 일본에서는 우위인 측에 붙으려고 정세를 관찰하는 일을 '호라가토게를 자처한다'고 합니다. 분명히 지형상 호라가토케에서 전투의 정세는 확실히 보였겠지만, 아쉽게도 실제로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 호라가토케는 이미 마쓰히데의 영토로 만약 정말로 준케이가 호라가토게에 있었던 것이라면, 그 시점에서 자동적으로 미츠히데 측에 붙은 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일까요?  덴쇼 10년(1582년) 6월 11일의, 혼노지의 변으로부터 9일이 지난 시점에 미쓰히데는 준케이에게 재삼, 재사번 참전해달라는 권유를 하고 있었지만, 아직 준케이는 대답하지 않습니다. 이 날, 호라가토게에 진을 친 미쓰히데는 호라가토게에서 야마토 코오리야마성(大和郡山城)에 있는 준케이에게 마지막으로 출병을 재촉합니다. 즉 호라가토게에 있었던 것은 준케이가 아니라 미쓰히데였던 것입니다.


 사실 준케이는 미쓰히데에게서 어마어마한 도움을 받았었습니다. 시골 사무라이였던 준케이를 성장시켜 주고 지금 머물고 있는 코오리야마성의 축조를 도운 것도 미쓰히데 였기에 그는 쉽사리 돕지 않는다고 할 수 없었으나, 이미 상황은 미쓰히데에게 엄청나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일부 부하를 미쓰히데에게 보내 원조하도록 하고 본인은 히데요시에게 서원서를 보내 히데요시편임을 분명히 합니다. 그리고 정작 본인은 코오리야마에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다음날인 12일, 히데요시는 본진을 20㎞ 이동시켜 셋츠 토미타에 진을 쳐, 노부나가의 미츠오, 간베 노부타카와 오다가 중신 니와 나가히데와 합류합니다. 한편의 미츠히데는, 준케이의 대답을 듣지 못한 채 호라가토게를 나와 전장이 되는 강의 건너편의 야마자키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