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8)
이야에스, 서둘러 미카와로 돌아가다 이가코에
'혼노지의 변'의 충격적인 소식은 점차 전국으로 퍼져갑니다.
당시의 오다군 상황
전날 우오츠성을 점령한(우오츠성 공방전) 시바타 가쓰이에와 마에다 토시이에에게 노부나가가 사망했다는 소식은 이틀 뒤인 6월 4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호쿠리쿠 담당 부문의 무장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상경한다는 것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있던 장소는 노부나가의 세력권의 최전선인 국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부나가 사망의 소식을 들은 적은 사기가 충전하여 오다군을 토벌하려 하지요. 이런 상황은 우에노의 다키가와 가즈마스나, 시나노의 모리 나가요시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가즈마스는 1만 8천의 군사를 인솔해 우마야바시성(厩橋城)을 나와 상경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노부나가의 죽음을 안 호조 우지마사, 우지야쓰 부자의 공격으로 인해 금족되었습니다.
노부나가 부하의 무장들의 대부분이, 가즈마사나 가쓰이에와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단 두사람은 남들과 다른 행동을 보였으니, 하시바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바로 그 둘입니다. 히데요시는 산인 산요 담당이었는데, 이 때 빗츄 타카마츠성을 수몰시키는 도중이었습니다.(타카마츠성 공방전) 하지만 이 때 아케치 미쓰히데의 밀사가 모리군으로 가야할 것을 잘못해 히데요시군에 진에 들어왔다가 잡혀, 히데요시는 급히 모리와 강화하고 군사를 이끌고 수도로 상경하는 '츄고쿠대귀환'을 펼칩니다.
모반을 일으킨 미츠히데는 기나이를 제압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과 사이가 좋았던 무장들을 포섭하려 연락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그가 가장 경계하고 있던 것은 에츠젠의 시바타 가쓰이에와 사카이에서 시코쿠 정벌의 준비를 하고 있던 노부나가의 삼남 간베 노부타카와 그를 돕고 있던 중신 니와 나가히데 입니다. 혼노지의 소식을 들은 노부타카는 5일에 미츠히데의 사위였던 노다성(野田城)의 츠다 노부스미(津田信澄)을 죽여 버리지만 그 다음은, 혼란하는 자군의 병사를 수습하지 못해 좀처럼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한편 전날까지 사카이를 구경하고 있던 이에야스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점도 있어, 혼노지의 변이 있었던그 날에 이이모리산(飯盛山)에서 누구보다 빨리 노부나가의 죽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얼마안되는 신하를 동반한 광광을 하고 있었기에 만명이 넘는 군사를 가지는 아케치군과 부딪치면 결과는 뻔했습니다. 미카타가와라(미카타가와라 전투)이래 최대의 위기에 빠진 것이지요. 이야에스는 죽음을 각오하나, 가신의 설득에 스즈카산을 넘어 오카자키로 탈출에 성공합니다. 아마 이 가신이 핫토리 한조일 것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험난한 산을 넘는 이야에스는 험준한 산길, 야생의 맹수, 산적들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아케치 미쓰히데의 군이 걱정이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험난한 길 중에서도 가장 험난한 길만 골라서 추격을 뿌리치고 산을 넘어 갑니다. 그리고 도쿠가와의 닌자, 핫토리 한조는 예전 카가 잇코우 잇키 진압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은(가나자와고보 공방전) 이가 닌자들을 수습해 도쿠가와를 돕도록합니다. 이렇게 모인 인원은 약 200명 정도로, 이들은 후에 이야에스의 가신이 됩니다. 스즈카산을 겨우 넘은 노부나가는 시라코포에서 배를 타고 이세만을 횡단해 무사히 오카자키로 돌아옵니다. 이를 바로 이야에스의 '이가 넘기(伊賀越え)'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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