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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4) 범인은 누구인가? 히데요시 흑막설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4)

범인은 누구인가? 히데요시 흑막설

 

 혼노지의 변으로 가장 이득을 본 것은, 노부나가가 반죽해논 것을 떡으로 만든 히데요시입니다. 게다가 츄고쿠로의 원군을 요청한 것도 다름아닌 히데요시이지요.(타카마츠성 공방전)


히데요시의 요청으로 노부나가는 아즈치성에서 나왔습니다



 만약 히데요시가 노부나가에 요청하지 않았으면 노부나가는 그대로 아즈치성에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혼노지의 변은 일어날 수 없었겠지요. 이 히데요시의 원군 요청에 대해서는, '빗츄 타카마츠성에의 공격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모리의 대군이 지원하러 온다는 정보가 있어, 그렇게 되면 형세가 역전할 가능성도 있기에'보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아무튼 히데요시로부터의 그 편지가, 아즈찌에 닿은 것이 5월 15일 입니다.


 그리고, 타카마츠성을 구하기 위해, 깃카와 모토하루고바야카와 다카카게1만 5천의 군사를 인솔해 도착한 것이 5월 21일 이지요. 하지만, 이 시점에서 원군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상태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함락하기 직전의 장소에 원군 요청을 왜 한 것일까요?


 물론, 이는 히데요시의 충성심의 발로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히데요시가 성의 함락을 다 시켜논 뒤에, 노부나가가 출진해 타카마츠성을 함락 시켜 노부나가씨에게 영광을 돌리려는 것이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노부나가가 평정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은 츄고쿠 지방 만이 아니고 호쿠리쿠의 시바타 가쓰이에, 다키가와 가즈마스모리 나가요시도 각각 지방에서 원정을 하고 있던 것으로 그것만으로 중앙의 정예부대를 부르는 것은 바보나 할 짓입니다. 혹자는 너무 순조로운 츄고쿠 정벌에 오다가 위기감을 얻자 히데요시가 앓는 소리를 한 것이라지만, 노부나가가 잘나가는 부하에게 쫄을 양반이기나 합니까?


 또한 노부나가 사후의 대체에도 이상한 것이 많습니다. 일단 타카마츠성과 협상하며, 노부나가는 죽지 않았다는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물론, 이것은, 신속하게 판단해 기나이에 있는 여러 장군이, 미츠히데에 붙지 않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허나, 히데요시가 6월 5일부로, 이바라키 성주에 나카가와 키요히데에 보낸 서신에는,


주군(노부나가), 및 영주(노부타다)는 무사하게 벗어나  제제(膳所)에 피할 수 있었습니다. 후쿠다이라이자(福平左)는 세번 싸워, 비할데 없는 활약을 했다고 하니, 참으로 경사스럽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히메지로 향합니다


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이 후쿠다이라이자는, 후쿠토미 히로시 사에몬 히데카츠(福富平左衛門秀勝)의 일입니다. 그는 사실은 노부나가의 장남 노부타다와 함께 니조고쇼에서 할복 한 상태 였습니다. 그런데 이는 만약 미쓰히데가 이들의 목 보이기만 하면 끝나는 일이었기에, 히데요시로서는 엄청난 도박을 했거나, 미쓰히데가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는 이야기가 됩니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역시 츄고쿠대귀환의 성공이, 가장 불가해합니다. 소식을 듣고 불과 이틀만에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타카마츠성에서 히메지성으로 약 70km의 길을 3만의 군세가 하루하고도 반나절만에 갔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요? 물론, 군수품이나 갑옷, 무기를 따로 해로로 옮겨 행군을 빨리 했다고도 합니다. 예전에 노부나가를 혼내줬던 세토 내해의 전통적 강자 무라카미 수군이 이미 히데요시와 한 패였다는 것이지요. 그래도 이 선단의 편성을 길어야 이틀만에 끝낼 수 있었던 것은 미스테리입니다.



이게 가능하다고?



 타카마츠성의 교섭이 성립한 직후에, 노부나가의 죽음을 안 모리가 히데요시의 추격을 하지 않았던 것도, 이 츄고쿠대귀환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데, 저번에 쓴대로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반대해 추적을 단념했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후에 히데요시가 오대로에 임명하는 5명의 가신 중에 이때까지 모리의 당주인 데루모토와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있는 것이 이 때의 밀약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또 야마자키 전투에서, 노부나가의 삼남 간베 노부타카를 총대장에게 앉힌 히데요시측이, 주군의 복수를 하는 우리에게 정통성이 있다는 것을 내세워 실권을 잡은 것은 하필 시고쿠 정벌 준비를 하던 노부타카가 미쓰히데를 토벌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도 있어, 히데요시가 모든 것을 계획하지는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전투의 장소가 된 야마자키의 묘키 암자에는, 벌써 그 때, 센리큐우전승 축하를 위한 연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어 히데요시가 철저한 계획아래 주군을 모살한 것은 아닌가 라는 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설'일 뿐 정확한 증거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