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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1) 혼노지의 변의 서막이 오르다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1) 혼노지의 변의 서막이 오르다



 교토의 대궐앞에 길이 팔척( 약 110 m)의 승마장을 설치해 당대의 오오기마치 덴노의 앞에서 화려한 군사 퍼레이드를 벌인 오우마조로에(御馬揃え)에서 1년 2개월 후 오다 노부나가는 오랜만에 수도로 돌아옵니다.


 이번에 노부나가는 언제나 호위 하는 기마무사들(馬廻衆)도 동반하지 않고, 얼마안되는 시동과 측근만을 데리고 숙소인 혼노지에 도착했습니다. 허나 본거지인 아즈치에는 하시바 히데요시가 공격하는 츄고쿠 지방을 지원하기 위한 군비가 정돈되고 있었고 6월 4일에는, 그 대군을 인솔해 서쪽으로 출진할 예정이었습니다. 전날의 비가 대지를 적힌 덴쇼 10년(1582년) 6월 1일, 하카타에서 온 상인 시마이 소우시쯔(島井宗室)를 불러 노부나가는 명 다기 피로를 겸한 다과회를 개최합니다. 이에 대해서 예전에 노부나가가 별 호위도 대동하지 않고 혼노지로 간 것이 시마이 소우시쯔에게서 다기를 구매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는가에 대해서 쓴 적도 있었습니다.(노부나가의 취미)


혼노지의 모습입니다


도쿄 국립 박물관에는 한 문신의 「일기(日々記)」가 있는데, 최근 이 문신의 정체가 판명났습니다. 다름아닌 카쥬지 하루토요(勧修寺晴豊)라는 인물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덴쇼 10년 당시 조정의 움직임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해 3월에 가이의 다케다를 멸한(다케다가 멸망하다) 노부나가에 어떤 관직을 주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와 하루토요 자신이 5월에 노부나가와 만나 '정이 대장군과 태정관 중에 무엇을 원하는가?'를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이때의 노부나가는 즉답하지 않았다고 하나, 4일 출진전에는 대답을 했어야 했기 때문에 입경한 것은 아닌가? 라는 것이지요. 


 만약 이렇게 된다면 베일에 쌓여있는 아케치 미쓰히데 모반의 이유도 어느정도 이해가 갑니다. 겐지 유파를 이어받는 토키가의 출신인 미츠히데에게 당시  다이라성(平姓)을 자칭하고 있던 노부나가가 정이 대장군에 오르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저지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닌가? 라는 것이지요. 아무튼 이것도 하나의 설에 불과합니다.



혼인보 산사(本因坊算砂)



 어쨌든 이런 미츠히데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하고, 노부나가가 개최한 다과회는 저녁때부터 장남 오다 노부타다도 더해져 주연이 되어 분위기가 고조됩니다. 이윽고, 밤도 깊어져 노부타다가 숙소인 묘카즈지(妙覚寺)로 돌아가는 무렵에 주연도 폐회가 되지요. 조용한 밤을 맞이한 혼노지에서 노부나가는 혼인보 산사(本因坊算砂)와 칸시 오리켄(鹿塩利賢)의 바둑 대국을 바라봅니다. 혼인보 산사는 '고스트 바둑왕'에도 나온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 승부는 무승부로 끝나고 노부나가는 잠을 청합니다. 음력의 1일, 칠흑의 어둠속에 3 부대로 나누어진 군단은 야마시로국의 국경을 넘어, 혼노지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