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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부전자전? 오다 노부타다의 에린지 토벌

일본 전국시대;

부전자전? 오다 노부타다의 에린지 토벌


 덴쇼 10년(1582년), 오다 노부타다가 에린지(恵林寺)가 불에 타, 주지인 가이센 조키(快川紹喜) 등이 죽었습니다.


에린지(恵林寺)


 키요카즈 겐지 유파를 이어받는 토키(土岐) 출신으로 여겨지는 가이센 조키(快川紹喜), 그는 교토의 묘신지(妙心寺)등에서 사사 받아 미노의 소후쿠지(崇福寺)의 주지를 맡은 뒤에 가이의 다케다 신겐에게 초대되어 에린지의 주지가 되어 가이와 미노의 외교 관계 등을 맡은 다케다 측의 승려였습니다. 신겐에게 가이에 초대되기 이전에, 오다 노부나가가 불렀음에도 거절하고 가이에 갔기 때문에, 노부나가가 조키를 싫어했다는 소문도 있지만, 진실은 잘 모릅니다. 


 아무튼 덴쇼 10년(1582년) 다케다 가쓰요리가 덴모쿠산에서 할복해 다케다가가 멸망합니다.(다케다가 멸망하다) 그러자 많은 무사들이 성역으로서 취급 받는데다 다케다가와 친했던 에린지로 도망칩니다. 노부나가가 히에이잔 렌라쿠지를 토벌한 것도(히에이잔 렌라쿠지 토벌) 원래 아자이, 아사쿠라의 패전 무사를 렌라쿠지가 숨겨두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이번에도 상황이 비슷했습니다. 노부나가가 다케다 정벌의 대장을 맡긴 장남 오다 노부타다는 15 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사자를 맡고 있던 무장들이 에린지에 숨어 있다고 하는 소문을 우연히 들어 세 번에 걸쳐 '그 3명을 인도하라'는 편지를 썼습니다만, 조키는 이것을 모두 무시했습니다.



가이센 조키(快川紹喜)



 이 조키의 태도에 노부타다는 '대대로 관계가 있었던 가쓰요리는 할복하게 내 버려 두었으면서 그 세명은 숨긴단 말인가!'라고 격노해 우선, 츠다지로 신지(津田次郎信治)와 하세가와 요지로우(長谷川与次郎) 등에 명해 절을 포위시키고, 절안의 탐색을 시킵니다. 하지만 벌써 3명은 도망친 뒤고 절의 사람은 모두 절의 정문의 누각 위에 올라서서 농성을 펼칠 자세였습니다. 이에 노부타다의 병사들은 창 끝을 세우고, 한 명도 놓치지 않게 그들을 둘러쌉니다. 「죠우잔기담(常山紀談)」에 의하면, 조키는 제자인 미나바라(南華)에 '법이 끊어지는 일은 분하지만, 이제 도망치는 일은 불가능하니 너는 누각에서 뛰어 내리거라' 라고 해 미나바라는 재빠르게 뛰어 내리지만, 그 순간에 병사들이 창 끝을 내렸기 때문에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 후로도, 16명 정도가 뛰어 내린 뒤에 남은 조키와 84명의 사람은 자리에 앉아 합창을 시작했고, 병사들은 누각아래에 풀을 쌓아 불을 붙였다고 합니다. 덴쇼 10년(1582년) 불에 타 죽는 조키는 다음과 같은 사세구를 읊었습니다.


安禅は必ずしも山水を須ゐず

좌선해 항상 같은 산수를 바라보니

心頭滅却すれば火も自ら涼し

심두멸각하면 불도 자연스레 차가워 지는구나


  아래의 삼두멸각~ 부분은 매우 유명하기도 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혼노지의 변을 일으킨 아케치 미쓰히데역시 조키와 같은 토키가 출신으로, 이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고도 합니다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