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히데요시의 츄코쿠 대귀환
타카마츠성 공방전
덴쇼 10년(1582년) 츄고쿠 지방의 공략을 진행시키고 있던 하시바 히데요시가, 빗츄 타카마츠성을 공격했습니다.
천하통일을 눈 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는 덴쇼10년(1582년) 가이의 다케다를 멸망 시켜(다케다가 멸망하다), 드디어 남는 강적은 츄고쿠 지방뿐이었습니다. 츄고쿠 지방의 평정을 맡은 하시바 히데요시는, 덴쇼 8년(1580년)에 하리마, 미츠키성을(미키성 농성전), 다음 9년(1581년)에 돗토리성(돗토리성 점령)을 점령해 드디어 덴쇼 10년(1582년) 빗츄까지 진군합니다. 도중에 비젠 오카야마 성주 우키타 나오이에(宇喜多直家)가 아군에 되어(2차 코우즈키성 공방전) 사기 충전한 히데요시군은 타카마츠성(高松城)을 목적으로 정해 덴쇼10년(1582년)에 포위를 완료하고 총공격을 개시했습니다.
그러나 타카마츠성에서는 용장 시미즈 무네하루(清水宗治)가 환상적인 농성작전을 펼쳐, 방비가 매우 단단해 다수의 희생을 하면서도, 성을 점령할 수 없기 때문에, 무리한 공격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히데요시는 앞의 미키성이나 돗토리성과 같이 장기전으로 끌고가 점령하려는 작전으로 변경합니다. 그리고 여름이 다가오자 히데요시는 제방의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이 타카마츠성은 아시모리가와(足守川)와 누마자와연못(沼沢池)의 넓은 습지대에 둘러싸인 자연의 요충지입니다. 그 만큼 땅도 낮은 데다, 장마가 다가오고 있었기에 히데요시는 제방을 건설해 물을 빠지지 못하게 해서 수몰시키려 한 것입니다. 그리고 히데요시의 이 전략은 보기 좋게 성공합니다.
물에 잠긴 타카마츠성
그 무렵에는 깃카와 모토하루,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등 여러 무장들이 모리측 원군으로 달려 오지만, 물 속에 가라앉은 성을 눈앞으로 하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모리측은 안코쿠지 에케이(安国寺恵瓊)를 히데요시 측에 파견해 강화를 교섭하려 하나, 교섭은 좀처럼 진행되지 않습니다. 한편, 혼노지에서 노부나가를 할복에 몰아넣은 아케치 미쓰히데가 모리의 다카카게에 보낸 밀서를 전달하던 전령이, 길을 잘못해 히데요시의 진에게 들어와 잡혀 버립니다. 주군의 죽음을 알고 울부짖는 히데요시의 옆으로 살며시 웃던 히데요시의 심복 아나 구로다 간베에(黒田官兵衛)는 재빨리 기나이에 돌아가 오다의 세력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진언합니다.
시미즈 무네하루(清水宗治)의 할복
우선 노부나가의 사망이 모리에게 전해지지 않도록 가도를 봉쇄하고 강화의 조건으로서 성주 시미즈 무네하루의 할복과 빗츄, 미사쿠, 호키규를 양도하라는 조건을 내었습니다. 자금도 바닥나, 낙성 직전이었던 타카마츠성을 본 모리측은 그 조건을 받아 들여 호수 위에 뜬 작은 배 위에서 무네하루가 할복 해 전투가 끝납니다. 그 모습을 본 히데요시지만, 모리군의 철퇴를 확인할 때까지는 그 자리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때, 모리는 노부나가 사망의 정보를 알게 됩니다. 이에 광분한 모토하루는 돌아갈 채비를 하는 히데요시군에 총공격을 가하려 하지만, 남동생 다카카게가 이미 서명한 조약은 어쩔 수 없다 설득해 군을 물립니다.
오다 노부나가를 죽인 아케치 미쓰히데를 노부나가 제일의 가신 시바타 가쓰이에나 가장 큰 동맹 도쿠가와 이야에스보다 먼저 처치하면 오다의 실권을 잡을 수도 있었기에, 히데요시는 급히 군을 이끌고 진군합니다. 이것이 바로 히데요시의 '츄고쿠 대귀환(中国大返し)'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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