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노부나가의 거성, 아즈치성 불타다
덴쇼 10년(1582년) 오다 노부나가의 거성인 아즈치성이 불타 올랐습니다.
오다의 거성 아즈치성
혼노지의 변(혼노지의 변)으로 츄고쿠대귀환(츄코쿠 대귀환)을 실시해 기나이로 돌아와 미쓰히데를 덴노산에서 무찌른 하시바 히데요시(야마자키 전투)가 주군의 복수를 갚았다고 한 이틀 뒤, 오미 사카모토성()으로 귀환한 미쓰히데의 사위 아케치 히데미쓰(明智秀満)는 성으로 진군하는 오다군을 보고, 성내에 있던 미쓰히데의 재보를 빼닌 뒤 일족과 함께 할복 했습니다. 실은, 「다이코키(太閤記)」에서는 이 히데미쓰가 아즈치성에 방화했다고 합니다.
야마자키의 전투 당시 아즈치성에 있던 히데미쓰가 아케치측의 패배를 알고 사카모토성으로 향할 때에 방화했다고합니다. 이 히데미쓰는 사카모토성으로 향하는 도중 오츠에서 적에게 둘러싸였을 때, 말을 탄 채로 비와호를 건넜다고 하는 '호수 건너기(湖水渡り)'의 전설을 가지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하루에 아즈치에서 사카모토로 이동한 것은 말이 안되는데다가, 아즈치성이 불탄데다가, 이틀 후의 15일이라고 하는 설도 있어, 현재 그가 방화한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게다가 사카모토에서 항복할 때는 재물을 빼돌리고 있는데, 아즈치성은 단지 발화했다는 것도 미심쩍습니다. 물론 그만큼 급했다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아즈치성 상상도
아즈치성 방화의 범인으로 지목되는 다른 사람은 노부나가의 삼남 노부오 입니다. 루이스 프로이스의「일본사」에 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습니다.'신이 이 성을 남기는 일을 허락하지 않아 (신의 뜻으로) 노부오가 태우게 했다'라는 것입니다. 사실 선교사들은 노부나가가 크리스트교인이 아닌 것에 대해서 매우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위의 「일본사」에는, '그는 신이나 부처를 전혀 믿지 않았다. 제우스를 부정해 스스로를 신으로 칭하는 터무니없는 광기에다 악마적인 자부를 지녔다.'라고 했습니다. 예전에도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노부나가의 이런 태도는 신에 대한 부정이라기 보다는 정교분리를 꿈꾸는 것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노부오 범인설의 근거라기에는 약간 빈약한데다, 아버지의 성을 굳이 태워버릴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밖에도 약탈을 목적으로 한 일반인의 방화라던가, 낙뢰에 의한 불이었다던가, 다른 곳에 지른 불이 옮겨 붙었다던가 하는 다양한 설들이 있습니다. 아무튼 발굴 조사에서 추정한 화재의 범위를 살펴보면 아즈치성에만 불이 있었던 것으로 의도적인 방화라는 것이 정설인 듯 하네요. 프로이스의 기록에서 추정하건데 노부나가를 반대하던 크리스트 교도들이 저지른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도 듭니다. 아무튼 지금의 종교와는 다르게 당시의 크리스트교, 남만신교는 굉장히 난폭한 종교였기 때문이지요. 어찌되었던 후에도 아즈치성의 일부는 남아, 성으로 기능한 것을 보면 의도적인 방화로 성의 주요건물만이 타 버린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일본 전국시대 > 역사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 전국시대; 키요스 회의로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다 (0) | 2012.12.22 |
---|---|
일본 전국시대; 가즈마스, 패퇴하다 간나가와 전투 (0) | 2012.12.22 |
일본 전국시대; 야마자키 전투(2) 히데요시, 노부나가의 복수를 하다 (0) | 2012.12.22 |
일본 전국시대; 야마자키 전투(1) 츠츠키 준케이, '호라가토게를 자처하다' (0) | 2012.12.22 |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8) 이야에스, 서둘러 미카와로 돌아가다 이가코에 (0) | 2012.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