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시즈가타케 전투(3)
히데요시, 가쓰이에를 꺾다
덴쇼 11년(1583년), 시바타 가쓰이에와 하시바 히데요시의 사이에 발발한 오다가내 분쟁 시즈가타케 전투가 있었습니다.
혼노지에 쓰러진 오다 노부나가 사후(혼노지의 변) 미쓰히데와의 야마자키 전투(야마자키 전투)로 아케치 미쓰히데를 넘어뜨린 하시바 히데요시는 오다의 계승자를 결정하는 키요스 회의(키요스 회의)에서 노부나가의 장손 산포시를 추천하고 스스로 후견인이 되어 노부나가의 장례까지 본인이 맡습니다. 이에 시바타 가쓰이에는 노부나가의 삼남 코베 노부타카를 후계자로 추천하고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노카타(お市の方)를 아내로 맞이해 히데요시에 대항합니다. 그리고 겨울을 맞이해 에츠젠에서 움직일 수 없음을 간파한 히데요시가 반대세력을 짖누르는 도중, 봄이 찾아오자 가쓰이에는 히데요시를 토벌하러 나섭니다. 가즈마스가 후방을 어지럽히자, 히데요시는 2만을 이끌고 기후를 향해 이를 노려 기습한 사쿠마 모리마사는 적의 성채를 점령한 다음, 돌아오지 않고 그 성채에서 하룻밤을 맞이하니, 강의 수량이 늘어 기후로 가지 못한 히데요시는 이 소식을 듣고 미노대귀환을 성공시킵니다.
시즈가타게 전투 4월 21일 전황도
이를 알게된 사쿠마 모리마사, 아무리 오이와산 성채를 버리기 어려워도 여기서는 철퇴해야 합니다. 조속히, 후방의 한노우라(飯浦)를 깍아 낸 길에 진을 치고 있던 시바타 가쓰마사(柴田勝政)에게 철퇴 명령을 내리고 스스로도 밤 12시에 조속히 요고호의 기슭을 따라 철퇴를 개시합니다. 새벽 2시에 이 모리마사의 움직임을 안 히데요시는 급히 자군의 선봉에 추격을 개시시켜 선두 모리마사대를 따라잡았습니다. 그러나, 모리마사도 여간내기가 아닙니다. 도망가는 길의 주위에 복병을 숨겨 추격대가 온 것을, 양측에서 총으로의 사격해 추격대가 혼란할 때 오히려 최후미가 공격해 반격을 성공 시킵니다. 게다가 철퇴 도중이던 가쓰마사 부대가 측면에서 지원해 히데요시의 추격대는 좀처럼 생각하는 것 만큼의 성과를 올릴 수 없었습니다.
이러는 사이에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 오전 6시 즈음, 모리마사는 요고호 북측의 이치산(行市山) 성채 근처까지 도착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가쓰마사대의 합류를 기다립니다. 모리마사를 눈뜨고 놓친 히데요시는 아직도 철퇴 도중의 가쓰마사대를 목표로 정합니다. 오전 8시 가즈마사대가 드디어 본격적인 철퇴를 개시합니다. 이를 본 히데요시는 일제히 총을 쏘며 자군에게 총공격을 명령합니다. 여기서 대활약한 것이 바로'시즈가타케의 7본창' (賤ヶ岳の七本槍)입니다. 가쓰마사대의 핀치를 안 모리마사는 부하의 하이고우 이에요시(排郷家嘉) 등을 원군으로 보냅니다만, 이미 맹공, 난전이 반복되고 있던 이곳에서 남동생인 가쓰마사는 장렬한 최후를 맞이 합니다.
시즈가타케 전투를 그린 그림
그런데도 군을 정돈해 다시 반격을 시도하려고 하는 모리마사에게 큰 사건이 일어납니다. 마에다 토시이에 부자가 급작스레 전선을 이탈한 것입니다. 히데요시와 미리 밀약을 맺었는지, 그게 아니면 전황을 읽고 퇴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모리마사 바로 뒤에 위치한 마에다 부대의 퇴각은 후미의 부대에서는 모리마사가 완패를 한 것처럼 보여 시바타 가쓰이에 측은 큰 혼란에 빠집니다.
이것을 키노시타 카쯔모토(木下一元)나 키무라 하야토노카미(木村隼人正)가 쳐들어가 정오무렵에 모리사다대는 완패했습니다. 패색이 짙은 가쓰이에군, 가쓰이에의 본대도 이탈자가 속출해 불과 3,000정도만이 남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대로는 '귀신 시바타(鬼柴田)'의 이름이 울지요. 남은 군사로 바로 앞의 호리 히데마사(堀秀政)대에 마지막으로 돌진합니다. 만약 여기서, 히데마사를 쳐부수어도 그 후방에는 하시바 히데나가(羽柴秀長: 히데요시의 남동생)의 대군이 있었는 데다가, 완패가한 모리마사대를 지나쳐 온 히데요시의 추격대가, 요고호의 북쪽을 돌아 가쓰이에의 서쪽에서 임박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쓰이에는 스스로 선두에 서, 100명 정도를 거느리고 히데마사대에 돌진했습니다. 의표를 찔려 조금 후퇴하는 히데마사대를 앞둔 가쓰이에는 곁에 있던 멘죠 카쯔테루(毛受勝照)를 불러와 코헤이(御幣: 신관이 불제를 하는 도구)의 형태인 스스로의 우마지루시(馬印: 대장을 나타내는 깃발)를 전했습니다.
'내가 시바타 가쓰이에다!'
이 깃발을 지닌 카쯔테루는 하야시다니산(林谷山) 성채에 들어갑니다. 이곳에 모리마사대를 추격 해 요고호를 통과해 온 히데요시군은 그 우마지루시를 확인하고 가쓰이에가 있다고 판단해 총공격을 실시합니다. 몰려오는 적군에, 시끄러운 포성 사이로 카쯔테루는 '내가 가쓰이에다!'라고 소리치며 적을 베다 전사하고 맙니다.
사쿠마 모리마사는 결국 붙잡히고 맙니다
한편, 최전선에서 분전 하고 있던 모리마사는 패주하던 중 에츠젠의 산중에서 포박 됩니다. '오니겐바(鬼玄蕃)'라고 불린 맹장이 모리마사를 붙잡았지요. 그 무용을 아까워한 히데요시는 모리마사와 대면해 그에게 항복을 권유했습니다. 이에 모리마사는 '여기서 당신이 정을 베풀어도, 나는 반드시 나중에 당신을 죽일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화려한 의상으로 교토의 중심에서 책형으로 죽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신의 이름도 높일 것 입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소원대로 처형당했습니다. 한편 가쓰이에는 천신만고 끝에 에츠젠 키타노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이틀후에 패배를 야기한 마에다 토시이에가 키타노쇼에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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