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전국시대의 쇼군, 아시카가 가문
일본 전국시대에 태어나고 지는 수많은 가문 중에서 가장 크게 몰락한 것은 다름아닌 이 아시카가 가문일 것입니다. 아시카가 가문은 전국시대의 쇼군 가문으로, 결국 도쿠가와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만 비극의 가문이기도 합니다.
아시카가 가문의 가문(家紋) 아시카가후타츠히키(足利二つ引)
아시카가 막부의 성립
가마쿠라 시대의 아시카가 가문은 당시 실권을 잡고 있던 호조 가문 1과 인척관계를 지닌 유력 가문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의 아시카가 가문은 미카와 수호, 카즈사 수호를 맡을 정도 였습니다. 그러나, 호조 가문이 전제정치 강화로 힘을 잃어, 가마쿠라 말기에는 평민과 다를 바 없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난태평기(難太平記)」에 따르면, 아시카가 가문에는 '미나모토노 요시이에(源義家)의 7대손이 천하를 취할것이다.' 라고 쓰여진 문서가 전해져 왔다고 합니다. 아시카가 이에토키(足利家時)는 자신이 7대손이지만 당시 정황상 천하를 취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 판단해, 하치만대보살에게 기원을 남기고 자결했습니다.
그의 기원을 신이 들었는지, 그의 사후 이대 뒤의 아시카가 타카우지(高氏)에게 기회가 옵니다. 당대 고다이고덴노(後醍醐天皇)는 '타도 막부'의 기치를 높이 들었습니다. 이에 호조 가문은 타카우지를 시켜 고다이고덴노를 공격시키지만, 그는 역으로 군세를 이끌고 막부를 멸망시켜 버립니다. 제 1의 공로자인 그는 정권에서 큰 힘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고다이고덴노는 전후의 논공행상을 적절하게 하지 않아, 무가의 불만이 싸이고, 결국 '나카센다이의 난'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 난을 진압한 타카우지는 동란의 끝에 코묘덴노(光明天皇)를 옹립하고, 무로막치 막부를 설립하니, 한 하늘 아래 두 덴노가 존재하는 남북조 시대가 열립니다.
아시카가 요시미츠 초상화
이 혼란을 진정시킨 것은 3대 무로마치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義満)였습니다. 어린시절에 쇼군에 올랐던 그는 슈고 다이묘들의 힘을 줄이고, 자신의 힘을 기릅니다. 남북조의 동란을 진정시킨 뒤 일어난 오에이의 란까지 진압한 그는 명과 무역을 하는 등, 쇼군의 권위를 곧추세웁니다. 만년의 그는 법왕(法王)이라 불릴 정도로 덴노 가문의 권력을 빼앗아 와, 아시카가 막부의 권세를 드높입니다.
아시카가 막부 몰락의 서막, 오닌의 란
이렇게 강성해진 아시카가 막부에 요시마사(義政)가 불과 8세의 나이로 쇼군이 됩니다. 이에 덴노의 조정이나 슈고 다이묘들의 개입이 격렬해 진데다가, 성장해서도 측근의 정치개입을 허용한 그에 의해 쇼군가의 권위는 갈수록 실추됩니다. 이런 상처가 터진 것은 바로 오닌의 란(오닌의 난)입니다. 후계자가 없었던 그는 동생을 환속시켜 후계로 삼으나, 후계자가 태어나고 맙니다. 여기에다 하타케야마의 후계자 분쟁이 더해져 오닌의 란이 발발해 장장 10년에 걸치고, 쇼군의 근거지인 교토가 엉망이 되며 권위와 권세 모두 추락합니다.
장장 10여년에 걸쳤던 오닌의 란
결국 난을 거쳐 쇼군직에 취임한 요시히사(義尚)는 실추한 권위의 회복을 위해 노력합니다. 오우미 수호인 롯카쿠 다카요리(六角高頼)를 공격해 권세를 회복하는가도 싶었으나(롯카쿠 정벌), 코우가 닌자를 이용한 게릴라성 공격에 오우미에 길게 머무르며, 향년 25세로 병사하고 맙니다.
그의 뒤는 일찌기 그와 쇼군직을 두고 다투었던 삼촌의 아들 요시키(義材)가 잇게 됩니다. 요시키는 땅에 떨어질대로 떨어진 쇼군의 권세를 되찾고자 노력하나, 하타케야마 마사나가(畠山政長)의 요청을 받아들여 카와치의 하타케야마 요시토요(畠山義豊)의 토벌을 하려던 그는 패배해 유폐되고, 그의 종형제 요시즈미(義澄)가 쇼군직을 잇케 됩니다. 요시키는 자신의 권세를 되찾고자 군세를 일으키나 실패하고 오오우치가문에 의탁해 도망칩니다. 쇼군직을 이은 요시즈미는 괴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요시타다(義尹)로 이름을 바꾼 요시키에게 이윽고 기회가 다가옵니다. 하타케야마의 후계자 분쟁 (후나오카산 전투)으로 인해 요시즈미가 죽자, 요시타다는 다시 쇼군직에 복귀하게 됩니다. 하지만 호소카와의 뒤를 이은 타카쿠니와의 갈등이 심해져 그는 교토에 돌아오지 못한채로 병사하고 맙니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인은 것이 바로 아시카가 요시하루(義晴)입니다.
검호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
아시카가 요시테루 초상화
요시하루의 뒤를 이은 것이 검호 쇼군으로 유명한 아시카가 요시테루(義輝)입니다. 하타케야마의 뒤를 이어 기나이를 제압한 미요시 가문에 대항해 그는 롯카쿠와 연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요시의 강력한 세력에는 버티지 못하지요. 미요시 나가요시는 온순한 성품으로 그에게 화의를 제의해, 요시테루는 교토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가요시의 급사이후 요시테루는 물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권위회복을 위해 싸웠습니다. 당시 에치고에서 이름을 드높이던 나가오 가케토라를 불러 '우에스기 테루토라'라는 이름을 하사해 자신의 세력으로 만드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으나, 미요시가 이것을 두고볼 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이런 노력이 마츠나가 히사히데와 미요시 삼인중의 심기를 거슬러, 결국 그는 암살당하고 맙니다.(요시테루 암살) 그리고 요시히데(義栄)를 허수아비 쇼군으로 앉힙니다.
또다른 아시카가, 가마쿠라 쿠보
아시카가 가문은 그 거대한 힘을 관동에 미치기 위해 가마쿠라 쿠보를 설치했었습니다. 이 가마쿠라 쿠보는 지나치게 독자적으로 나아가며 힘을 기르다 모치우지(持氏)의 대에 멸망하지만, 그의 아들 사게우지(成氏)가 난을 일으켜 코가 쿠보를 설립해 관동에서 세력을 기릅니다. 이에 막부는 공식 쿠보를 파견하나 가마쿠라에 들어가지 못해 호리코시에 머물러 호리코시쿠보라 불립니다. 요시아키(義明) 2는 오유미쿠보를 설립해 가마쿠라쿠보를 되찾으려 하나, 1차 코우노다이 전투(1차 코우노다이 전투)에서 호조에 대패하며 힘을 잃습니다.
오다 노부나가와 결탁했지만.. 아시카가 요시아키
아시카가 요시아키 초상화
요시테루가 암살당하던 당시 승려로 절에 있었던 가쿠게이는 절을 탈출해 전국의 여러 다이묘들에게 자신을 도울것을 호소하는 격문을 보냅니다.(코호쿠지 탈출) 하지만 당시 다이묘들은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요시아키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요시아키와 한 사람이 만나니, 그가 바로 오다 노부나가 입니다. 당시 파죽지세로 세력을 넓혀나가던 오다 노부나가는 요시아키를 상경의 도구로 사용하기로 마음먹습니다.(노부나가 상경) 처음에는 상경을 도운 노부나가를 '아버지'(심지어 자신보다 어린데도!)라 부르며 존경을 표했던 그이지만, 서서히 노부나가가 '천하포무'의 야욕을 드러내며 갈등을 겪기 시작합니다.(노부나가의 5개조 정서)
결국 덴쇼 원년(1573년)에 노부나가는 니죠고쇼를 불태우기까지 합니다.(니죠고쇼 방화) 요시아키는 다이묘들과 혼간지를 결합시켜 노부나가를 고립시키는 반 노부나가 포위망을 펼칩니다. 하지만 노부나가의 신과 같은 용병술에다, 상경 중이던 다케다 신겐이 병사하며(신겐 사망) 노부나가 토벌은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이 뒤 노부나가는 요시아키를 내쫓아 버립니다.(요시아키 내쫓기다) 여기서 무로마치 막부는 멸망하게 됩니다.
멸망했지만, 자존심만큼은 버리지 않았던 막부
이렇게 해서 아시카가 막부는 멸망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영향력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하시바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은 뒤에, 정통성이 없는 자신의 혈통에 콤플렉스를 느껴 요시아키에게 자신을 조카로 맞아 달라 부탁합니다. 하지만 요시아키는 이 요청을 무시합니다. 썩어도 쇼군인 자신의 가문에 농민출신인 히데요시를 맞아 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후에 아시카가 가문을 계승한 요리우지(頼氏)는, 아시카가를 고쳐 키츠레가와(喜連川)를 칭합니다. 키츠레가와 가문은 에도 막부에서 5000석을 수여받아, 키츠레가와 쿠보(喜連川公方)의 존칭을 받으며 10만석의 격식으로 우대받았습니다. 메이지유신 후 이들은 다시 '아시카가'라는 이름을 되찾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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