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오우미군에서 쇼군이 기습당하다
쵸우코우 원년, 오우미군(近江鈎)에 포진하고 있던 쇼군 아시카가 요시히사에게 롯카쿠 타카요리(六角高頼)의 부하 코우가 타케시(甲賀武士)등이 기습을 감행했습니다.
오미국의 위치
오닌의 난이후 막부 쇼군과 여러 다이묘들은 자주 대립하게 됩니다. 이런 혼란에서 오미(近江)남부의 전국 다이묘 롯카쿠 다카요리는, 오미우치의 문신령이나 절, 신사령을 계속 점거합니다. 당연, 문신이나 절, 신사는 무로마치 막부 제9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히사에 호소해 요시히사도 다카요리에게 퇴거하도록 언도합니다. 하지만 아시카가 쇼군의 군사력의 실추와 하극상의 도래 그리고 전국시대의 시작을 느끼고 있던 타카요리는, 쇼군의 말을 무시합니다.
타카요리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것을 안 요시히사는, 쵸우코우원년(1487년)에 교토에서 출진합니다. 타카요리는 무시할지 몰라도, 세상에서는 아직 쇼군의 여전했습니다. 요시히사의 아래에서는, 와카사(若狭)의 다케다 구니노부(武田国信), 카가(加賀)의 토가시 마사치카(富樫政親)라고 하는 유력 무장이 모여, 그 수는 2만의 대군이 됩니다. 요시히사의 군은, 오미 남부에 있는 롯카쿠가의 영지를 차례차례로 점령하여 이윽고, 롯카쿠가의 거성인 간노우지성(観音寺城)앞으로 진군합니다. 적의 내습을 안 타카요리는 시원스럽게 간노우지성을 버려 부하 코우가(甲賀)의 무사들에게로 향합니다.
쇼군의 오미 공격
성을 버렸다는 것은, 아마 타카요리의 작전이였을 것입니다. 썩어도 준치라고 역시 상대는 쇼군입니다. 지금 여기서, 직접 대결하는 것보다도 기다리는 편이 유리한 계책이라고 생각했겠지요. 그런 롯카쿠를 쫓는 요시나리는, 오미에 진을치고, 이곳을 거점으로 코우가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타카요리는 아예 타국으로 도망갑니다. 이에 '롯카쿠토벌은 장기에 걸친다' 라고 판단한 요시나리는, 쵸우코우원년(1487년) 군의 일부를 교토에 돌려 보냅니다.
흔히 닌자 이름에서 들어보셨을 코우가 가문은 그 이름만큼이나 신출귀몰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코우가 타케시는, 이 일부 철퇴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코우가 타케시의 군세가 요시나리의 진에 기습을 걸었습니다. 불의에 습격당한 진은 대혼란에 빠져 큰소란이 났습니다. 애써 진정시키려는 요시나리를 무시하고, 서서히 도망가는 사람이 속출하게 됩니다. 이 소란에 잊혀져 코우가 타케시가 요시나리를 베어 부상시켰다고도 합니다.
어쨌든, 타카요리를 파죽지세로 차례차례로 떨어뜨려, 조금은 회복 했던 쇼군의 권위도, 도로아미타불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코우가 타케시의 게릴라 작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지리적 이점을 살려 저쪽에서불을 지르고 이쪽에 기습을 거는 등의 작전을 벌입니다. 이후로도 1년반에 걸쳐 요시나리는 계속 지리하게 롯카쿠가와 코우가가를 공격하다 향년 25세 나이로 병사하고 맙니다. 기습의 공포 때문일까요? 전쟁의 허망함때문일까요? 아니면 쉽게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 때문일까요?
이 싸움에 의해, 롯카쿠가가 횡령 하고 있던 많은 영지는, 원래의 문신이나 절, 신사에게 돌아오고, 막부의 명예도 조금 회복합니다. 하지만 군사의 약체화는 이 이후 눈에 띄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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