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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호조소운의 오다와라성 탈취

일본 전국시대;

호조소운의 오다와라성 탈취




묘오4년(1495년), 호조소운이 오우기가야쯔 우에스기(扇谷上杉)가의 중신 오오모리 후지요리(大森藤頼)가 지키는 오다와라성을 탈취했습니다.(년도에 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습니다)


오다와라역 옆에 있는 소운상



 전국 3효융의 하나이고, 유일하게 5대, 100년에 걸쳐 군림한 호조가, 이 호조가가 대대로 본거지로 한 오다와라성은 원래 오우기가야즈 우에스기가의 성이었습니다. 사실 자세한 기록이 없기에 상세한 사항은 거의 모르는 것이 현실입니다. 


 엔토쿠워년(1491년), 혹은 묘오2년(1493년)에, '이즈습격'으로 호리코시 쿠보 아시카가 차차마루를 추방하고 이즈를 손에 넣은 소운은, 관동 관령 오우기가야쯔 우에스기가 휘하에 있었습니다. 오우기가야쯔 우에스기가의 당주인 우에스기 사다마사는 오오타 도칸을 시기해 암살한 뒤, 니시사가미(西相模)에 오오모리 우지요리(大森氏頼)를 배치하고 히가시사가미에 미우라 도키타카(三浦時高)를 배치해 관동 남서부를 통치해 한층 더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묘오 3년(1494년)에 당주 사다마사, 우지요리, 도키타카가 모두 차례 차례 세상을 떠납니다. 당연히 이 세 가문은 각자 후계자 분쟁에 빠져들기 시작했지요. 역시나 소운은 호기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우지요리의 뒤를 이은 아들 오오모리 후지요리(大森藤頼)에게 급히 선물을 보내 안심시킵니다. 그리고, 적당한 시기를 가늠해 ' 제 영지에서, 사슴 사냥을 하고 있었던 것인데, 아무래도 그쪽으로 도망친 것 같습니다. 짐승을 뒤쫓는 사냥꾼을 귀하의 영토인 하코네 산에도 들어가 사슴을 찾게 하고 싶은데, 괜찮습니까?'  라고 합니다. 



오다와라성 공격



 소운이 있는 니라야마성(韮山城)과 후지요리가 있는 오다와라성(小田原城)과의 사이의 하코네 산에 담당자를 배치하지 않으면 사냥감이 도망쳐 버린다는 것이지요. 물론, 지금까지의 교류로 방심하고 있던 후지요리는, 쾌히 승낙합니다.  묘오4년(1495년) 수의를 몸에     걸쳐 몰이꾼이나 이누카이(사냥개 담당자)에 분장한 무사들이 1,000마리의 소와 함께 하코네 산에 들어갑니다. 한편으로 오다와라성 근처의 이시하시, 코메카미, 유모토에 복병을 배치하지요.


 밤이 되어 하코네 산의 군사가, 소의 뿔에 횃불을 묶어 함께 데려 간 개를 풀어 놓고, 일제히 함성을 지릅니다. 개를 무서워한 소들은 산중을 이리저리 다녀, 밤에 불을 밝히며 오다와라성의 배후로 다가갑니다. 두 뿔에서 빛나는 횃불은 마치 도깨비불 같았지요. 거기에 주의가 끌린 틈에, 각지에 배치한 복병이 마을에 불을 질러 일제히 오다와라 성벽아래로 바싹 쳐들어지요. 당연히 성벽아래는 대혼란에 빠집니다. 게다가 일부의 군사가 성내에 침입해 성문을 열자 노도와 같은 군세가 성내에 눈사태처럼 들어와, 성내의 오오모리가도 대혼란에 빠져, 후지요리는 간신히 도망쳤습니다.



화우의 계



 이렇게 해서, 불과 하룻밤만에 소운은 오다와라성을 손에 넣습니다. 이 성은, 이 앞, 호조씨의 거점으로서 화려하게 변모합니다. 그런데,이 화우의 계(火牛の計)는 실제로 가능한지는 미묘합니다만, 중국의 전국시대에도 등장하는 이 작전이기 때문에 아주 불가능 하지만은 않지 않을까요? 이 전투 이후로 소운은 한층 더 기세를 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