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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다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붉은 기마군단, 다케다 가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붉은 기마군단, 다케다 가문 일본 전국시대에서 최고의 라이벌 중 하나는 아마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 아닐까요? 오늘은 다케다 신겐의 다케다 가문에 대해 다뤄보려고 합니다. 다케다 가문의 발상 다케다 가문은 가이겐지(甲斐源)의 일족으로, 매우 유서깊은 집안 입니다. 그 선조는 하치만타로 요시이에(八幡太郎義家)의 동생인 시라기 사부로 요시미츠(新羅三郎義光)입니다. 그는 난을 평정해 형의 목숨을 구해준 다음 가이노카미(甲斐守),히타치노스케(常陸介)를 역임한 뒤 교부쇼유(刑部少輔)를 맡았습니다. 그는 아들들을 사타케, 다케다 마을에 배치해 힘을 기르려 했습니다. 하지만 두 아들들은 각각 지방의 반발과 문란한 생활로 가이국으로 유배당합니다. 이때부터 '다케다 마을'에서 영유한 일로 '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시라타가하라 전투(3) 다케다와 오다의 운명이 갈린 시라타가하라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시라타가하라 전투(3)다케다와 오다의 운명이 갈린 시라타가하라 전투 덴쇼 3년(1575년) 시라타가하라에서 오다, 도쿠가와 연합군과 다케다군이 부닥쳤습니다. 비가 그치고 맑은 하늘이 보였습니다. 다케다 가쓰요리가 이끄는 약 1만 2000의 군사는 시라타가하라에 진군해 학익진을 펼쳤습니다.(일본 전국시대의 진형) 한편, 렌고가와(連吾川)를 끼고, 정면에서 마주 보는 형태로 포진 한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과 다케다 가쓰요리군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6 시경 가장 왼쪽에 포진한 선봉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가 개전을 고하는 북을 치고, 목책의 좌측을 돌아, 도쿠가와군의 오오쿠보 타다요(大久保忠世)와 격돌합니다. 타다요는 과감하게도, 총포대를 목책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시라타가하라 전투(2) 사카이 타다츠쿠의 토비가쓰야마 성채 기습 일본 전국시대;시라타가하라 전투(2) 사카이 타다츠쿠의 토비가쓰야마 성채 기습 덴쇼 3년(1575년), 다케다 가쓰요리의 본대가 시타라가하라를 향한 뒤에, 사카이 타다츠구가 토비가쓰야마 성채에 기습을 걸어에 출발했습니다. 3만에 달하는 오다, 도쿠가와 연합군이 시타라가하라에 진을 치고 성채나 망루를 쌓고 있는 와중에, 다케다 본대 내에서는 계속해서 군의를 가집니다. 퇴각인가, 결전인가에 대해 논의를 계속하나, 오다 도쿠가와 연합군이 무려 3만에 달하지만 그에 비해 다케다군 절반 정도인 1만 5,000이었기 때문에 바바 노부하루, 나이토 마사토요, 야마가타 마사카게등 신겐때부터 다케다를 섬긴 중신들은 모다 퇴각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가쓰요리의 측근인 아토베 카쯔스게(跡部勝資)가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시타라가하라 전투(1) 전투의 서막이 올라가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시타라가하라 전투(1) 전투의 서막이 올라가다 덴쇼 3년(1575년) 미카와 나가시노성 구원에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 약 3만이 시타라가하라(設楽原)에 도착했습니다. 나가시노성이 공격을 받자(나가시노성 공방전), 나가시노성의 성주 오쿠다이라 노부마사는 전령을 보내(토리이 쓰네몬 가츠아키) 이야에스에게 원군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이야에스는 미카타가와라의 상처를 입은 상태로, 별로 힘이 없었습니다. 이야에스는 결국 동맹인 노부나가에게 원군을 요청합니다. 이때가지도 반 노부나가 동맹은 건재한 상태지만, 노부나가는 결단을 내려 다케다군을 막으러 이동합니다. 재빠르게 오사카에서 기후로 이동한 그는 어느새 3만을 인솔해 기후를 출진해 오카자키로 향합니다. 그리고 이야에..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나가시노 전투(2) 최고의 전령, 토리이 쓰네몬 가츠아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나가시노 전투(2) 최고의 전령, 토리이 쓰네몬 가츠아키 덴쇼 3년(1575년) 나가시노에서 오카자키로 구원 요청을 간 토리이 쓰네몬 가츠아키가 나가시노에 돌아오는 도중에 잡혀 책형에 처해졌습니다. 사실 오늘 다룰 이 인물은 잡병 정도인 인물로, 원래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일이 없었을 사람입니다. 다케다 가쓰요리의 가신 오치아이 사베이지(落合佐平次) 의 하타사시모노의 도안으로,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강한 이펙특다 있는 꽤 유명한 하타사시모노입니다. 이 하타사시모노의 주인공이 다름아닌 토리이 가츠아키입니다. 하타사시모노는 저번에 이야기 했었습니다.(하타사시모노) 당시의 오쿠다이라가문은 토호 보다 조금 나은 성 하나만을 지닌 사무라이입니다. 대영주 다케다의 대군에 포위되서는 가망..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나가시노성 공방전(1) 나가시노성 공방전, 시작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나가시노 전투(1) 나가시노성 공방전, 시작 덴쇼 3년(1575년, 다케다 가쓰요리(武田勝頼)가 미카와 나가시노성(長篠城)의 오쿠다이라 노부마사(奥平信昌)를 포위했습니다. 아직 가이의 호랑이 다케다 신겐이 건재했을 때에 나가시노 성주 오쿠다이라 노부마사는 아버지와 함께 다케다에 신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 덴쇼 원년(1573년) 신겐의 죽음을 계기로 등을 돌리게 됩니다 신겐의 죽음은 당분간 공표되지 않았지만, 그때 까지 파죽지세로 상경하던 다케다군이 노다성공방전 뒤로 갑자기 철퇴를 개시한 일에는(노다성 공방전), 누구라도 이상하게 생각해 그 불신감과 동요는 가신들에게도, 그리고 주위의 전국 무장에도 퍼져 그런 중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포위를 받고 있던 미카와측의 최전선 위치에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케다 신겐의 마지막 전투, 노다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다케다 신겐의 마지막 전투, 노다성 공방전 덴쇼 원년(1573년) 상경 중이었던 다케다 신겐이 도쿠가와의 노다성(野田城)을 공격했습니다. 이 덴쇼 원년, 신겐은 53세, 겐신은 44세, 노부나가가 40세, 히데요시와 이에야스는 아직 30대였지요. 자신의 운명을 알았던 것인지, 신겐은 작년부터 상경에 착수합니다. 충분히 천하를 노릴 수 있있던 신겐은 만반의 준비를 한 상경이었습니다. 아직 풋나기인 이에야스를 미카타가와라(미카타가와라)에서 격파한 신겐은 이에야스의 거성 하마마츠성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노다성을 목표로 합니다. 그리고 덴쇼 초 노다성을 포위한 신겐은 공격을 개시합니다. 미카타가와라에서 대패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에야스는 원군을 보내는 보지만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미카타가와라 전투(5) 신겐, 히로히데의 목을 노부나가에 보내다 일본 전국시대; 미카타가와라 전투(5) 신겐, 히로히데의 목을 노부나가에 보내다 겐키 3년(1572년) 승리한 다케다 신겐이 수급을 확인했습니다. 미카타가와라 전투가(미카타가와라) 끝난 다음날, 신겐은 죽인 무장의 확인을 실시합니다. 그 중에는, 이에야스와 동맹 관계에 있던 오다 노부나가의 원군 히라테 히로히데(平手汎秀)의 목도 있었습니다. 그는 노부나가의 모리야꾸(傅役; 스승역)인 중신 히라테 마사히데(平手政秀)의 삼남(손자라고 하는 설도 있음)입니다. 마사히데는 젊은 날의 노부나가가가 기발한 패션을 하고, 양아치들의 리더가 되고, 날뛰어 오와리의 망나니로 불리고 있었을 무렵,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노부나가에 호소한 인물입니다.(히라테 마사히데의 할복) 노부나가가 정말로 생각이 없지는 않았기에, 자신에게..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미카타가와라 전투(4) 총소리로 다케다 군세를 벼랑으로 몰다, 사이가카게 기습 일본 전국시대; 미카타가와라 전투(4) 총소리로 다케다 군세를 벼랑으로 몰다, 사이가카게 기습 겐키 3년(1572년) 미카타가와라 전투가 끝난 밤에, 도쿠가와의 군세가 다케다의 진지에 야습을 시도했습니다. 겐키 3년(1572년) 미카타가와라 전투에(미카타가와라) 승리한 다케다 신겐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망간 하마마츠성의 북쪽으로 1 km정도 떠러진 곳에 있는 사이가카게(犀ヶ崖)의 북측에 포진 합니다. 심야가 되자, 이에야스 부하 아마노 야스카게(天野康景)와 오오쿠보 타다요(大久保忠世) 등이 패전을 만회 하려고 야습을 걸치는 작전을 세웁니다. 16정의 총과 약 100명의 군사를 거느려 은밀하게 지름길로 이동하는 데다가, 눈이 올 듯해 어둑어둑한 밤이고, 적은 지리를 이야에스군만큼 잘 모르기 때문에 야습..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미카타가와라 전투(3) 이야에스 다케다에 참패하다, 미카타가와라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미카타가와라 전투(3) 이야에스 다케다에 참패하다, 미카타가와라 전투 겐키 3년(1572년) 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생애로 최대 패전 미카타가와라 전투가 있었습니다. 4만 5천의 대군을 인솔해 가이를 출발, 교토를 향해 서쪽으로 나아가는 다케다의 앞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있는 하마마츠성이 가로막습니다. 군사의 수가 훨씬 뒤떨어지는 이에야스는 농성 작전을 취해, 쳐들어 오는 다케다군에 대비합니다. 하지만 다케다군은 이에야스를 무시해 하마마츠 성벽아래를 그냥 지나치려고 합니다.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이야에스지만 이때는 아직 혈기를 가진 젊은이었지요. 이대로 통과시키는 것은 가문의 수치라며 가신들의 의견도 듣지 않은채, 미카타가와라에 진군합니다. 이에야스가 인솔하는 도쿠가와군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