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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다

일본 전국시대; 다케다 신겐의 시나노 공략의 제일보 스와 전투 일본 전국시대;다케다 신겐의 시나노 공략의 제일보 스와 전투 텐몬 11년(1542년) 6월 24일, 다케다 신겐이 가이 쿄라이시(教来石)에서 군을 정비해 시나노에 침입을 개시했습니다. 아버지 노부토라를 쫓아 버린 뒤(노부토라를 추방) 가이국의 당주가 된 신겐은 그 일년 후의 텐몬 11년(1542년)에 드디어 영지 확대에 나섭니다. 아버지 노부토라가 국력을 쏟아부으면서도 달성할 수가 할 수 없었던 시나노를 목표로 정하지요. 게다가 신겐은 아버지가 동맹을 맺고 있던 스와(諏訪)를 제일의 타겟으로 선택합니다. 노부토라가 종종 침공하고 있던 곳은 시나노 사쿠군이나 치이사가군, 그러나 이 곳들은 산에 둘러싸여 공격이 어려운데다가, 가이로 통하는 길도 좁고, 야츠카타케를 우회 해 공략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신겐이 자신의 아버지 노부토라를 추방 일본 전국시대; 신겐이 자신의 아버지 노부토라를 추방 텐몬10년(1541년) 다케다 신겐이 아버지 노부토라를 추방했습니다. 가이를 지배한 다케다가는, 키요카즈 겐지의 피를 계승하는 가이 겐지 본가의 혈통으로 무로마치 막부로부터 수호직을 제수 받았던 유서 깊은 집안입니다. 전국이라고 하는 시대가 되고, 무로마치로부터의 수호가 차례차례로 이름만이 남게되는 중에 다케다가가 영지를 지켜, 전국 다이묘로서 살아 남은 것은 신겐의 아버지 다케다 노부토라의 힘에 덕분이었습니다. 에이쇼4년(1507년), 불과 14세에, 친척끼리의 후계자를 둘러싼 분쟁에 이겨, 다케다가의 상속자를 이은 노부토라는, 가이 국내의 고쿠진들을 차례차례로 물리쳐 불과 일년만에 가이 일국의 통일에 성공했습니다. 노부토라가 얼마나 대단한 무장이었..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다케다 신켄의 등장 오미노구치성 기습전 일본 전국시대;다케다 신켄의 등장 오미노구치성 기습전 텐몬 5년(1536년) 첫 출진을 한 다케다 신겐이, 시나노의 우미노구치성을 기습해, 점령했습니다. 가이의 수호 다케다 노부토라가 자국에 진공해 온 후쿠시마 마사나리를 격퇴했다고 하는 이이다 강변의 싸움의 중간에 태어났다고 여겨지는 다케다 신겐은, 텐몬5년(1536년), 단 16세에 성인식을 거치고 제12대 무로마치 막부 쇼군 아시카가 요시하루에게 이름을 받아, 하루노부(晴信)라고 자칭했습니다(그냥 신겐으로 통일해 쓰겠습니다). 당시의 가이는 동쪽은 호조가의 사가미, 남쪽은 이마가와가의 스루가라고 하는 대국과 접하고 서쪽은 아카이시산맥이라고 하는 거대한 벽에 막혀, 타국과의 왕래 자체가 곤란했습니다. 게다가 이 가이는 일설에는 그 어원이 산골짜기라고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노부토라의 가이 통일 이이다 강변 전투 일본 전국시대;노부토라의 가이 통일 이이다 강변 전투 다이에이 원년(1521년), 가이(甲斐)에 진공한 후쿠시마 마사나리(福島正成)를, 다케다 노부토라(武田信虎)가 격퇴한 이이다 강변 전투(飯田河原の戦い)가 있었습니다. 이 전투에 대해 역사에 남아 있는 것은 거이 없습니다. 중세 가이국의 기본 사료인 '카츠야마기'에도, 어떠한 상황이었는가 자세한 기술은 없고, 원래 후쿠시마 마사나리의 가이 진공에 관해서도 당시 스루가의 전국 다이묘였던 이마가와 우지치카(今川氏親)의 명령에 의해서라는 이야기와 반대로 마사나리가 이마가와 대립한 끝 독단으로 진공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 이이다 강변 전투에서 이어지는 카미죠(上条)강변의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여겨지는 마사나리도, 정말로 이때 전사했는가에 대해 의문이 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