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미카타가와라 전투(5) 신겐, 히로히데의 목을 노부나가에 보내다

일본 전국시대;

미카타가와라 전투(5) 
신겐, 히로히데의 목을 노부나가에 보내다



 겐키 3년(1572년) 승리한 다케다 신겐이 수급을 확인했습니다. 

 미카타가와라 전투가(미카타가와라) 끝난 다음날, 신겐은 죽인 무장의 확인을 실시합니다. 그 중에는, 이에야스와 동맹 관계에 있던 오다 노부나가의 원군 히라테 히로히데(平手汎秀)의 목도 있었습니다. 그는 노부나가의 모리야꾸(傅役; 스승역)인 중신 히라테 마사히데(平手政秀)의 삼남(손자라고 하는 설도 있음)입니다. 마사히데는 젊은 날의 노부나가가가 기발한 패션을 하고, 양아치들의 리더가 되고, 날뛰어 오와리의 망나니로 불리고 있었을 무렵,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노부나가에 호소한 인물입니다.(히라테 마사히데의 할복) 노부나가가 정말로 생각이 없지는 않았기에, 자신에게 목숨을 바친 가신에 대해 깊게 생각해, 그의 아들 히로히데를 총애 했었습니다.

미카타가와라 전투 그림입니다.



 히로히데는 이번 전투에 또 한사람의 중신 사쿠마 노부모리(佐久間信盛)와 함께 3,000의 군사를 이끌어, 원군으로 향했습니다. 미카타가와라 전투의 직전 하마마츠 성벽아래에 머무르고 있던 그들에게, 전선을 살피러 온 이에야스는 대장인 히로히데나 노부모리에게 어떤 말도 걸지 않고, 단지 그 근처를 보고 돌아갔을 뿐이었습니다. 그 이에야스의 태도를 본 히로히데는 분노해 다음날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 전사하겠다고 합니다. 이야에스에게, 자신이 전사한 뒤에도 오지말라고 일갈한 것이지요. 그리고 다음날 정말로 적진에 돌진해 전사합니다. 이 이야기는 「토시기네가와(利家夜話)」에 쓰여 있는 일화입니다. 아마, 이야에스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이 목을 확인한 신겐은 기후의 노부나가에게 절교의 선언으로 보냈습니다. 그것을 안 노부나가는 히로히데의 죽음을 아까워하는 것과 동시에 분노도 정점으로 달했다고 합니다. 후에 무사히 귀환한 노부모리를 추방했을 때 그 추방의 이유 중 히로히데의 죽음이 있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