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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미카타가와라 전투(4) 총소리로 다케다 군세를 벼랑으로 몰다, 사이가카게 기습

일본 전국시대;

미카타가와라 전투(4) 
총소리로 다케다 군세를 벼랑으로 몰다, 
사이가카게 기습


 겐키 3년(1572년) 미카타가와라 전투가 끝난 밤에, 도쿠가와의 군세가 다케다의 진지에 야습을 시도했습니다.


 겐키 3년(1572년) 미카타가와라 전투에(미카타가와라) 승리한 다케다 신겐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망간 하마마츠성의 북쪽으로 1 km정도 떠러진 곳에 있는 사이가카게(犀ヶ崖)의 북측에 포진 합니다. 심야가 되자, 이에야스 부하 아마노 야스카게(天野康景)와 오오쿠보 타다요(大久保忠世) 등이 패전을 만회 하려고 야습을 걸치는 작전을 세웁니다. 16정의 총과 약 100명의 군사를 거느려 은밀하게 지름길로 이동하는 데다가, 눈이 올 듯해 어둑어둑한 밤이고, 적은 지리를 이야에스군만큼 잘 모르기 때문에 야습의 성공확률은 높았습니다. 90 m의 벼랑의 다리를 자르고, 다리처럼 생긴 거짓 구조물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일제히 총을 쏘아 울리며 함성을 지르자, 생각지 못한 야습에 동요한 다케다가, 거짓 다리에 쇄도해 잇달아 벼랑에 추락해 많은 사상자를 내어 대타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오오쿠보 타다요 초상


 그러므로, 이 근처는 '누노하시(布橋)'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이 기습으로부터 3년후, 벼랑아래서 기묘한 신음 소리가 들리거나 메뚜기가 발생하는 등의 불길한 일이 거듭되어 이 사이가카게 기습의 원혼 때문 아닌가? 라는 소문이 퍼져 이에야스의 명령에 의해, 원혼을 진정시키는 염불을 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어느덧 추석의 행사로서 행해지게 되어, 현재도 하마마츠시의 전통 예능으로서 남는 엔슈 대염불(遠州大念仏)이라고도 합니다.



원혼을 달랜 엔슈 대염불입니다. 장관이네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도쿠가와측의 사료에 밖에 나오지 않아, 별로 신뢰가 가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카시와자키 이야기(柏崎物語)」에도 도쿠가와 사천왕 사카키바라 야스마사(榊原康政)가 신겐이 하마마츠성의 근처에 진을 지은 것을 보고 '어두운 동안에 성을 공격할 지도 모르다'라고 생각하고 요격을 위해, 100명의 군사와 함께 성벽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다케다군이 공격해 오지 않자, 약간 적의 진에 다가가 총을 쏘아 올려 적진에서 큰소란이 일자, 급히 물러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기습 비스무리한 것은 있었지만, 딱히 다케다군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