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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미카타가와라 전투(2) 이야에스 고립되다, 후타마타오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미카타가와라 전투(2) 이야에스 고립되다, 후타마타오성 공방전 겐키 3년(1572년) 도토미에 침공한 다케다 신겐의 별동대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후타마타오성을 포위했습니다. 히토고토자카 전투(히토고토자카)를 펼친 다케다 신겐의 본대와 이누이성(犬居城)으로 움직인 별동대가, 하마마츠성(浜松城)의 북동에 위치하는 후타마타오(二俣尾城)성을 포위했습니다. 성을 지키는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부하 나카네 마사테루(中根正照)와 아오키 사다하루(青木貞治), 마츠다이라 야스야스(松平康安)였습니다. 공격하는 다케다측은 신겐의 아들 다케다 가쓰요리(武田勝頼)를 주력으로 한 부대였지요. 후타마타오성은, 텐류우강과 후타마타오강에 둘러싸인 대지 위에 쌓아 올린 천연의 요충지에 위치한 성이라 공격하기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미카타가와라 전투(1) 혼다 타다카쯔의 분전, 히토코토자카 전투 일본 전국시대;미카타가와라 전투(1) 혼다 타다카쯔의 분전, 히토코토자카 전투 겐키 3년(1572년) 도토미에 진출해 온 다케다 신겐과 그것을 맞아 싸우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이에 미카타가와라 전투의 전초전인 히토코토자카 전투(一言坂の戦い)가 있었습니다. 상경한 뒤 노부나가와 사아가 험악해진 요시아키가 가장 의지한 것은 전국 최강이라 구가된 가이의 다케다 신겐이었습니다. 결국 겐키 3년(1572년) 본거지 쯔즈지가사키관(躑躅ヶ崎)에서 출진한 신겐은 호조 우지마사의 원군 2,000을 포함한 약 2만 5,000의 대군세를 3개로 나누어 각각 다른 루트로 침공합니다.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가 인솔하는 5,000의 군세는 시나노의 이이다 방면에서 미카와로 남하해 오쿠미카와(奥三河)에 침공하고, 이에야스군..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케다 신겐, 상경을 시작하다. 진정한 목적은?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다케다 신겐, 상경을 시작하다. 진정한 목적은? 겐키 3년(1572년) 말 가이의 다케다 신겐이 드디어 상경을 목적으로 원정을 시작합니다. 가이의 호랑이 신겐도 이제 노쇠한 무렵, 그는 서쪽으로 원정을 떠납니다. 원정의 목적은 상경입니다. 이미, 신겐보다 어린 우에스기 겐신이나 오다 노부나가도 상경을 했었고, 당시 노부나가와 불화가 된 15대 무로마치 막부 장군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요청도 있어, '수도를 지배하는 사람은 천하를 지배한다'라고 말해졌던 전국시대, 그는 상경의 길을 떠납니다. 하지만 이를 절대 상경이 목적이었다 단언할 수 없는 점도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 신겐의 출진이, 정말로 상경 목적이었는지에 대해 정리해 보려 합니다. 이때는 이미 12월도 중순을 지난 무렵..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케다와 오다가 엎치락 뒤치락, 이와무라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케다와 오다가 엎치락 뒤치락, 이와무라성 공방전 겐키 3년(1572년) 다케다 신겐의 중신 아키야마 노부모토(秋山信友)에게 공격받으면서도 농성을 계속하고 있던 이와무라성이 함락 당했습니다. 이와무라성은 미노국의 남동부에 위치해, 동쪽은 시나노, 남쪽은 미카와에 접하는 장소로 교통의 요소이며,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 일은, 그 노부나가의 아버지 오다 노부히데(織田信秀)도 눈치채고 있어, 가마쿠라 시대부터 이 땅을 지키는 토야마가의 후예인 이와무라 성주 토야마 카게토우(遠山景任)에게 자신의 여동생 요쯔야노 가타(おつやの方)를 정실로 시집가게 해 이와무라성을 수중에 넣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카게토우와 오쯔야노 가타의 사이에는 아이가 없어 오다 노부나가의 5남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케다와 호조, 후카자와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다케다와 호조, 후카자와성 공방전 겐키2년(1571년) 다케다와 호조가 후카자와성(深沢城)의 소유권때문에 격돌한 '후카자와성 공방전(深沢城攻防戦)'이 끝났습니다. 이마가와 우지자네를 물리치고, 스루가를 손에 넣은 다케다 신겐에게 있어서 이 후카자와성은 이웃나라 사가미와 국경을 접하는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그것은 사가미를 본거지로 하는 호조 우지마사(北条氏政)에 있어서도 같았지요. 어떻게든, 이 땅을 손에 넣고 싶은 우지마사는 신겐의 칸바라성(蒲原城)을 점령하려던 사타토우케(薩埵峠)에서 큰 피해를 입은 에이로쿠 12년(1569년) 이후에도 가끔 후카자와성에 출병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이 성을 지키는 것은 다케다측의 코마이 마사나오(駒井)였습니다. 겐키 원년(1570년) 우지마사는 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케다가와 호조가의 대결; 미마세 고개의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다케다가와 호조가의 대결; 미마세 고개의 전투 에이로쿠 12년(1569년) 귀국 중의 다케다 신겐의 군을 호조 군이 미마세고개에서 기습한 '미마세고개의 전투(三増峠の戦い)'가 있었습니다. 키요스 동맹을 깨고 이마가와가로 쳐들어간 신겐은 스루가를 얻게 됩니다.(이마가와관 공방전) 당연히 이 신겐의 행동을 본 사가미의 호조가는 경계의 태도를 드러내고 군사를 움직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충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다음해 에이로쿠 12년(1569년), 신겐은 이제 사가미에 원정을 개시합니다. 신겐은 가이에서 출진해, 시나노로 우회해, 우에노를 거치고, 무사시로 이동해 거기서 사가미로 들어갑니다. 게다가 후호조의 지성인 하치가타성(鉢形城), 타키야마성(滝山城)을 견제하며 남쪽으로 이동해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이마가와 멸망하다(2) 카게가와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이마가와 멸망하다(2) 카게가와성 공방전 에이로쿠 11년(1568년) 요전날의 슨푸 이마가와관의 공방전에서 다케다 신겐에 쫓겨 도토미에 도망친 이마가와 우지자네를 공격하기 위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카케가와성을 포위했습니다. 에이로쿠 11년 말, 신겐이 가이에서 스루가로 진공(삿타토우케 전투)하는 것과 동시에, 이에야스는 미카와에서 도토미로 진공을 개시했습니다. 다음해에, 도쿠가와군에 의한 카케가와성 공방전이 개시합니다. 성주인 아사히나 야스모토(朝比奈泰朝)는 이마가와의 중신 뿐만 아니라 전국시대에서의 굴지의 지장입니다. 도쿠가와측의 공격은 신통찮고 3월 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이에야스 자신이 총대장이 되어 카케가와성 공방전에 참가합니다. 그때까지 도쿠가와의 공격을 잘 막고 있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이마가와 멸망하다(1) 이마가와관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이마가와 멸망하다(1) 이마가와관 공방전 에이로쿠 11년(1568년) 스루가에 침입한 가이의 다케다 신겐이 이마가와 우지자네의 저택 이마가와관을 공격했습니다. 삿타토우케 전투(삿타토우케 전투)에서 간단히 승리를 거머쥔 신겐은 그 기세를 몰아 이마가와관으로 쳐들어 갑니다. 이마가와관은 후에 슨푸성(駿府城)이 되는 곳이지만, 이때는 '성'이 아니라 '관'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평탄한 장소에 건설된 건물이어서 농성이 쉽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당연히 우지야쓰도 이 이마가와관에서 방어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사가미의 호조 우지마사(北条氏政)에게 원군의 요청을 하며 관의 배후에 있는 시즈하타야마성(賤機山城)에 농성 하며 호조의 원군을 기다리려 합니다. 그러나 그 작전을 읽고 있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삿타토우케 전투, 신겐 스루가에 진공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삿타토우케 전투, 신겐 스루가에 진공하다 에이로쿠 11년(1568년) 스루가에 진공하려고 하는 다케다 신겐과 그것을 맞아 싸우는 스루가의 이마가와 우지자네(今川氏真)가 격돌한 '삿타토우케 전투(薩埵峠の戦い)'가 있었습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오케하자마 전투(오케하자마 전투)로 오다 노부나가에게 목숨을 잃은 후, 뒤를 이은 것이 장남 우지자네(氏真)입니다. 그러나 동해도 제일궁 요시모토의 후계자 자리는 그에게는 너무 과중했던것 같습니다. 가신단의 마음은 주군에게서 떠나 이마가와가는 순식간에 쇠퇴해갔습니다. 우지자네의 어머니가 다케다 신겐의 여동생(죠우케이인)이였기 때문에 당분간은 손을 대지 않았던 신겐이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키요스 동맹을 파기해 미카와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손을..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케다 신겐의 적남 요시노부의 할복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케다 신겐의 적남 요시노부의 할복 에이로쿠10년(1567) 아버지 다케다 신겐에 의해서 유폐 되고 있던 적남 요시노부가 할복 했습니다. 텐분7년(1538년)에, 가이의 다케다 신겐의 장남으로 정실 산죠노가타와의 사이에 태어난 타케다 요시노부(武田義信)는 아버지의 애정을 받으며 자랍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노부토라를 쫓아낸 일의 반작용인지, 자신의 아들에 대해서는 무한한 애정을 쏟은 것 같습니다. 텐분 21년(1552년) 요시노부가 15세 때 스루가의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딸과 결혼했을 때에는 거국적으로 축하했고 다음 해 아시카가 요시테루에게 이름의 한 글자를 받아 요시노부라 자칭했을 때에도 매우 기뻐해 집까지 신축해 버렸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 다음 해에는 앞의 이마가와에 사가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