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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가문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한번의 전투로 멸망, 이마가와 가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한번의 전투로 멸망, 이마가와 가문



 전국시대에 일어나고 몰락한 수많은 가문 중에서 이마가와 가문 만큼이나 한 번의 대패로 몰락한 가문이 또 있을까요? 보통 이마가와 가문은 오다 노부나가의 발판(...)으로 등장하나 사실 요시모토는 엄청나게 유능한 다이묘였고, 그의 아들인 우지자네는 평벙한 다이묘였습니다. 다만 상대가 노부나가였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아카토리赤鳥



이마가와 가문의 성립


 스루가의 센고쿠 다이묘였던 이마가와 가문의 조상은 다름아닌 아시카가 가문입니다. 아시카가 가문이 분가해 이마가와의 마을들을 다스리면서 '이마가와'라 자칭하게 된 것입니다. 호조가문[각주:1]과 덴노의 권력 투쟁인 '나카센다이의 난'에서 아시카가 측에선 이마가와 가문은 스루가, 도토미의 수호직을 제수받게 됩니다. 이 뒤로 이마가와 가문은 스루가, 도토미 양국의 영지를 통치하는데 심혈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오닌의 난(오닌의 난)이 발발하자 이마가와 가문은 둘로 나뉘어져서 참가합니다. 이 와중에 요시타다(義忠)가 살해당하고, 그의 적남 류오마루(竜王丸: 후의 우지치카)는 단 6세 였기에 잡음이 생기나, 호조 소운의 중개로 류오마루의 백부, 오시카 노리미츠(小鹿範満)가 섭정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류오마루가 성인이 되어도 노리미츠는 실권을 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류오마루는 슨푸관에서 노리미츠를 공격해, 가독을 상속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도토미, 스루가를 완전히 재패하고, 검지령을 내리고 분국법을 제정하는 등 이마가와 가문의 기틀을 닦아 놓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단점이 하나 있었으니, 자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와 이마가와 가문의 중흥



이마가와 요시모토



 결국 이 후계를 차지하기 위해, 이마가와가의 집안의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지테루에는 같은 날에 죽은 히고고로우 이외에도 아직 두 명의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어릴 적에 출가해, 승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두 명은 각각 정실의 아들 히이카쿠 쇼우호우(梅岳承芳)와 측실의 아들 겐코우 운단(玄広恵探)입니다. 이 분쟁을 히나구라의 난(히나구라의 난)이라 합니다. 여기서 승리한 쇼우호우는 이마가와 요시모토라 자칭하게 됩니다.


 요시모토는 적대했던 다케다와 화목을 맺고 그의 딸인 죠우케이인(죠우케이인)과 결혼합니다. 이에 호조 가문과는 소원하게 되지요호죠 우지쓰나(北条氏綱)는 슨토, 후지의 2군에 침입했습니다. 요시모토후지가와를 넘어 병사를 진출시켜, 그를 패퇴시켜 버립니다. 이 사이에, 오다가 미카와로 진출해, 마츠다이라 가문을 압박합니다. 이에 마츠다이라는 타케치요(竹千代)[각주:2]를 인질로 보냈지만, 오다가문이 그를 납치해 버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츠다이라 가문이 오다 가문에 넘어갈까 두려웠던 요시모토는 오다를 공격해 잡은 인질과 타케치요를 맞교환합니다.그리고 오다 가내의 내분을 타 오와리에도 진출하였습니다.


 하지만 노부나가가 당하고만 있을 리 없고, 호조를 설득해 이마가와를 협공합니다. 요시모토는 다케다를 끌어들이나 전투는 교착하고, 결국 이들은 서로의 딸과 아들을 결혼시키는 '키요스 동맹'을 맺게 됩니다. 이 동맹을 기반으로 세력을 정력적으로 확장하던 그는 교토로 상경을 결심합니다.(이마가와 요시모토 상경) 하지만 이 상경은 오케하자마에서 오다 노부나가의 기습으로 인해 요시모토가 목숨을 잃으며 중지되고 맙니다.(오케하자마 전투)



정말로 우군인가? 이마가와 우지자네



이마가와 우지자네



 적남이었던 우지자네(氏真)에게 오케하자마의 상흔은 너무 컸습니다. 사실 요시모토 당시에도 소 다이묘들의 연합체였던 이마가와 가문은 구심점이 없어지며 뿔뿔이 흩어졌고, 타케치요는 혼란을 틈타 성을 탈취해 '이야에스'를 자칭하며 이마가와를 괴롭힙니다. 결국 다케다 신겐이 스루가를 공격한 이마가와관 전투(이마가와관 전투)로 전국 다이묘 이마가와 가문은 멸망하고 맙니다. 이후 우지자네는 축국이나 와카를 즐기며 살았습니다. 후에 「난타이 평기(難大平記)」를 저술한 이마가와 사다요(今川貞世)를 선조로 하는 도토미 이마가와 가문이 끝까지 남았다.

  1. 전국시대의 호조가문은 다른 가문으로, 후호조라 합니다. [본문으로]
  2. 후의 도쿠가와 이야에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