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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다의 수군, 모리 수군에 참패하다 키즈가와구 해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다의 수군, 모리 수군에 참패하다 키즈가와구 해전 덴쇼 4년(1576년)11, 10년에 걸친 오다 노부나가와 이시야마 혼간지의 전투 중 '제1차 키즈가와구 해전(第一次木津川口海戦)'이 전개되었습니다. 천하 통일을 목표로 하는 오다 노부나가와 종교에 의한 단결로 권력에 지배되지 않는 자유 도시를 운영하는 혼간지의 대립은 마침내, 겐키 원년(1570년) 오사카 이시야마혼간지의 법주 캔뇨가 전국의 혼간지 문도에게 한 요청에 의해서 이시야마 전투로 격화됩니다. 이 도중 노부나가에 의해 쇼군의 권력을 잃은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요청에 응해 이시야마 혼간지에 다케다 신겐이나 우에스기 겐신, 아사쿠라 요시카게, 아자이 나가마사등에 의한 노부나가 포위망이 깔리게 됩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하나 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를 패퇴시킨 사이가중, 단가가와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를 패퇴시킨 사이가중, 단가가와 전투 덴쇼 5년(1577년) 오다 노부나가가 사이가 공격을 개시하자, 스즈키 마고이치(鈴木孫一)가 그에 맞서 싸웠습니다. 10년 이상이나 오다 노부나가와 항전을 계속한 제11대 법주 켄뇨를 중심으로 하는 이시야마혼간지의 근본에는 '싸워 서 죽으면 극락 왕생할 수 있다' 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 열광적인 신도에 의한, 죽음도 불사하는 병사들과 거기에 협력한 무장 집단의 존재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모리의 무라카미 수군이 제1차 키즈가와구 해전에서 노부나가를 격퇴하지요. 한편, 그런 수군과 함께 혼간지를 지지한 것이, 사이가중이 대량의 총과 사격 기술이었습니다. 사이가중은 기노카와 하류 지역에 사는 토착의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당시의 기슈(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다 노부나가와 이시야마 혼간지 격돌! 텐노지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다 노부나가와 이시야마 혼간지 격돌! 텐노지 전투 덴쇼 4년(1576년) 이시야마혼간지를 포위한 오다 노부나가 군의 성채를 둘러싼 격렬한 공방전인 텐노지 전투가 전개되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와 결별한 제15대 무로마치 막부 쇼군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요청으로, 아자이 나가마사, 아사쿠라 요시카게, 다케다 신겐등의 무장에 의해서 형성 된 노부나가 포위망에는 제11대 혼간지 법주 켄뇨(顕如)가 더해져, 전국에 잇코우 잇키를 일으키며 오다를 적대하고 있었습니다. 현재의 오사카성 위치에 있었다고 여겨지는 이시야마 혼간지는 이런 잇코우 잇키의 중심이 되는 장소였습니다. 그런 혼간지와 노부나가와의 전투인 이시야마 전투는, 겐키 원년(1570년)부터 덴쇼 8년(1580년)까지 11년에 걸쳐서 전..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츠네야마성, 여성들이 죽창을 들고 분전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츠네야마성, 여성들이 죽창을 들고 분전하다 덴쇼 3년(1575년), 모리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우에노 다카노리(上野隆徳)가 지키는 비젠 츠네야마 성(備前常山城)를 점령했습니다. 반 오부나가 포위망에도 굴하지 않고 세를 불리는 노부나가는 계속해서 하나 하나 세력을 억제하고 있었습니다. 아자이와 아사쿠라는 멸망하고 그 두개골이 술잔이 되고 말았지요. 노부나가의 세력이 서쪽으로 향할 때, 지금까지 전국 다이묘 모리의 지배를 받아 온 여러 무장들은 도대체 어느 쪽으로 붙을 지가, 당시 관서의 세력들의 가장 큰 관심아 였습니다. 이즈음에, 하리마의 소영주 코데라(小寺)가의 가신이었던 쿠로다 죠수이(黒田如水)가, 주군 코데라 마사모토(小寺政職)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다의 신하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시라타가하라 전투(3) 다케다와 오다의 운명이 갈린 시라타가하라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시라타가하라 전투(3)다케다와 오다의 운명이 갈린 시라타가하라 전투 덴쇼 3년(1575년) 시라타가하라에서 오다, 도쿠가와 연합군과 다케다군이 부닥쳤습니다. 비가 그치고 맑은 하늘이 보였습니다. 다케다 가쓰요리가 이끄는 약 1만 2000의 군사는 시라타가하라에 진군해 학익진을 펼쳤습니다.(일본 전국시대의 진형) 한편, 렌고가와(連吾川)를 끼고, 정면에서 마주 보는 형태로 포진 한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과 다케다 가쓰요리군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6 시경 가장 왼쪽에 포진한 선봉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가 개전을 고하는 북을 치고, 목책의 좌측을 돌아, 도쿠가와군의 오오쿠보 타다요(大久保忠世)와 격돌합니다. 타다요는 과감하게도, 총포대를 목책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시라타가하라 전투(2) 사카이 타다츠쿠의 토비가쓰야마 성채 기습 일본 전국시대;시라타가하라 전투(2) 사카이 타다츠쿠의 토비가쓰야마 성채 기습 덴쇼 3년(1575년), 다케다 가쓰요리의 본대가 시타라가하라를 향한 뒤에, 사카이 타다츠구가 토비가쓰야마 성채에 기습을 걸어에 출발했습니다. 3만에 달하는 오다, 도쿠가와 연합군이 시타라가하라에 진을 치고 성채나 망루를 쌓고 있는 와중에, 다케다 본대 내에서는 계속해서 군의를 가집니다. 퇴각인가, 결전인가에 대해 논의를 계속하나, 오다 도쿠가와 연합군이 무려 3만에 달하지만 그에 비해 다케다군 절반 정도인 1만 5,000이었기 때문에 바바 노부하루, 나이토 마사토요, 야마가타 마사카게등 신겐때부터 다케다를 섬긴 중신들은 모다 퇴각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가쓰요리의 측근인 아토베 카쯔스게(跡部勝資)가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시타라가하라 전투(1) 전투의 서막이 올라가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시타라가하라 전투(1) 전투의 서막이 올라가다 덴쇼 3년(1575년) 미카와 나가시노성 구원에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 약 3만이 시타라가하라(設楽原)에 도착했습니다. 나가시노성이 공격을 받자(나가시노성 공방전), 나가시노성의 성주 오쿠다이라 노부마사는 전령을 보내(토리이 쓰네몬 가츠아키) 이야에스에게 원군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이야에스는 미카타가와라의 상처를 입은 상태로, 별로 힘이 없었습니다. 이야에스는 결국 동맹인 노부나가에게 원군을 요청합니다. 이때가지도 반 노부나가 동맹은 건재한 상태지만, 노부나가는 결단을 내려 다케다군을 막으러 이동합니다. 재빠르게 오사카에서 기후로 이동한 그는 어느새 3만을 인솔해 기후를 출진해 오카자키로 향합니다. 그리고 이야에..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나가시노 전투(2) 최고의 전령, 토리이 쓰네몬 가츠아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나가시노 전투(2) 최고의 전령, 토리이 쓰네몬 가츠아키 덴쇼 3년(1575년) 나가시노에서 오카자키로 구원 요청을 간 토리이 쓰네몬 가츠아키가 나가시노에 돌아오는 도중에 잡혀 책형에 처해졌습니다. 사실 오늘 다룰 이 인물은 잡병 정도인 인물로, 원래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일이 없었을 사람입니다. 다케다 가쓰요리의 가신 오치아이 사베이지(落合佐平次) 의 하타사시모노의 도안으로,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강한 이펙특다 있는 꽤 유명한 하타사시모노입니다. 이 하타사시모노의 주인공이 다름아닌 토리이 가츠아키입니다. 하타사시모노는 저번에 이야기 했었습니다.(하타사시모노) 당시의 오쿠다이라가문은 토호 보다 조금 나은 성 하나만을 지닌 사무라이입니다. 대영주 다케다의 대군에 포위되서는 가망..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나가시노성 공방전(1) 나가시노성 공방전, 시작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나가시노 전투(1) 나가시노성 공방전, 시작 덴쇼 3년(1575년, 다케다 가쓰요리(武田勝頼)가 미카와 나가시노성(長篠城)의 오쿠다이라 노부마사(奥平信昌)를 포위했습니다. 아직 가이의 호랑이 다케다 신겐이 건재했을 때에 나가시노 성주 오쿠다이라 노부마사는 아버지와 함께 다케다에 신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 덴쇼 원년(1573년) 신겐의 죽음을 계기로 등을 돌리게 됩니다 신겐의 죽음은 당분간 공표되지 않았지만, 그때 까지 파죽지세로 상경하던 다케다군이 노다성공방전 뒤로 갑자기 철퇴를 개시한 일에는(노다성 공방전), 누구라도 이상하게 생각해 그 불신감과 동요는 가신들에게도, 그리고 주위의 전국 무장에도 퍼져 그런 중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포위를 받고 있던 미카와측의 최전선 위치에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히사히데, 노부나가에게 첫 번째 반란을 일으키다 일본 전국시대; 히사히데, 노부나가에게 첫 번째 반란을 일으키다 덴쇼 원년(겐키4년 1573년) 말,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요청에 따라 오다 노부나가 포위망에 참여하고 있던 마츠나가 히사시데가 항복해 다몬성(多聞城)을 노부나가에 양도했습니다. 이 마츠나가 히사시데(松永久秀)는 그 생애에 2번 노부나가에 항복하고, 2번 칼을 섞었습니다. 처음은 오다 노부나가가 제15대 무로마치 막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받들어 상경했을 때 바로 항복해 츠구모카스(作物茄子)를 바쳐 오히려 노부나가에 마음에 들어 요시아키의 가신이 되었습니다.(마츠나가 하사히데) 그 후, 노부나가에 2번 반기를 들어, 그 2번째 반란에서는 장렬히 폭사합니다만, 이 때도 노부나가는 히라구모(平蜘蛛)를 주면 모반을 용서한다고, 마왕이라고 칭해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