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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아자이를 멸망시키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노부나가, 아자이를 멸망시키다 덴쇼 원년(1573년) 8월 27일, 오다 노부나가의 군세가 북 오미의 아자이 나가마사의 본거지 코타니성에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노부나가와 각축을 벌인 아자이, 아사쿠라는 아네가와 전투 등이 있은 뒤로 노부나가가 우세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노부나가는 에츠젠을 공격하는 한편, 아사쿠라가와 동맹 관계에 있는 아자이가에 책략을 걸고 동시 있었습니다. 바로 북 오미의 무장들에게 은밀히 오다측에 가담하게 한 것이지요. 그 책략이 성과를 내서 오미 야마모토산성(山本山城)의 성주 아쯔지 사다유키(阿閉貞征)가 오다측에 붙습니다. 이것을 절호의 기회라 생각한 노부나가는 재빨리 아자이가의 본거지 코타니성에 주력 부대를 향하게 합니다. 이를 안 아사쿠라 요시카게는 자신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아사쿠라를 공격하다, 토네사가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아사쿠라를 공격하다, 토네사가 전투 덴쇼 원년(1573년) 에츠젠의 아사쿠라 요시카게를 오다 노부나가가 추격한 토네사가 전투(刀禰坂の戦い)가 있었습니다. 아네가와의 전투 이후로도, 오다 노부나가에게 저항을 계속하고 있던 에츠젠의 아사쿠라 요시카게와 오미의 아자이 나가마사 그들의 노부나가 포위망은 제일의 거물인 다케다 신겐의 죽음 이후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쇼군 요시아키를 교토에서 추방한 노부나가는 계속해 오미로 쳐들어갑니다. 물론, 노부나가의 타겟은 아자이 나가마사와 아사쿠라 요시카게였습니다. 나가마사의 거점 오다니성(小谷城)을 포위한 노부나가군에 대해 아사쿠라의 원군은 성의 북측에 진을 쳤습니다. 노부나가는 먼저 이 원군에 공격을 개시합니다. 그런데 얼마 뒤, 이 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아사쿠라를 멸하고 에츠젠을 정벌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노부나가, 아사쿠라를 멸하고 에츠젠을 정벌하다 덴쇼 원년(1573년) 오다 노부나가가 에츠젠의 전국 다이묘 아사쿠라를 멸망시킨 '에츠젠 정벌(越前征伐)' 있었습니다. 아네가와 전투이후 도망친 아사쿠라와 아자이는 계속해서 노부나가와 반목합니다. 그러나, 덴쇼 원년(1573년) 드디어 노부나가는 대군을 인솔해 에츠젠으로 진공을 개시합니다. 보통이 아닌 기세를 느낀 요시카게(義景)는 서둘러 2만의 군사를 인솔해 히키타성(疋壇城)으로 향합니다. 요시카게는 기세등등한 노부나가 군세에 성을 들어가기 전부터 공격을 받아, 겨우겨우 히키타성에 들어 갔습니다. 노부나가는 재빨리 이번에는 성으로 향해 총공격을 개시합니다. 심상찮은 오다군의 기세에 중신 야마자키 요시이에(山崎吉家)를 잃어, 간신히 본거..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다 노부나가, 요시아키의 니죠고쇼를 태우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다 노부나가, 요시아키의 니죠고쇼를 태우다 겐키4년(덴쇼 원년 1573년) 오다 노부나가가 니죠고쇼(二条御所)에 불을 지른 '상경 방화 사건(上京焼き討ち)'이 있었습니다. 상경후, 계속해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요시아키와 갈등을 겪던 노부나가는, 요시아키가 깃들이는 니죠고쇼가 있는 상경일대를 불질러 버립니다. 루이스 프로이스의 「일본사」에 의하면 그 땅에 있던 모든 사원이 소실해, 주변의 2~3리에 있는 50개의 마을이 태워져 마치 마지막 심판의 날같았다 하지만 「신초코기」에는 '상경에 방화했다'고 밖에 써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진위가 의심스런 히에이잔 토벌(히에이잔 렌라쿠지를 토벌했다?)때도 '모든 것을 다 태워 , 눈도 뜰 수 없는 모양이었다' 라고 되어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이..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케다 신겐의 마지막 전투, 노다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다케다 신겐의 마지막 전투, 노다성 공방전 덴쇼 원년(1573년) 상경 중이었던 다케다 신겐이 도쿠가와의 노다성(野田城)을 공격했습니다. 이 덴쇼 원년, 신겐은 53세, 겐신은 44세, 노부나가가 40세, 히데요시와 이에야스는 아직 30대였지요. 자신의 운명을 알았던 것인지, 신겐은 작년부터 상경에 착수합니다. 충분히 천하를 노릴 수 있있던 신겐은 만반의 준비를 한 상경이었습니다. 아직 풋나기인 이에야스를 미카타가와라(미카타가와라)에서 격파한 신겐은 이에야스의 거성 하마마츠성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노다성을 목표로 합니다. 그리고 덴쇼 초 노다성을 포위한 신겐은 공격을 개시합니다. 미카타가와라에서 대패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에야스는 원군을 보내는 보지만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미카타가와라 전투(5) 신겐, 히로히데의 목을 노부나가에 보내다 일본 전국시대; 미카타가와라 전투(5) 신겐, 히로히데의 목을 노부나가에 보내다 겐키 3년(1572년) 승리한 다케다 신겐이 수급을 확인했습니다. 미카타가와라 전투가(미카타가와라) 끝난 다음날, 신겐은 죽인 무장의 확인을 실시합니다. 그 중에는, 이에야스와 동맹 관계에 있던 오다 노부나가의 원군 히라테 히로히데(平手汎秀)의 목도 있었습니다. 그는 노부나가의 모리야꾸(傅役; 스승역)인 중신 히라테 마사히데(平手政秀)의 삼남(손자라고 하는 설도 있음)입니다. 마사히데는 젊은 날의 노부나가가가 기발한 패션을 하고, 양아치들의 리더가 되고, 날뛰어 오와리의 망나니로 불리고 있었을 무렵,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노부나가에 호소한 인물입니다.(히라테 마사히데의 할복) 노부나가가 정말로 생각이 없지는 않았기에, 자신에게..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미카타가와라 전투(4) 총소리로 다케다 군세를 벼랑으로 몰다, 사이가카게 기습 일본 전국시대; 미카타가와라 전투(4) 총소리로 다케다 군세를 벼랑으로 몰다, 사이가카게 기습 겐키 3년(1572년) 미카타가와라 전투가 끝난 밤에, 도쿠가와의 군세가 다케다의 진지에 야습을 시도했습니다. 겐키 3년(1572년) 미카타가와라 전투에(미카타가와라) 승리한 다케다 신겐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망간 하마마츠성의 북쪽으로 1 km정도 떠러진 곳에 있는 사이가카게(犀ヶ崖)의 북측에 포진 합니다. 심야가 되자, 이에야스 부하 아마노 야스카게(天野康景)와 오오쿠보 타다요(大久保忠世) 등이 패전을 만회 하려고 야습을 걸치는 작전을 세웁니다. 16정의 총과 약 100명의 군사를 거느려 은밀하게 지름길로 이동하는 데다가, 눈이 올 듯해 어둑어둑한 밤이고, 적은 지리를 이야에스군만큼 잘 모르기 때문에 야습..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미카타가와라 전투(3) 이야에스 다케다에 참패하다, 미카타가와라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미카타가와라 전투(3) 이야에스 다케다에 참패하다, 미카타가와라 전투 겐키 3년(1572년) 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생애로 최대 패전 미카타가와라 전투가 있었습니다. 4만 5천의 대군을 인솔해 가이를 출발, 교토를 향해 서쪽으로 나아가는 다케다의 앞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있는 하마마츠성이 가로막습니다. 군사의 수가 훨씬 뒤떨어지는 이에야스는 농성 작전을 취해, 쳐들어 오는 다케다군에 대비합니다. 하지만 다케다군은 이에야스를 무시해 하마마츠 성벽아래를 그냥 지나치려고 합니다.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이야에스지만 이때는 아직 혈기를 가진 젊은이었지요. 이대로 통과시키는 것은 가문의 수치라며 가신들의 의견도 듣지 않은채, 미카타가와라에 진군합니다. 이에야스가 인솔하는 도쿠가와군의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미카타가와라 전투(2) 이야에스 고립되다, 후타마타오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미카타가와라 전투(2) 이야에스 고립되다, 후타마타오성 공방전 겐키 3년(1572년) 도토미에 침공한 다케다 신겐의 별동대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후타마타오성을 포위했습니다. 히토고토자카 전투(히토고토자카)를 펼친 다케다 신겐의 본대와 이누이성(犬居城)으로 움직인 별동대가, 하마마츠성(浜松城)의 북동에 위치하는 후타마타오(二俣尾城)성을 포위했습니다. 성을 지키는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부하 나카네 마사테루(中根正照)와 아오키 사다하루(青木貞治), 마츠다이라 야스야스(松平康安)였습니다. 공격하는 다케다측은 신겐의 아들 다케다 가쓰요리(武田勝頼)를 주력으로 한 부대였지요. 후타마타오성은, 텐류우강과 후타마타오강에 둘러싸인 대지 위에 쌓아 올린 천연의 요충지에 위치한 성이라 공격하기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미카타가와라 전투(1) 혼다 타다카쯔의 분전, 히토코토자카 전투 일본 전국시대;미카타가와라 전투(1) 혼다 타다카쯔의 분전, 히토코토자카 전투 겐키 3년(1572년) 도토미에 진출해 온 다케다 신겐과 그것을 맞아 싸우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이에 미카타가와라 전투의 전초전인 히토코토자카 전투(一言坂の戦い)가 있었습니다. 상경한 뒤 노부나가와 사아가 험악해진 요시아키가 가장 의지한 것은 전국 최강이라 구가된 가이의 다케다 신겐이었습니다. 결국 겐키 3년(1572년) 본거지 쯔즈지가사키관(躑躅ヶ崎)에서 출진한 신겐은 호조 우지마사의 원군 2,000을 포함한 약 2만 5,000의 대군세를 3개로 나누어 각각 다른 루트로 침공합니다.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가 인솔하는 5,000의 군세는 시나노의 이이다 방면에서 미카와로 남하해 오쿠미카와(奥三河)에 침공하고, 이에야스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