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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아사쿠라를 공격하다, 토네사가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아사쿠라를 공격하다, 토네사가 전투



 덴쇼 원년(1573년) 에츠젠의 아사쿠라 요시카게를 오다 노부나가가 추격한 토네사가 전투(刀禰坂の戦い)가 있었습니다. 



에츠젠 정벌 개요도 입니다



 아네가와의 전투 이후로도, 오다 노부나가에게 저항을 계속하고 있던 에츠젠의 아사쿠라 요시카게와 오미의 아자이 나가마사 그들의 노부나가 포위망은 제일의 거물인 다케다 신겐의 죽음 이후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쇼군 요시아키를 교토에서 추방한 노부나가는 계속해 오미로 쳐들어갑니다. 물론, 노부나가의 타겟은 아자이 나가마사와 아사쿠라 요시카게였습니다. 나가마사의 거점 오다니성(小谷城)을 포위한 노부나가군에 대해 아사쿠라의 원군은 성의 북측에 진을 쳤습니다. 노부나가는 먼저 이 원군에 공격을 개시합니다. 그런데 얼마 뒤, 이 오미 일대에 폭풍우가 불어 온 것을 계기로, 아사쿠라의 원군 공격에 주력을 투입해 북상을 개시합니다. 노부나가군에 압도된 아사쿠라군은 북쪽에 북쪽으로 패주 합니다.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등 아사쿠라군은 뒤따르는 노부나가군에 저항을 반복하면서, 본거지인 이치죠다니(一乗谷)로 도망칩니다. 그 도중에 일어난 제일의 격전이 덴쇼 원년(1573년)의 토네사가전투였습니다. 「신초코기」에 의하면


오미 북부로부터 토네가사로의 철퇴로, 무장:38명, 군사:3,800명이 전사 했다


 라 되어 있습니다. 물론 오다측의 기록인 만큼 숫자는 다소 과장되기는 한 것 같지만, 성주 였던 아사쿠라 카케유키(朝倉景行)나 아사쿠라 미치카게(朝倉道景)등의 아사쿠라가와 야마자키 요시이에(山崎吉家), 미야베 케이쥰(河合吉統)등의 유명한 무장도 여기서 전사 했기 때문에, 엄청난 격전이 있었던 일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노부나가에게 이나바야마성을 점령당해 아사쿠라에 의탁했던 사이토 타츠오키(斉藤龍興)도 이 전투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격전이라는 것은 아사쿠라측만이 아니라, 노부나가측도 대량의 사망자를 냈습니다는 것이지요. 야마노우치 가즈토요(山内一豊)는 이 전투에서, 활의 명수 미타자키 칸에몬(三段崎勘右衛門)이 쏜 화살에 얼굴이 관통해지면서도 어떻게든 칸에몬을 죽입니다. 하지만 그 상처는 상당히 깊어 왼쪽뺨에서 오른쪽의 어금니까지 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부하에게 얼굴을 밟게 해 고정시키고, 단번에 화살을 뽑아 냈다고 합니다.




야마노우치 가즈토요와 그의 떡갈나무 문장입니다.


 하지만 피가 멈추지 않아 죽음을 각오했지만, 근처에 있던 떡갈나무(柏の葉)를 상처에 대서 응급 처치를 해, 생명을 건졌다고합니다. 그런데도 칸에몬을 죽인 공훈은 동료에게 양보했다고 합니다. 야마우치가의 문장이 떡갈나무인 것은, 이 일화에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전투를 겪어 내며 어떻게든 이치조다니에 도착한 요시카게였지만, 믿고 있던 가신에게도 배신당해 결국 아사쿠라가는 멸망 합니다.이 전투를 후의 이치조다니성 공방전과 함께 이치조다니성 공방전이라 부르기도 하고, 노부나가가 아사쿠라씨를 멸망시킨 일련의 싸움을 에츠젠 정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