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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히사히데, 노부나가에게 첫 번째 반란을 일으키다

일본 전국시대;

히사히데, 노부나가에게 첫 번째 반란을 일으키다


 덴쇼 원년(겐키4년 1573년) 말,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요청에 따라 오다 노부나가 포위망에 참여하고 있던 마츠나가 히사시데가 항복해 다몬성(多聞城)을 노부나가에 양도했습니다. 


딱봐도 양아치인 히사히데


 이 마츠나가 히사시데(松永久秀)는 그 생애에 2번 노부나가에 항복하고, 2번 칼을 섞었습니다. 처음은 오다 노부나가가 제15대 무로마치 막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받들어 상경했을 때 바로 항복해 츠구모카스(作物茄子)를 바쳐 오히려 노부나가에 마음에 들어 요시아키의 가신이 되었습니다.(마츠나가 하사히데) 그 후, 노부나가에 2번 반기를 들어, 그 2번째 반란에서는 장렬히 폭사합니다만, 이 때도 노부나가는 히라구모(平蜘蛛)를 주면 모반을 용서한다고, 마왕이라고 칭해지는 노부나가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관대한 태도를 보입니다. 물론 히라구모를 정말로 원했을 지도 모르겠으나, 그만큼 히사히데가 매력적이라는 것이겠지요.


  '전국시대의 3 효웅'이라고 불려 1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를 미요시 삼인중과 함께 살해하고 주군인 미요시 나가요시를 독살해(사실인지는 의문이지만), 그 후 미요시 삼인중과의 전투 중 도다이사의 대불전을 태워버리는 전대미문의 행보는 정말로 기괴하기만 합니다. 그런 태도로 볼때 그가 애초에 노부나가에게 진심으로 항복했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겠지요. 곧 요시아키와 노부나가의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자 요시아키는 다이묘들에 요청해, 에츠젠의 아사쿠라 요시카게, 오미의 아자이 나가마사, 에치고의 우에스기 겐신, 가이의 다케다 신겐 게다가, 이시야마혼간지도 참가한 노부나가 포위망을 만듧니다. 노부나가의 부하로서 이시야마혼간지와의 전투에 참전하고 있던 히사히데는 겐키4년(1573년) 마침내 요시아키의 권유에 따르고 동맹을 맺고 미요시 삼인중과도 화해 해, 노부나가 포위망의 일각에 참여하게 됩니다. 아마 이 선택에는 신겐의 상경(다케다 신겐 상경)도 한 몫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상황에서 누가 노부나가가 승리할 거라 생각했겠습니까?


 하지만 그 신겐은 노다성공방전을(노다성 공방전) 마지막으로 가이로 돌아가 유명을 달리해 버립니다. 게다가 노부나가의 공격을 받아 요시아키가 수도에서 추방되고, 아자이, 아사쿠라 마저 패배하고 멸문당해, 미요시 삼인중 중 한명인 요시쓰구가 카와치 와카에성(若江城)에서 전쟁에 패해 잔사합니다. 마침내 덴쇼 원년(겐키4년 1573년) 말, 그는 노부나가에게 항복해 지배하고 있던 다몬성을 넘겼습니다. 그 후에는 노부나가의 가신인 사쿠마 노부모리(佐久間信盛)의 부하가 되어 일하게 됩니다. 노부나가는 배신한 아자이와 아사쿠라는 그 두개골을 술잔으로 만든 노부나가가, 히사히데는 배신을 그냥 용서해 준 것이지요. 그는 어떻게 노부나가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었을까요?


 아무래도 히사히데는 유행을 잘 파악하는 눈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히사히데는 노부나가보다 24세 연상, 노부나가에게는 아버지의 연령입니다. 그런 그의 다기 콜렉션을 받은 노부나가가 기뻐하며 '다이와 일국, 점령하는 대로'라는 보증문서를 써줬다고 하니, 그의 센스는 매우 세련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히사히데의 센스는 축성에도 발휘되고 있습니다. 다몬성을 방문한 루이스 프로이스의 기록에 의하면 



아름다운 다몬성의 모습(상상도)



 올려볼 정도의 높이의 수 채의 건물(천수각)이 있어, 칠흑의 기와에 새하얀 벽과 서양풍의 창격자를 가진 외국에서도  본 적이 없는 듯한 훌륭한 건조물이었다 흰 벽은 석회에 모래 대신 종이를 혼합한 것 같은데, 그 하얀색이 강조되는 구조다. 내부의 벽에는 역사의 이야기가 그려져있고, 빛나는 놋쇠 기둥에는 국화의 꽃이 조각되어 훌륭한 정원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성벽아래를 걸으면, 지금 막 건설했다고 생각하게 할 정도로 청결하고 희게 빛나는 길이 계속 되어, 마치 천국같았다.  


 이는 노부나가의 아즈치성의 감상과 비슷합니다. 실은, 노부나가의 축성은 히사히데의 기술을 살린 설계입니다. 실용적으로 방어에도 유리하나, 결코 미적 감각도 버리지 않은 세련된 성이었지요. 노부나가가 살린 히사히데의 축성기술은 이윽고 전국으로 퍼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