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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시카가 요시아키, 노부나가에게 쫓겨나 쇼군직 복위를 도모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시카가 요시아키, 노부나가에게 쫓겨나 

쇼군직 복위를 도모하다


 덴쇼 원년(1573년) 무로마치 막부 제15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있는 우지 마키지마성(槇島城)을 오다 노부나가가 공격했습니다. 



마지막 무로마치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



 어린 시절 쇼군직 계승과는 거리가 멀어 절에 들어가 생활을 하던 중, 미요시 삼인중과 히사히데의 손으로 쇼군이 죽고, 허수아비 쇼군이 세워지자, 이에 분노한 요시아키는 여러 세력을 끌여들여 자신이 쇼군이 되려 합니다.( 요시아키, 코호쿠지를 탈출하다) 그러나 상대는 그 미요시가, 많은 전국 다이묘들은 그에게 답장을 해 주지 않지요. 그러던 그를 구해준 것이 오다 노부나가, 노부나가는 파죽지세로 상경해 요시아키를 쇼군으로 만듧니다.(수도에 입성한 노부나가) 그런 노부나가를 '아버지'라고 부르기 까지 했던 그는 이제 쇼군의 권위를 찾으려 합니다. 자신이 직접 천하를 호령하려던 노부나가는 이것이 못마땅했겠지요.



그는 또다시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결국 노부나가와 사이는 갈수록 틀어집니다. 그는 반노부나가 세력과 접촉해 결국 노부나가 포위망을 만들지요. 그 뒤로 그의 명령을 받들은 아사쿠라가, 그 아사쿠라를 돕는 아자이가와 노부나가의 아네가와 전투가 있었고, 이시야마 혼간지와도 적대관계가 됩니다. 이로인해 나가시마에서는 잇코우 잇키도 일어나지요.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자신에게 유리하게 되었다고 판단한 요시아키는 아사쿠라, 모리 등의 전국 다이묘의 지원을 믿으며 미요시 삼인중과 히사히데와 함께 노부나가측의 교토 소시다이(京都所司代)인 무라이 사다가쯔(村井貞勝)의 저택을 포위한 것을 시작으로, 교토에서 반 노부나가의 봉화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반 노부나가파의 제일의 실력자였던 다케다 신겐은 이미 3개월전에 사망했고, 그 이외의 무장도 거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신속히 행동한 것은 노부나가입니다.


 덴쇼 원년(1573년) 노부나가는 결국 요시아키가 도망친 마키지마성을 포위해, 공격합니다. 당연히 상대는 되지 않아 요시아키는 결국 2세의 아들을 인질로 주고 항복해, 얼마뒤 수도로부터 추방되었습니다. 사실상 무로마치 막부가 멸망한것 입니다. 하지만 원래 쇼군직은 덴노가 임명하는 것 이어서, 스스로 사임하던가 무엇인가의 이유로 해임되지 않는 이상 명목상으론 남아 있지요. 교토를 쫓겨난 요시아키는 잇코우 잇키의 습격을 받아 가지고 있던 보물을 모두 빼앗기고 너덜너덜한 모습으로, 카와치(河内) 와카에성(若江城)의 미요시 요시츠구(三好義次)에 의탁한 그는 와신상담하며 노부나가에게 복수를 다짐합니다.


반 노부나가 연합 개요도


그는 모리에게 계속 지원 요청을 보냅니다. 이시야마혼간지를 물밑에서 지원하는 모리지만, 노부나가와의 직접 대결은 피하려 하지요. 그런 모리의 태도에 지친 요시아키는 스스로 움직여 모리의 영지의 빈고(備後)의 토모(鞆)로 옮겨 그곳에서 다시금 전국의 영주에게 향해 '노부나가 토벌령'을 발표 합니다. 그러나, 이 때 이미 의를 중시하는 우에스기 겐신은 죽고, 이시야마혼간지도 항복해 아무도 요시아키의 명령을 듣지 않습니다. 게다가 노부나가의 명령을 받아 츄고쿠 지방을 평정하던 하시바 히데요시가, 서쪽으로 향합니다. 이제 요시아키도 운이 다했다고 생각한 순간 노부나가는 혼노지의 변으로 가신이었던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습격당해 할복 하고 맙니다.(혼노지의 변)


 이제 자신의 권위를 회복하려 하려는 요시아키였지만, 미츠히데는 히데요시가 처치합니다. 그리고 히데요시는 시바타 가쓰이에를 넘어뜨려, 이윽고 모리도 그 산하에 두어 사실상, 천하는 히데요시의 것이 됩니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힘은 있어도 명예는 없었습니다. 거기서 히데요시는, 요시아키씨의 조카로 받아들여준다면, 쇼군직을 복위시켜 주겠다 타진합니다. 그러나 명예를 중시하던 요시아키는 이것을 거절합니다. 하지만 히데요시가 관백이 된 뒤에, 마키지마성에서 1만석을 수확하는 권리가 주어져, 쇼군직을 실질적으로 은퇴합니다. 결국 그는 게이쵸 2년(1597년)까지 살다 병사합니다. 겉은 너덜너덜해도, 속으로는 쇼군의 명예를 지킨 요시아키의 죽음은 바로 무로마치 막부의 멸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