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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상경을 시작하다(2) 수도에 입성한 노부나가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상경을 시작하다(2) 수도에 입성한 노부나가



 에이로쿠 11년(1568년) 9월 26일, 오다 노부나가가,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받들어 상경했습니다. 


 에이로쿠10년(1567년)의 여름 사이토가의 내부 분열을 오다 노부나가가 놓칠 리가 없었습니다. 단번에 이나바야마성을 점령하고 비원이었던 10년간의 미노 제패를 완수한(이나바야마 공방전) 그는 요시아키를 받들어 상경할 준비를 합니다. 이때 고나라덴노의 화장 비용마저 없을 만큼 궁핍했던 제106대 오오기마치덴노는 이미 노부나가에 의지해 미노, 오와리의 귀인들이 쓰는 의료, 식료, 나 아들의 성인식의 비용등을 부탁 하고 있습니다. 노부나가도 '천하포무(天下布武)' 즉, 천하에 무를 편다 라는 도장을 만들어 중요 서류에 사용하는 등 천하의 정권을 잡을 의지를 내외에 표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전국시대에서 노부나가가 처음으로 도장을 사용합니다



 그런 상태의 노부나가에게, 접근해 온 것이 막부 재흥을 꾀하는 아시카가 요시아키(요시아키, 코호쿠지를 탈출하다)였습니다. 그는 쇼군이 되기 위해 우에스기나 다케다라고 한 유명한 무장은 물론, 승병이 있는 사원에까지 편지를 썼습니다만, 아무도 좋은 대답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요시아키와 노부나가의 중개를 한 것이 바로 아케치 미쓰히데였습니다. 노부나가는 조속히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받들어 4만의 군세와 함께 9월초 기후를 출발합니다. 사실 노부나가에 있어서 아시카가 막부의 재흥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단지, 수도를 점거하고 조정과 접촉하지 않으면, 다른 전국 다이묘보다 한 층 더 뛰어난 일은 할 수 없습니다. 


 부나가에 있어서, 이 요시아키는, 상경을 위한 절호의 대의명분이됩니다. 노부나가는 이세를 평정 하고 아사이 나가마사의 군세도 더해 수도로 진군하지만 이것을 가로막은 것이 오미의 명문 롯카쿠가, 그러나 그 롯카쿠가의 17개 성을 단 3일에 공락해 버린(칸노우죠성 전투) 노부나가군에 수도를 점거하던 히사히데도 항복해 기세등등하게 수도에 들어간 것이 바로 에이로쿠 11년(1568년) 9월 말의 일이었습니다. 그 후, 요시아키를 시미즈지에서 보호한 노부나가는 토우지에 진을 치고 수도를 좌지우지하고 있던 미요시삼인중을 제거하고 수도를 제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