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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네가와의 전투(3) 아네가와의 칠본창과 하타사시모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네가와의 전투(3) 아네가와의 칠본창과 하타사시모노 겐키 원년(1570년) 6월 28일은 오다, 도쿠가와 연합군과 아자이, 아사쿠라 연합군이 부딪친 '아네가와의 전투'가 있었습니다. 전투의 이야기는 저번에 했으니, 이번 포스팅에서는 전쟁의 비화들을 해 볼까 합니다. '아네가와의 칠본창(姉川の七本槍)'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칠본창이라면, '시즈가타케의 칠본창(賤ヶ岳の七本槍)'으로 불리는 무장들이 유명합니다만, 아네가와의 전투에서도 '아네가와의 칠본창'이라고 칭해지는 무장들이 있습니다. 연대도 이때가 앞서고, 수도 사실은 시즈가타케 쪽은 9명으로, 사실은 이 '아네가와의 칠본창'이 원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아네가와 전투에서 오다군이 고전해, 몇 안 되는 수로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네가와 전투(2) 노부나가, 도쿠가와 연합군이 아자이, 아사쿠라 연합군을 무찌르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네가와 전투(2) 노부나가, 도쿠가와 연합군이 아자이, 아사쿠라 연합군을 무찌르다 겐키 원년(1570년) 오다, 도쿠가와 연합군이, 오미의 아자이, 아사쿠라 연합군과 싸운 전투가 있었으니, 바로 아네가와 전투입니다. 오다니성(小谷城)은 험한 산 위에 있어 포위가 힘든데다 아사쿠라 요시아키의 명령을 받은 아사쿠라의 중신 아사쿠라 카게아키라(朝倉景鏡)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성을 공격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노부나가는 어떻게든 오다니 성내의 군사를 꾀어내 평지에서 전투를 벌이려 합니다. 우선은 노부나가는 오다니성의 남쪽에 있는 요코타성(横田城)을 포위합니다. 오다니성은 험준한 산위에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물자의 운반이 쉽지 않다는 것이기 때문에, 교통의 요소에 있는 요코타성을 잃을..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네가와 전투(1) 노부나가, 이야에쓰와 나가마사가 대치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아네가와 전투(1) 노부나가, 이야에쓰와 나가마사가 대치하다 겐키 원년(157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가세를 요구한 오다 노부나가가 아자이 나가마사 토벌을 위해 기후를 출진했습니다. 어떻게든 무사히 기후로 돌아온 노부나가지만(가네가사키 퇴각), 그가 성격상 당하고 가만히 있을 리는 없었습니다. 물론 나가마사도 노부나가의 이런 성격을 잘 알고 있었지요. 그는 노부나가의 오미 진공을 경계하기 위해, 기후와의 국경에 있는 타케쿠라베(長比)와 카리야쓰오(刈安尾)등의 장소에 성채를 구축하고 전투의 준비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노부나가의 행동은 생각보다 재빨랐습니다. 불과 1달이 지나기전 들어가자마자, 나가하라성(永原城)을 맡긴 사쿠마 노부모리(佐久間信), 쵸우코지성(長光寺城)을 맡긴 시바타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시바타 가쓰이에의 배수의 진, 야스가와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시바타 가쓰이에의 배수의 진, 야스가와 전투 겐키 원년(1570년) 오다 노부나가가 쵸우코지성(長光寺城)을 맡긴 시바타 가쓰이에(柴田勝家)가 롯카쿠 부자를 물리친 야스가와 전투(野洲川の戦い)가 있었습니다. 나가마사의 배신으로 위기에 빠진 노부나가는 겨우 교토로 돌아왔습니다.(가네가사키 퇴각) 그리고 교토를 나와 본거지 기후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 도중 비와호(琵琶湖)의 동남에 위치하는 쵸우코우지성의 성주로 시바타 가쓰이에를 임명해, 여기를 지키게 했습니다. 노부나가의 철퇴를 호기라 파악한 것은 다름아닌 롯카쿠 죠우테이(六角承禎), 타카하루(義治) 부자 였습니다. 롯카쿠가는 노부나가 상경때에 대패해(칸노우죠성 전투) 이후, 코우가나 이세등에서 단발적인 게릴라전을 전개하고 있는 상황이..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반 노부나가 동맹의 서막, 가네가사키 퇴각 일본 전국시대;반 노부나가 동맹의 서막, 가네가사키 퇴각 겐키 원년(1570년) 아사쿠라 요시카게의 가네가사키성을 공략한 오다 노부나가군에, 아자이 나가마사가 배반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전군이 철퇴를 개시한 가네가사키 퇴각(金ヶ崎の退き口)가 있었습니다. 당시 노부나가의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교토로 상경할 때 남 오미의 롯카쿠를 추방하고(칸노우죠성 전투) 북 오미의 아자이가에는 귀여운 동생을 시집보낸 동맹 관계였지요. 미노는 3년전에 손에 넣었고(이나바야마 공방전), 미카와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아들 노부야쓰에 딸 도쿠히메(도쿠히메)를 시집가게 해 아군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국경을 접하는 유일한 나라는 에츠젠의 아사쿠라가 였습니다. 노부나가는 와카사의 국민 무토 토모마스(武藤友益)가 종종 노..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포위망 형성, 테즈쯔야마성, 가네가사키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노부나가 포위망 형성, 테즈쯔야마성, 가네가사키성 공방전 겐키 원년(1570년) 4월 26일,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받든 상경을 완수한 오다 노부나가가, 에츠젠의 아사쿠라씨를 공격한 테즈쯔야마성(手筒山城), 가네가사키성(金ヶ崎城)의 공방전이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도 별로 유명하지 않은 이 전투는 오다 노부나가가 자신의 여동생 오이치노가타(오이치노가타)의 최초 결혼상대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와 싸우는 유명한 아네가와 전투로 격화되는 에츠젠, 아사쿠라가 공격의 전토전입니다. 이 2년전, 무로마치 막부 마지막 쇼군이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받들어 상경을 완수한 노부나가는 각지의 전국 다이묘에게 상경을 권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계속 거절하고 있던 것이 바로 에츠젠의 아사쿠라 요시카게였습니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케다가와 호조가의 대결; 미마세 고개의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다케다가와 호조가의 대결; 미마세 고개의 전투 에이로쿠 12년(1569년) 귀국 중의 다케다 신겐의 군을 호조 군이 미마세고개에서 기습한 '미마세고개의 전투(三増峠の戦い)'가 있었습니다. 키요스 동맹을 깨고 이마가와가로 쳐들어간 신겐은 스루가를 얻게 됩니다.(이마가와관 공방전) 당연히 이 신겐의 행동을 본 사가미의 호조가는 경계의 태도를 드러내고 군사를 움직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충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다음해 에이로쿠 12년(1569년), 신겐은 이제 사가미에 원정을 개시합니다. 신겐은 가이에서 출진해, 시나노로 우회해, 우에노를 거치고, 무사시로 이동해 거기서 사가미로 들어갑니다. 게다가 후호조의 지성인 하치가타성(鉢形城), 타키야마성(滝山城)을 견제하며 남쪽으로 이동해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쵸쇼카베 모토치카의 아키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쵸쇼카베 모토치카의 아키성 공방전 에이로쿠 12년(1569년) 토사의 통일을 노리는 쵸쇼카베 모토치카가 토사 동부를 지배하던 아키 쿠니토라(安芸国虎)를 공격해 아키성이 점령당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기어이 이나바야마성을 손에 넣었을 때(이나바야마 공방전), 서쪽에서는 모리와 오오토모가 영지를 빼앗고 있었습니다.(모지성 공방전) 이 군웅할거의 엔로쿠(1558~69년)의 후반무렵 시코쿠 토사에서는 맹장 쵸쇼카베 모토치카(長宗我部元親)가 파죽지세로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습니다. 토사의 중앙부를 거의 수중에 넣은 모토치카는 다음으로 동부의 아키를 목적으로 정합니다. 에이로쿠 12년(1569년) 무렵 모토치카는 토사 아키성(安芸城)을 본거지로 하는 아키 쿠니토라에게 은근히 항복을 재촉 하는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직위를 거절하고 실리를 취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노부나가, 직위를 거절하고 실리를 취하다 에이로쿠 12년(1569년)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도모해 오오기마치덴노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칙사를 보내 부쇼군(副将軍)에 임명하려 했습니다. 요시아키를 받들어 상경한 노부나가는 무력으로 미요시삼인중을 교토에서 내쫓아 요시아키를 기쁘게 하고 덴노에 대해서도 대궐의 수복등을 도와 조정의 지지도 얻게 됩니다. 요시아키는 3살 어린 노부나가의 일을 '아버지'라고 불러 그 공헌에 보답으로 관령직에 임명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이것을 거절합니다. 그것을 노부나가가 관령직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요시아키가 제106대 오오기마치덴노에 제의해 '노부나가를 부쇼군에 임명하려 한다'는 사자를 노부나가에게 보냅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확답을 피하고 후일..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이마가와 멸망하다(2) 카게가와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이마가와 멸망하다(2) 카게가와성 공방전 에이로쿠 11년(1568년) 요전날의 슨푸 이마가와관의 공방전에서 다케다 신겐에 쫓겨 도토미에 도망친 이마가와 우지자네를 공격하기 위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카케가와성을 포위했습니다. 에이로쿠 11년 말, 신겐이 가이에서 스루가로 진공(삿타토우케 전투)하는 것과 동시에, 이에야스는 미카와에서 도토미로 진공을 개시했습니다. 다음해에, 도쿠가와군에 의한 카케가와성 공방전이 개시합니다. 성주인 아사히나 야스모토(朝比奈泰朝)는 이마가와의 중신 뿐만 아니라 전국시대에서의 굴지의 지장입니다. 도쿠가와측의 공격은 신통찮고 3월 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이에야스 자신이 총대장이 되어 카케가와성 공방전에 참가합니다. 그때까지 도쿠가와의 공격을 잘 막고 있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