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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네가와 전투(1) 노부나가, 이야에쓰와 나가마사가 대치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네가와 전투(1) 

노부나가, 이야에쓰와 나가마사가 대치하다


 겐키 원년(157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가세를 요구한 오다 노부나가가 아자이 나가마사 토벌을 위해 기후를 출진했습니다.


 어떻게든 무사히 기후로 돌아온 노부나가지만(가네가사키 퇴각), 그가 성격상 당하고 가만히 있을 리는 없었습니다. 물론 나가마사도 노부나가의 이런 성격을 잘 알고 있었지요. 그는 노부나가의 오미 진공을 경계하기 위해, 기후와의 국경에 있는 타케쿠라베(長比)와 카리야쓰오(刈安尾)등의 장소에 성채를 구축하고 전투의 준비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노부나가의 행동은 생각보다 재빨랐습니다. 불과 1달이 지나기전 들어가자마자, 나가하라성(永原城)을 맡긴 사쿠마 노부모리(佐久間信), 쵸우코지성(長光寺城)을 맡긴 시바타 가쓰이에(柴田勝家)에게 격문을 날립니다. 이 때를 노려 롯카쿠가가 역습하나, 가쓰이에의 책략에 넘어가 10배나 많은 군세를 가지고도 패배하고 말지요.(야스가와 전투)


아네가와 전투 개요도


게다가 그 빈틈을 노려 카마하성(鎌刃城)의 호리 히데무라(堀秀村)와 다케쿠라베성(長比城)의 히구치 나오후사(樋口直房)를  다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를 시켜 나가마사에게서 배반 시키는 일에 성공한 노부나가의 북 오미로의 진공을 막는 것은 없었습니다. 겐키 원년(1570년) 6월, 동맹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출진을 요청하는 것과 동시에 스스로도 기후성을 출진허여 타케쿠라베로 진공합니다. 한편, 노부나가로부터의 원군 의뢰를 받은 도쿠가와가에서는 출병을 해야할지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지요. 이마가와의 멸망이후 도쿠가와의 가신이된 오가사와 우지쓰케(小笠原氏助)등은 아직 노부나가의 등뒤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현재 기후까지 퇴각한 오부나가의 등뒤를 치는 것이 필승이라고 보이겠지요.


혼다 타다카츠 초상화


 이런 이야기가 오고가는 군의의 자리에서 혼다 다다카쓰(本多忠勝)가 이번 기회를 계기로 형태뿐인 노부나가와의 동맹을 공고히 할 필요성이 있음을 역설합니다. 이에 동이한 이야야쓰는 오히려 우지쓰케에게 군세를 이끌고 원군으로 참여하게 하지요.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회의가 길어지는 바람에 도쿠가와군은 늦게 도착하게 됩니다. 노부나가는 이미 오다니성(小谷城)에 도착해 근처의 마을에 불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오다니성은 천혜의 요충지에 지어진 성, 이 성을 쉽게 낙성시키지 못하고 있을 때, 요코야마성(横山城)에서 나가마사가 지원군을 보냅니다. 이즈음, 노부나가도 도착해 양 세력은 아네가와를 기점으로 두고 적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아네가와 전투의 서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