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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네가와 전투(2) 노부나가, 도쿠가와 연합군이 아자이, 아사쿠라 연합군을 무찌르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네가와 전투(2) 

노부나가, 도쿠가와 연합군이 

아자이, 아사쿠라 연합군을 무찌르다


 겐키 원년(1570년) 오다, 도쿠가와 연합군이, 오미의 아자이, 아사쿠라 연합군과 싸운 전투가 있었으니, 바로 아네가와 전투입니다.



아네가와 전투 개요도



 오다니성(小谷城)은 험한 산 위에 있어 포위가 힘든데다 아사쿠라 요시아키의 명령을 받은 아사쿠라의 중신 아사쿠라 카게아키라(朝倉景鏡)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성을 공격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노부나가는 어떻게든 오다니 성내의 군사를 꾀어내 평지에서 전투를 벌이려 합니다. 우선은 노부나가는 오다니성의 남쪽에 있는 요코타성(横田城)을 포위합니다. 오다니성은 험준한 산위에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물자의 운반이 쉽지 않다는 것이기 때문에, 교통의 요소에 있는 요코타성을 잃을 수 없다고 생각한 나가마사는 오다니성을 나와 아네가와의 지류 쿠사노강(草野川)의 북쪽에 진을 칩니다. 물론, 그 옆에는 원군인 아사쿠라군이 있었습니다. 비슷한 무렵 오다군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가세 합니다. 


 그러나, 아자이와 아사쿠라가 진을 친 쿠사노강 북쪽 기슭은 요코타성을 둘러싸는 오다군을 직접 공격하려면 상당한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코타성은 계속 공격을 받아 낙성 직전이었습니다. 나가마사가 인솔하는 아자이, 아사쿠라 연합군은 야음을 틈타 쿠사노강을 넘어 오다군과의 거리를 줄일 수 있도록 아네가와의 북쪽으로 이동합니다. 요코타성을 둘러싼 본진에서 어둠 속에서 강을 건너는 아자이, 아사쿠라군의 횃불을 본 노부나가는 '적은 우리 수중에 있다'라고 웃었다고 합니다. 노부나가는 요코타성의 포위에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와 서 미노 삼인중을 남기고 스스로 아네가와의 남쪽으로 이동합니다. 이렇게 해서 아네가와를 사이에 두고 양군은 북쪽과 남쪽으로 대치하게 됐습니다.

 

아네가와 전투 전황도


 북서로 아사쿠라, 북동으로 아자이, 남서로 도쿠가와, 남동으로 오다군이 대치하게 됩니다. 이윽고, 날이 새자 도쿠가와군이 아네가와를 건너 정면에 있는 아사쿠라군에 쳐들어가면서 전투의 포문이 열렸습니다. 처음은 아사쿠라군에게 유리하게 전투가 전개됩니다. 이에 이야에쓰는 스스로 전투 안에 뛰어들며, 사카키바라 야스마사(榊原康政)를 우회시켜  아사쿠라군 중에서 비교적 허술한 측면을 공격시킵니다. 이것으로 인해 형세는 단번에 역전합니다. 


 동시에 대량의 군사로 단번에 강을 넘어 온 아자이군에 오다군의 선봉은 어이 없게 무너지고 서둘러 투입한 제2군도 패배해 아자이군은 노부나가의 본진 근처에 접근합니다. 하지만 주군의 열세를 본 서 미노 삼인중은 요코타성의 포위를 풀어 3천의 군사를 인솔하고 가세해 아자이군의 측면에서 맹공격합니다. 동시에 아사쿠라군에 우세한 도쿠가와군도 원군을 보내 아자이군의 다른쪽 측면을 공격합니다. 허를 찔린 아자이군은 단번에 무너지기 시작해 또 다시 형세는 역전되었습니다. 이윽고, 아자이군은 북쪽으로 계속해서 몰려 마침내 패주 합니다. 격렬을 다한 전투 후 아자이, 아사쿠라 연합군의 전사자는 9천 6백명이나 되었다고합니다. 이 수가 확실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양군의 병사의 피로 아네가와가 새빨갛게 물들었었다고 합니다. 



아네가와 전투의 그림, 가운데서 아네가와가 유유히 흐릅니다



 승리하긴 했지만 큰 피해를 입은 오다, 도쿠가와 연합군은 적을 아네가와 주변으로부터 쫓아 버린것을 끝으로, 결정적인 충격을 주는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 전투의 뒤 노부나가는 패잔병을 추격하지 않고, 요코타성과 오다니성을 점령한 것으로 만족하고 철수합니다. 여기서 도망친 아자이, 아사쿠라는 후에 수도로 올라가 노부나가의 수족인 모리 요시니리(森可成)나, 오다 신지(織田信治; 노부나가의 남동생)를 제거하게 되니, 노부나가의 이 판단이 올바랐는가에 대해 의문이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