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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네가와의 전투(3) 아네가와의 칠본창과 하타사시모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네가와의 전투(3)

아네가와의 칠본창과 하타사시모노



 겐키 원년(1570년) 6월 28일은  오다, 도쿠가와 연합군과 아자이, 아사쿠라 연합군이 부딪친 '아네가와의 전투'가 있었습니다. 


칸다유우의 눈에 띄는 하타사시모노


 

 전투의 이야기는 저번에 했으니, 이번 포스팅에서는 전쟁의 비화들을 해 볼까 합니다. '아네가와의 칠본창(姉川の七本槍)'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칠본창이라면, '시즈가타케의 칠본창(賤ヶ岳の七本槍)'으로 불리는 무장들이 유명합니다만, 아네가와의 전투에서도 '아네가와의 칠본창'이라고 칭해지는 무장들이 있습니다. 연대도 이때가 앞서고, 수도 사실은 시즈가타케 쪽은 9명으로, 사실은 이 '아네가와의 칠본창'이 원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아네가와 전투에서 오다군이 고전해, 몇 안 되는 수로 조력하려 달려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군세의 대활약에 의해 형세가 역전되어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전투의 흐름입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이 도쿠가와의 허풍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천하를 쥔 그가, 자신의 세력을 미화시켰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아무튼 진위는 차치하고, 아네가와의 칠본창의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와타나베 킨다유우하타사시모노




 노부나가의 원조에 나설때,  다카텐진성(高天神城)의 성주 오가사와라 우지스케(小笠原氏助)가 강렬하게 반대했다는 것은 저번에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이야에쓰의 설득에 의해 그는 스스로 1,000여명의 군사를 인솔해 이 전투에 참전하고 있었습니다. 도쿠가와군이 맨 앞장을 선 사카이 타다츠구(酒井忠次隊) 부대에게 잇고, 오가사와라대가 아네가와를 건너, 아사쿠라군으로 돌입합니다. 그런 오가사와라대중에서, 단번에 눈에 띄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예전부터 오가사와라를 지지해 왔던 정예 부대 타카텐진쥬(高天神衆)의 와타나베 킨다유우(渡辺金大夫)입니다. 킨다유우는 새빨간 종이 우산에 금빛의 단책을 18매나 붙인 하타사시모노(旗指物)를 등에 매고 있었고, 그 금빛의 단책이 햇빛에 반사해 반짝반짝 빛나 전장에서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실력도 그만큼 눈에 띄는 것이었지요.



다양한 하타사시 모노들



 하타사시모노(旗指物)의 무엇인가 하면, 일본 장수를 보면 쉽게 볼 수 있는 등에 매는 깃발입니다. 혼잡한 전장에서는 누가 어떻게 싸우는 지 모르지요.  결국 전투하는 모습이 대장의 눈에 띄는가로 전투 후의 은상이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하타사시모노는 헤이안 시대의 전투로부터 적아군의 식별을 하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발전하여 전국시대에는 무장 마다 독특한 디자인을 가진 하타사시모노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다케다 신겐의 '풍림화산'의 기도, 군단을 식별하는 기입니다. 그리고 무장 한사람 한사람이 가지는 좀 작은 기를 '사이모노(指物)'라고 부릅니다. 이 사이모노에는 '한사이모노(番指物)'와 '베쯔사이모노(別指物)'의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한사이모노는 색과 형태를 부대와 비슷하게 한 것으로, 사이모노로 식별한 군단을 한층 더 소구분한 소대를 식별하는 기입니다. 보통 무장들은 이 한사이모노를 가지고 전투에 참가해 무공을 거둔 뒤, 그 공적을 인정받아 대장에게서 개인을 식별하는 베쯔사이모노를 수여받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 베쯔사이모노는 개인을 식별하는 기이니만큼 최대한 눈에 띄어야 했지요.



하타사시모노, 나비가 참 귀엽네요



 기에 그려지는 그림 만이 아니고, 형태도 다양했습니다. 사각형의 형태는 '시보우(四方)', 그것을 세로로 반 자른 것은 '시한(四半 )', 기의 가장자리를 세세히 자른 것은 '키리사키(切裂)'라고 해, 화려한 그림을 그리거나 크게 이름을 쓰거나 했었습니다. 또, 일부러 대를 빼놓고 만든 것을 '시나이(撓)'라고 해, 이것을 가지고 말을 탔을 때에, 정말 근사했다고 합니다. 젊은 날의 가토 기요마사(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으로 유명한 장수죠)나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도요토미히데요시에게 베쯔사이모노를 내려달라 요청했다가 일갈당한 일화가 있을 정도로, 이 베쯔사이모노는 무사들의 동경이었습니다.


 아네가와 전투의 이 날, 오다 노부나가의 눈에 띈 것은, 화려한 하타사시모노를 날리며 분전하는 와타나베 킨다유우 는 결국 아사쿠라의 중신 쿠로사카 카케히사(黒坂景久)를 죽입니다. 전투가 끝나고 승리에 취한 노부나가는 킨다유우를 불러와 '천하제일의 활약이다!' 라고 칭찬하며 표창장과 칼을 포상으로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에 타카텐진쥬의 맹장 6명은 섭섭해 합니다. 몬나사 콘에몬(門奈左近右衛門), 다테 요헤이(伊達与兵衛), 후시키 쿠나이(伏木久内), 나카야마 세히노스게(中山是非之助), 요시하라 마타바에(吉原又兵衛), 하야시 히로시(林平六)는 킨다유우에 결코 지지 않는 활약을 하였으나, 베쯔사이모노가 눈에 띄지못해 상을 받지 못했지요. 나중에 노부나가는 그들에게도 상을 내립니다만, 베쯔사이모노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일화라 할 수 있겠네요. 이 7명이 바로 아네가와의 칠본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