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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케하자마 전투(3) 도쿠카와 이야에스는 어디 있었나?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케하자마 전투(3) 도쿠카와 이야에스는 어디 있었나? 오케하자마 전투로 당시 천하에 제일 가까웠던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어이없이 전사해 한 때의 양아치였던 오다 노부나가가 단번에 전국시대의 무대 전면에 뛰어 오릅니다. 그리고 이 오케하자마의 전투에서 마츠다이라 모토야스, 후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3년간의 인질 생활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겐신등이 그랬듯이 알기 쉽게 마츠다이라 모토야스를 그냥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당시 오다카성, 나루미성은 이마가와가의 산하에 있었습니다. 한때는 오다가의 성들이었지만 나루미 성주 야마구치 노리쯔구(山口教継)는 자신 성 뿐만아니라 오다카성도 점령해 아마가와가에 투항합니다. 이 성들을 되찾기 위해 츠케시로를 지은 오다측에 요시모토의 선발..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케하자마 전투(2) 오다 노부나가,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취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케하자마 전투(2) 오다 노부나가,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취하다 엔로쿠 3년(1560년) 전국시대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중 하나인 오케하자마 전투가 있었습니다. 저번에 보았듯 스루가의 전국 다이묘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2만 5천의 대군을 이끌고 오다가와의 국경선으로 도착합니다. 이런 가운데 구쓰카케에서 서쪽으로 이동 중이었던 요시모토 본대에게 희소식이 들려옵니다. 오다측이 설치하고 있던 츠케시로 와시즈를 중신 아사히나 야스모토(朝比奈泰朝)가 눈 깜짝할 순간에 점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군의 승리에 기분의 좋아진 요시모토는 근처의 오케하자마에 진을 쳐 군세를 쉬게 합니다. 한편, 와시즈가 점령된 일을 알게 된 오다 노부나가의 키요스성은 야단 법석이 납니다. 게다가 요시모토군은 허세를..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케하자마의 전투(1)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출격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케하자마의 전투(1)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출격 에이로쿠 3년(1560년)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전군에 출진 명령을 내렸습니다. 스루가의 전국 다이묘인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에이로쿠 3년(1560년)에 출진 명령을 내려 슨푸를 카케가와성, 인마성, 요시다성, 오카자키성, 치리우성과 벌써 이마가와가의 산하에 있던 도토우미에서 미카와의 성으로 이동해, 오와리의 국경을 넘고, 콘도우 카게하루(近藤景春)의 구쓰카케성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 앞에는 이마가와가의 최전선 나루미성과 오다카성 한층 더 앞에는 오다 노부나가의 키요스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의 요시모토의 출진은 상경이 목적이지, 노부나가와의 마찰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었습니다만 최근에는 상경이 목적이 아니었다라고 하는 설 쪽이..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동생 노부유키를 죽이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노부나가, 동생 노부유키를 죽이다 코우지 3년(1557년) 키요스성에서 오다 노부나가가 남동생 노부유키를 살해했습니다. 젊은 무렵의 오다 노부나가가 천하 제일의 바보 양아치로 불리고 있었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기모노의 소매는 줄줄 흐르게 하고, 오비(띠) 대신에 줄을 허리에 감은데다가 거기에 부싯돌을 매단 이해하기 힘든 패션을 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머리카락은 뒤를 모아 묶고 끝을 흐트린 채로 근처의 양아치들의 두목으로, 유흥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인 노부히데가 죽었을 때도 장례식에 그 모습채로 나타나 불단에 향의 재를 뿌려버렸습니다. 노부나가를 다루는 수많은 드라마에서도 반드시 등장하는 그 장면입니다. 그에 비해 노부유키는 예의바르고 총명했으니 당연하게도 주위에는 형보..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제 3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우에노하라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제 3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우에노하라 전투 코우지 3년(1557년) 가이의 다케다 신겐과 에치고의 우에스기 겐신이 다시 한번 격돌한 3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인 우에노하라 전투(上野原の戦い)가 있었습니다. 제 2차 가와나카지마의 전투는 강화(사이카와 전투)로 끝났었지요. 이 이후 겐신은 뜬금포를 발사하고 출가를 결의하는 반면 신겐은 강화를 찢어, 시나노 북부에의 진공을 재개합니다. 게다가 겐신의 가신인 오오쿠마 토모히데(大熊朝秀)와 내통해 엣츄(越中)에서 반란을 일으키게 합니다. 오오쿠마 엣츄의 난은 신속하게 진압되고 실패에 끝납니다. 이어서 신겐은 앞의 강화의 조건으로 영지가 안도되고 있던 우에스기측의 고쿠진들에게도 반란을 종용해 겐신의 세력에 혼란을 증가시킵니다. 가족의 배반과 신..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다가의 후계자 분쟁, 이나오이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다가의 후계자 분쟁, 이나오이 전투 코우지2년(1556년) 오와리 오다이(小田井川)강에서 자신과 대립하는 남동생 노부유키(信行) 에 가담하는 하야시 미마사카(林美作), 시바타 가쓰이에(柴田勝家)등을 오다 노부나가가 격퇴한 이나오이 전투(稲生の戦)가 있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어릴 때는 심각한 양아치였다고 합니다. 반면에 남동생 노부유키는 똑똑하고 명석하기로 유명했습니다. 텐분 20년(1551년) 아버지 노부히데가 죽은 장례식에서 노부나가는 양아치스럽게 입고와 불전에도 분향을 내던지는 무례를 범했지만, 노부유키는 옷을 제대로 입고 와 시종일관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후계로 노부유키를 세우자는 소리가 가신중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텐분 22년(1553년)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칼로 흥한자 칼로 망하다, 사이토 도산의 무덤, 니가라가와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칼로 흥한자 칼로 망하다, 사이토 도산의 무덤, 니가라가와 전투 코우지2년(1556년) '미노의 살무사'라 불렸던 사이토 도산이 쿠데타를 결행한 장남 사이토 요시타쯔(斎藤義龍)와 싸워 전사한 나가라가와 전투가 있었습니다. 나라 훔친 이야기저자시바 료타로 지음출판사창해 | 2007-09-21 출간카테고리소설책소개하늘이 만들어낸 영웅, 그들이 모여 나라를 훔쳤다! 혼란으로 ... 시바 료타로의 소설 '나라 훔친 이야기'(번역도 되어 있습니다)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사이토 도산, 주의 가문을 빼앗아 차례차례로 이름을 바꾸어 일개의 기름 판매상에서부터 일국일성의 주인이 되는 이야기는 통쾌하고 재미있는 전국시대 하극상의 견본으로 여겨지는 사람입니다. 사실 이것은 도산과 그 아버지 2대의 걸친..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익장, 아사쿠라 소테키의 잇키토벌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노익장, 아사쿠라 소테키의 잇키토벌 코우지 원년(1555년) 아사쿠라 소테키가 카가 잇코우잇키를 다카오산(高尾山)에 꾀어내 격파했습니다. 아사쿠라 소테키(朝倉宗滴)는 에츠젠의 아사쿠라가의 제7대 당주 아사쿠라 타카카게의 막내로 태어나 그의 손자인 제9대 당주 아사쿠라 사다카게를 숙부로 지지해 아사쿠라가를 전성기로 이끈 무장입니다. 그는 79세까지 장수한 무장입니다. 장수한 무장의 대부분이 만년은 후대에 양보하거나 은거하거나 취미생활에 매진해 전투에서는 멀어지는것이 많은 가운데, 이 소테키는 일생동안 전장을 현역으로 달린 사람입니다. 소테키는 그 생애 중에서 12회의 전투에 출진하고 있습니다. 그의 마지막 싸움이 된 것은, 다름아닌 이 카가 잇코우잇키와의 싸움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소..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제 2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사이카와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제 2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사이카와 전투 코우지 원년(1555년) 시나노의 사이카와강을 사이에 두어 대치하고 있던 우에스기 겐신과 다케다 신겐의 군이 격돌하였으니, 제2차 가와나카지마 전투라고 말해지는 '사이카와의 전투'가 있었습니다. 제 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후세 전투)가 끝나고 신겐은 스루가의 이마가와 요시모토와 사가미의 호조 우지야스와 각각의 아들, 딸끼리의 혼인 관계에 의한 '키요스 삼국 동맹(甲相駿 三国同盟)'을 맺습니다. 이것으로, 염려 없이 겐신과 싸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겐신의 가신으로 키타죠성(北条城) 성주인 키타죠 타카히로(北条高広)에 밀사를 보내 반란을 권유합니다. 신겐의 권유에 응한 타카히로는, 12월에 군사를 일으키지요. 이것이 바로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이쓰쿠시마 전투(6) 모리군의 추격, 스에 하루카타의 할복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이쓰쿠시마 전투(6) 모리군의 추격, 스에 하루카타의 할복 코우지 원년(1555년) 이쓰쿠시마의 전투가 끝나고 스에 하루카타의 주군의 신발을 관리하던 하인인 오쯔나까(乙若)가 포박 되어 모리군은 하루카타의 목을 확보했습니다. 何を惜しみ 何を恨みん 元よりも 애초에 무엇을 아까워하고 무엇을 원망할 것인가この有様に 定まれる身に이 모습이 결정된 이몸에 그는 사세구를 읊은 뒤에 할복하고, 술잔을 나눈 부하가 그의 목을 숨긴 후 할복 합니다. 아무리 승기를 잡았을 지라도, 적의 대장을 죽이거나 할복했을 경우, 그 목을 확인하지 않으면 전투는 종결되지 않습니다. 모리군은 추격을 개시하고 히로나카 타카카게부자는 분전해 전사합니다. 전투 개시부터 5 일경 산 속에 숨어있던 소년이 잡힙니다. 그의 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