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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케하자마 전투(3) 도쿠카와 이야에스는 어디 있었나?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케하자마 전투(3) 

도쿠카와 이야에스는 어디 있었나?



 오케하자마 전투로 당시  천하에 제일 가까웠던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어이없이 전사해 한 때의 양아치였던 오다 노부나가가 단번에 전국시대의 무대 전면에 뛰어 오릅니다. 그리고 이 오케하자마의 전투에서 마츠다이라 모토야스, 후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3년간의 인질 생활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겐신등이 그랬듯이 알기 쉽게 마츠다이라 모토야스를 그냥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때는 마츠다이라 모토야스



 당시 오다카성, 나루미성은 이마가와가의 산하에 있었습니다. 한때는 오다가의 성들이었지만 나루미 성주 야마구치 노리쯔구(山口教継)는 자신 성 뿐만아니라 오다카성도 점령해 아마가와가에 투항합니다. 이 성들을 되찾기 위해 츠케시로를 지은 오다측에 요시모토의 선발대가 공격을 걸어 오케하자마 전투가 시작됩니다. 사실 오케하자마 전투에 시선이 집중되기 쉽지만, 전의 포스팅에서 말씀드렸듯이 아마가와의 대군은 여러 장소에 분산되 동시에 전투를 하고 있었습니다. 츠케시로는 언제까지나 임시방편의 성이었기 때문에 내구도도 떨어지는데다가 노부나가는 츠케시로에 응원군을 보내지 않았으므로 츠케시로의 전투는 이마가와측의 대승이었습니다.


 이 츠케시로를 공략하는 선봉을 맡은 사람 중 한 명이 이에야스였습니다. 이야에스는 오오다카성으로 군자금을 운반하는 중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요시모토는 원래 오오다카성을 공격의 거점으로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이 성에 장기 체재하기 위해서는 군자금 확보가 필요 불가결합니다. 하지만 주위에 츠케시로가 있다고 하는 일은 적이 여기저기에 있다고 하는 일로 군자금을 가지는 수송대가 이동하는 일은 결코 쉽지않습니다. 이에야스는 오오다카성에 향하며 지나가야 하는 이치를 정찰합니다. 역시 '이치에는 많은 오다측의 군사가 파수를 스고 있어 이곳을 돌파하기는 쉽지 않다'는 보고를 받습니다. 그러나 정찰대중 스기우라 카츠요시(杉浦勝吉)는 우리들이 산기슭을 지나는 것이 발각 되었지만, 산 위에 있는 군사는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군사의 수가 적은 증거이기 때문에 우리와 싸울 정도의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라고 진언해 이에야스는 이 의견을 채용했습니다.



오케하자마



 많은 수송대로 군자금을 지키며 출진하고 자신은, 마루네토리데(丸根砦)로 공격을 개시해 군사를 사이로 유인합니다. 농성을 그만두어 결사의 각오로 야전을 시작한 마루네토리데의 오다군이었지만 군사의 수는 불과 400, 이에야스측은 1000으로 두배가 넘는 군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무사히 군자금은 오다카성으로 옮겨지고 마루네토리데도 괴멸 상태가 됩니다. 한편, 와시즈의 츠키시로에는 아사히나 야스모토가 인솔하는 2,000의 군세가 공격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오다군은 와시즈 츠키히로에서 농성에 들어갔지만, 역시 이쪽도 지키는 군사는 400 정도였습니다. 명장 야스모토는 쉽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승리의 통지를 들은 요시모토 본대는 오케하자마에서 휴식을 취해, 노부나가는 멈추는 가신들을 뿌리치고 흥망을 걸어 출진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이 때의 이에야스는 오다카성에 입성해 이른 아침부터 움직인 군사들을 쉬게 하고 스스로도 쉬며 요시모토 본대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요시모토 전사'라는 청천벽력같은 통지가 날아옵니다. 혼란에 빠져 성중이 분주하게 되는 중, 이에야스는 '전장에서는 정보가 잘못되거나 조작될 수도 있다' 며 냉정히 당분간 상태를 보려 합니다.


 거기에, 이에야스의 백부 미즈노 노부모토(水野信元)의 사자라고 자칭하는 아사이 토추우(浅井道忠라는 무사가 와서 '요시모토님이 전사하셨으므로, 내일이라도 여기에 오다군이 공격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 말합니다. 그러나 백부에게서의 소식이라 해도 현재는 오다의 산하에 들어가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일지도 몰랐습니다. 결국 확인을 위해 파견하고 있던 스스로의 부하의 보고로, 겨우 요시모토의 죽음을 믿는 일이 된 이에야스는 성을 지킬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성을 퇴각할 결의를 합니다만, 밖은 이미 밤이었습니다.



오카자키성(岡崎城)



 패자의 퇴각만큼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이야에스는 야음을 틈타 아버지 히로타다가 죽은 이래, 이마가와가가 지배하는 원래의 본거지 오카자키성(岡崎城)으로 돌아가기를 결의합니다. 심야, 철퇴를 개시하는 이에야스의 앞길을 막는 것은 야스모토의 전사소식을 듣고 배신한 고쿠진들이었습니다. 이윽고 이에야스 군대는 상금을 노리는 토호들 1000명 남짓에 둘러싸여 버렸습니다. 절체절명에 빠졌으나,  아사이 토추우가 노부모토의 이름을 대며 오다의 세력이라고 피력해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윽고, 오카자키성에 도착해 수킬로 멀어진 다이쥬우지(大樹寺)라는 절에 머물어 성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처음에는 아마가와군이 남아 있었으나, 이윽고 오다군을 두려워해 도망쳐 버립니다.


 상황을 확인하고 빈성을 접수한 이에야스는 향년19세로 인생으로 처음으로 성주가 되었습니다. 한편, 이마가와의 본거지인 슨푸에는 요시모토를  적남 이마가와 우지자네가 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질의 몸이면서, 이에야스는 왜 슨푸로 돌아오지 않았던 것일까요? 잘 모르지만, 아마 그의 혜안이 아마가와가의 멸망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