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케하자마 전투(2) 오다 노부나가,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취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케하자마 전투(2) 

오다 노부나가,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취하다


 엔로쿠 3년(1560년) 전국시대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중 하나인 오케하자마 전투가 있었습니다.


 저번에 보았듯 스루가의 전국 다이묘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2만 5천의 대군을 이끌고 오다가와의 국경선으로 도착합니다. 이런 가운데 구쓰카케에서 서쪽으로 이동 중이었던 요시모토 본대에게 희소식이 들려옵니다. 오다측이 설치하고 있던 츠케시로 와시즈를 중신 아사히나 야스모토(朝比奈泰朝)가 눈 깜짝할 순간에 점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군의 승리에 기분의 좋아진 요시모토는 근처의 오케하자마에 진을 쳐 군세를 쉬게 합니다. 한편, 와시즈가 점령된 일을 알게 된 오다 노부나가의 키요스성은 야단 법석이 납니다. 게다가 요시모토군은 허세를 부려 군세를 4만 5천이라고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습니다. 오다측의 중신들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해, 농성을 제안합니다. 



와카마이 아츠모리



인간 50년 하늘 안을 견주어보면, 꿈이나 환상과도 진배없는 것

 한번 인생을 얻어서 멸하지 않는 자가 어디 있으랴


 그러나 출격한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는 노부나가였습니다. 말의 재갈을 잡거나 직접 앞길을 막아 출격을 막으려는 가신도 있었지만  노부나가의 생각은 바뀌지 않습니다. 코우와카마이(幸若舞)의 아츠모리(敦盛)를 춤추고 유즈케(湯漬け: 전국시대의 음식)를 가득 먹고 출진합니다. '아츠모리'는 '인간 50년~'이 나오는 무용으로 노부나가의 아버지도 좋아했었다고 합니다. 출진한 노부나가는 아쓰타 신궁(熱田神宮)에 참배해 필승을 기원하고 그곳을 집합장소로 아군이 모이는 것을 기다립니다. 당시 여기저기 나눠져 공격하고 있는 요시모토군을 막기 위해 병력을 분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때, 노부나가의 아래에서 모인 것은 약 2천이었습니다. 이마가와와 상대하려면 정공법에서는 무리지요. 따라서 노부나가는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만을 노린다는 작전이 완성됩니다. 



오케하자마


 그렇게 해서 현재 요시모토의 위치를 확정하는 것이 선결과제가 됩니다. 이때 야나다 히로마사(梁田広正)가 '요시모토는 지금 오케하자마에서 쉬고 있다고 합니다.'라는 정보를 가져 옵니다. 이때를 기회라 판단한 노부나가는 자신이 센죠우지도우리데(善照寺砦)에 있는 것처럼 획책 하고 2천의 군사를 인솔해 요시모토 본대를 기습하기 위해 오케하자마를 목표로 합니다. 통설에서는 북방으로 우회해 요시모토의 배후에서 산을 내려가며 기습했다고 합니다만, '신죠코기(信長公記)'에는 센죠우지도우리데를 나와 우회 하지 않고 나카지마에 들어간 뒤에 직진 했다'라고 합니다.  '요시모토가  오케하자마의 평지가 아닌 오케하자마라고 하는 산 위에서 쉬고 있었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최근에는 '우회하지 않고 직진 했다'는 것이 주류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평지에서 이동할 때 발견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지만,  당일은 흐린 날로 게다가 출발하기 직전에 '갑자기 눈도 뜰 수 없을듯한 큰 비가 내렸다' 고 합니다. 이런 비를 뚫고 적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요시모토가 방심하고 있을 때, 노부나가군은 서서히 요시모토  본대의 목을 죄어 왔습니다. 그리고 급습을 시작합니다. 조금 전까지 아사히나 야스모토의 승리에 열광하고 있던 본진은 순식간에 대혼란이 됩니다. 그리고 그 혼란을 틈타 핫토리 코헤이타(服部小平太)가 모토나리를 죽이고 모우리 신스케(毛利新介)가 그 목을 베어 창에 끼워서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투가 끝나고 가장 많은 포상을 받은것은 이 둘은 아니고, 정보를 제공한 야나다 히로마사였다고 합니다.



오케하자마의 기습


 천하를 노릴 수 있는 위치에 있던 대영주가, 한 시골 영주와의 전장에서 어이없게 전사한다라 하는 것은,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의 전투에서도 극히 드문 사건입니다. 그래서 이 전투는 언제나 드라마틱하게 그려져 노부나가는 어디까지나 폭풍간지로 등장하고 요시모토는 방심한 멍청이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사실 이 전투에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역시 '운'이었습니다. 그 운을 타고 실날같은 실현 가능성이 있던 이 작전을 성공시킨 노부나가가 지나치게 대단한 것입니다. 사실 노부나가에게 이 작전은 100% 성공한다! 라는 것보다 내기에 가까운, 아니 노부나가이니까 이왕 질거 간지나게 지자!라는 생각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여서 미화되고, 게다가 이 전투로 요시모토가 패배해 자유를 얻은 마츠다이라 모토야스(후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자신의 과거를 좀더 드라마틱하게 바꾸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명장이었던 것은 그의 목이 취해진 후에 가신들의 싸우는 모습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주군의 죽음을 안 뒤에도 이마가와군은 허둥지둥 철퇴하지 않고 당분간 계속 싸웁니다. 그 중에서도 나루미 성주 오카베 모토노부(岡部元信)는 모토나리의 수급을 빼앗을 때까지 철퇴하지 않고 항전을 계속해 결국 수급을 적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스루가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는 계속해서 '주군을 돌려주어라! 돌려주어라!'라며 필사의 형상으로 싸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상당히, 가신에게 존경받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결국 이 싸움에 진 이마가와가는 몰락의 일로를 걷기 시작하고, 노부나가는 단번에 전국시대의 무대의 전면에 뛰어 오르는 일이 됩니다. 저승에 있는 호조 소운과 아사쿠라 소테키는 자신들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기뻐하며 술잔을 나누고 있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