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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츠네야마성, 여성들이 죽창을 들고 분전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츠네야마성, 여성들이 죽창을 들고 분전하다



 덴쇼 3년(1575년), 모리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우에노 다카노리(上野隆徳)가 지키는 비젠 츠네야마 성(備前常山城)를 점령했습니다.


츠네야마성의 위치



  반 오부나가 포위망에도 굴하지 않고 세를 불리는 노부나가는 계속해서 하나 하나 세력을 억제하고 있었습니다. 아자이와 아사쿠라는 멸망하고 그 두개골이 술잔이 되고 말았지요. 노부나가의 세력이 서쪽으로 향할 때, 지금까지 전국 다이묘 모리의 지배를 받아 온 여러 무장들은 도대체 어느 쪽으로 붙을 지가,  당시 관서의 세력들의 가장 큰 관심아 였습니다. 이즈음에, 하리마의 소영주 코데라(小寺)가의 가신이었던 쿠로다 죠수이(黒田如水)가, 주군 코데라 마사모토(小寺政職)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다의 신하가 되도록 조언합니다. 그래도 본격적으로 서쪽 지방의 영주가 노부나가의 산하에 오기 시작하는 것은 나가시노 전투 후이지요. 하지만 예전부터 노부나가를 지지하는 세력도 있었으니, 빗츄 마츠야마성(松山城)의 성주 미무라 모토치카(三村元親)였습니다.



태합5의 미무라 모토치카



 모리의 지원을 받고 있던 미무라가였지만, 실은 그는 이웃나라 비젠국으로 세력을 확대하고 있던 아버지 이에치카(家親)가 우키타 나오이에(宇喜多直家)에게 암살된 과거가 잇었습니다. 이 원한을 풀려 했지만 , 덴쇼 2년(1574년)에 웉키타가가 모리의 산하에 들어 왔습니다. 원수가 같은 진영에 들어와 혼란하고 있는 때에 그가 받은 것이 바로 노부나가로의 편지였습니다. 마츠야마성에서 열린 회의에서 숙부 미무라 치카시게(三村親成) 등 일부 중신의 반대도 있었습니다만, 모토치카의 결의는 단단해 결국 모리로부터 반란을 결정했습니다. 


 이 때, 주군 모토치카의 의견에 찬성한 사람 중 하나가 모토치카의 여동생 츠루히메(鶴姫)를 아내로 삼고 비젠 츠네야마성(備前常山城)을 맡고 있던 우에노 타카시노리였습니다. 이 배반의 소식을 들은 모리는 시급히 회의를 엽니다.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모리 모토나리의 삼남)는 즉석에서 미무라가 토벌을 주장하는 한편, 원래 우키타가를 모리의 산하에 가세하는 일에 반대하고 있던 깃카와 모토하루(모토나리의 차남)는 이 토벌에 반대합니다만, 주로 산인(山陰)을 맡았던 모토하루의 의견은 통과하지 않고 모리의 방침은, 산요도(山陽道)를 맡고 있던 다카카게가 주장한 토벌로 결정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덴쇼 2년(1574년) 말에 수만의 군세를 인솔하고 빗츄에 들어간 다카카게는 모토치카의 손에 의해 견고한 요새가 되어있는 마츠야마성을 뒷전으로 하고, 차례차례로 지성을 공략합니다. 이윽고, 덴쇼 3년(1575년) 봄에 지성들을 함락시키고 드디어 마츠야마성을 포위해 본격적인 공격을 개시합니다. 수로 우수한데다가 방심하지 않고 보급로 부터 끊은 모리는 2달 후에 승리를 거머쥡니다. 모토치카는 할복하게 되지요. 그리고 이 때, 마츠야마성과 함께 동시에 공격을 받고 있던 것이 비젠 츠네야마성이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미무라 츠루히메입니다


 마츠야마성이 점령될 무렵에는 이미 츠네야마성도 풍전 등화의 상태였습니다. 마츠야마성 점령 한 달 후에 대군에 포위되어 패배를 직감한 우에노 다카노리는 일족을 모아 마지막 주연을 열고, 일동에게 할복의 의지를 고했습니다. 그러자, 모친이 한 걸음앞으로 나와 아들이 죽는 것을 볼 수 없다며 칼을 기둥에 묶고 달려가 목숨을 끊습니다. 그 뒤에 15세의 장남 타카히데 아버지를 끝까지 돕지 못해 죄송하다고 한 뒤 배를 가릅니다. 다카노리는 그런 장남의 목을 친 뒤에 아직 8세였던 차남을 한쪽 팔로 안듯이 끌어 들여, 그 칼로 배를 찔렀습니다. 여성은 도망쳐도 좋다는 말을 들었던 16세의 여동생도 어머니가 묶었던 칼을 풀어 할복 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다카노리 본인과 그 아내 츠루히메였습니다.


 츠루히메는 '난세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라고, 어릴 적부터 칼이나 나기나타를 시작으로 창이나 기마술에 이르기까지, 무예의 모든 것을 라한 전사였습니다. 사랑스러운 가족의 죽음을 눈앞으로 츠루히메는 분노해 순식간에 귀신의 얼굴을 하고 '적을 죽이다 죽겠다'고 외치며, 긴 흑발에 머리띠를 감아 투구를 쓰고 허리에는 죽은 아버지의 보도 쿠니헤이 태도(国平の太刀)를 차, 갑옷 위에 다홍색의 얇은 망토를 두르고 손에 나기나타를 가지고 적진에 뛰어 듭니다. 그것을 본 36명의 여성은 차례로 무기를 듭니다. 아기를 짊어진 여성이나, 허리가 구부러진 노파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본 남자들은 크게 충격받아, 다카노리 이하 83명의 성병은 일제히 적중에 공격을 감행합니다. 



츠네야마에서 분전한 여성들을 기리는 축제



 갑작스런 여자 군인들의 출현에 당황한 적병은 최초에는 휙휙 베어 쓰러집니다만, 곧 바로 태세를 정돈하고 반격에 나섭니다. 이윽고, 아군의 대부분이 전사 한 일을 본 츠루히메는 적장 우라노 무네카쯔(浦野宗勝)를 찾아내, 일대일 승부를 신청합니다. 그러나 무네카쯔는 여자와 승부를 할 수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츠루히메는 '무네카쯔님에게, 이것을 헌상 합니다. 우리의 사후를 조상해 주십시요.' 라고 말하며, 아버지의 보검을 던지고 성 안으로 돌아와 남편 다카노리와 함께 할복했다고 합니다. 츠네야마성은 점령되었습니다만, 이 용감한 여자 전사들의 이야기는, 츠네야마 여군의 싸움(常山女軍の戦い)'이라고 칭송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