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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

일본 전국시대; 덴노의 칙령이 내리다 덴노와 노부나가 관계는? 일본 전국시대;덴노의 칙령이 내리다덴노와 노부나가 관계는? 덴쇼 6년(1578년) 말 모리 데루모토와 혼간지 켄뇨에게 오다 노부나가와 강화 하도록 오오기마치 덴노의 칙명이 내려졌습니다. 이 강화의 칙명(講和の勅命)이라고 하는 것은, 겐키 원년(1570년)부터 덴쇼 8년(1580년)까지, 약 10년에 걸쳐서 전개된 오다 노부나가와 이시야마 혼간지의 이시야마 전투에 대한 강화의 칙명입니다. 아자이, 아사쿠라등 반 노부나가 동맹을 하나하나 때려잡던 노부나가였지만, 텐노지 전투이후에 참여한 모리의 수군과 노부나가에 배신한 아리오카성의 아라키 무라시게, 그리고 켄뇨의 말로 일어나는 혼간지 문도들로 인해 아직 평정을 찾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아무리 노부나가라 해도 많은 적들과 계속한 연전은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요...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아마고가의 멸망, 2차 코우즈키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아마고가의 멸망, 2차 코우즈키성 공방전 덴쇼 6년(1578년) 모리군에 포위된 코우즈키성에서 농성 하고 있던 아마코 가쓰히사(尼子勝久)가 할복 해, 산인에 기반을 두었던 아마고가가 멸망 했습니다. 남북조 시대에 활약한 사사키 도우요(佐々木道誉)를 선조로 이즈모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아마고가는 에이로쿠9년(1556년)에 아키의 모리 모토나리에 공격받아 멸망 해버립니다. 그러나, 야마나카 시카노스케(山中鹿之介)은 굴하지 않습니다. 그는, 16세에 첫 출진 할 때에 다음과 같이 초생달에 맹새했다고 유명한 아마고 십용사 중 한 명입니다. 願わくば我に七難八苦を与えたまえ원컨데 나에게 칠난팔고를 주기를 그는 마치 오뚜기와 같이 아마고가를 위해 일어납니다. 모리의 포로가 되었을 때도, 설사를 핑계로 초..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히데요시 포위망을 펼치다, 미키성 농성전 일본 전국시대;히데요시 포위망을 펼치다, 미키성 농성전 덴쇼 6년(1578년) 하시바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에 반기를 든 벳쇼 나가하루(別所長治)의 거성 미키성(三木城)을 포위했습니다. 덴쇼의 초 무렵에 오다 노부나가는 하시바 히데요시를 대장으로 하는 토벌군을 편성해 산요, 산인지방을 평정하게 했습니다. 그로 인해 차츰 하리마의 여러 영주들은 오다 측으로 붙게 되었지요. 덴쇼 3년(1575년)에는 벳쇼 나가하루 도 노부나가에게 직접 찾아가 오다 측으로 가담할 것을 신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덴쇼 6년(1578년) 초에 나가하루는 돌연 오다측에 일방적으로 지지철회를 선언해, 거성 미키성에서 농성합니다. 그 이유는, '노부나가의 잘난척을 견딜 수 없었다', '히데요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라는 여러가지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하시바 히데요시, 코우즈키성을 점령하다 코우즈키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하시바 히데요시, 코우즈키성을 점령하다코우즈키성 공방전 덴쇼 5년(1577년), 하시바 히데요시가, 아카마쯔 마사노리(赤松政範)의 하리마(播磨) 코우즈키성(上月城)에 쳐들어갔습니다. 요시아키의 편지로 인해 노부나가 포위망이 생기고, 노부나가가 그것을 하나하나 파괴해 나가고 있는 도중, 노부나가는 본거지로 하고 있던 기후성과 미노, 오와리를 장남 노부타다에게 맡긴 뒤 덴쇼 4년(1576년) 초부터 아즈치성(安土城)의 축성에 착수합니다. 이즈음 노부나가는 6년전의 겐키 원년(1570년)에서부터 계속된 혼간지와의 이시야마 전투(1차 이시야마전투의 발발), 텐노지 전투(텐노지 전투)에 이어, 제1차 키즈가와구 해전(키즈가와구 해전)에다가 우에스기 겐신까지 혼간지와 갈등을 끊고, 참전을 표명해 나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히사히데, 시기산성에서 장렬히 폭사하다 시기산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히사히데, 시기산성에서 장렬히 폭사하다시기산성 공방전 덴쇼 5년(1577년), 오다 노부나가의 장남 오다 노부타다(織田信忠)가 아즈치(安土)에 진을 쳐,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농성하는 야마토(大和) 시기산성(信貴山城)을 포위해 성벽아래에 불을 질렀습니다. 난세의 효웅이라는 이명을 가지는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산뜻할 정도로 사악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오히려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미요시가에 들어가 미요시가를 몰락시키고(히사히데와 미요시가의 몰락), 대불전에 불을 지른 뒤(마츠나가 하사히데, 대불전을 불태우다) 쇼군 요시테루를 죽이는(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 암살당하다) 등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짓들을 저지른 히사히데(물론 그 진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런 그의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실재는 어땠을까? 테도리가와 전투 일본 전국시대;실재는 어땠을까? 테도리가와 전투 덴쇼 5년(1577년), 노부나가의 명령을 받은 시바타 가쓰이에가 인솔하는 오다군과 겐신이 인솔하는 우에스기군이, 카가 테도리가와(手取川)에서 대치했습니다. 신겐과 끊임없이 전투를 벌이던 겐신은 요시아키의 요청에 의해 반 노부나가 동맹이 된 뒤로 노부나가를 견제하기 위해 나섭니다. 먼저 나나오성을 점령한 겐신은(노키자루의 활약, 나나오성 공방전) 노부나가를 토벌하기 위해 노토에 진공합니다. 이즈음 이시야마 전투를 벌이고 잇던 노부나가는 시바타 가쓰이에와 하시바 히데요시를 호쿠리쿠에 파견해, 겐신에 맞서 싸우도록 합니다. 이렇게 해서 덴쇼 5년(1577년) 가을, 오다군과 우에스기군이 카가 테도리가와에서 대치해, 테도리가와 전투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이 테도..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겐신의 닌자, 노키자루의 활약, 나나오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겐신의 닌자, 노키자루의 활약, 나나오성 공방전 덴쇼 5년(1577년) 노토(能登) 나나오성(七尾城)을 공략중이던 우에스기 겐신에게 나나오성의 배신자가 밀서를 보냈습니다. 보통 가이의 범 다케다 신겐과 에치고의 용 우에스기 겐신으로 표현되고, 가와나카지마 전투의 이미지가 강해 겐신과 대립한 세력으로 보통 신겐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신겐은 명실 상부한 관동 관령이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발호하는 관동의 여러 세력을 억제해야 하는데다가, 쇼군 요시아키를 내쫓은 노부나가와도 크게 대립했지요. 이때 요시아키의 뜻에 응한 반 노부나가 포위망에 신겐과 겐신이 모두 있어, 이들간의 눈에 보이는 대립은 잦아 들게 됩니다. 그래서 신겐은 토카이(東海)를 목적으로 상경을 시도하나, 뜻 밖에 병에 걸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어째서일까? 히라테 마사히데의 할복 일본 전국시대; 어째서일까? 히라테 마사히데의 할복 텐몬 22년(1553년) 오와리의 오다 노부히데, 노부나가의 부자 2대를 시중든 중신 히라테 마사히데(平手政秀)가 할복 했습니다. 전국시대의 주인공, 오다 노부나가는 텐몬 3년(1534년)에 태어납니다. 그 무렵 노부나가의 아버지 노부히데는 오와리의 수호 시바(斯波)가를 시중드는 수호대의 오다 집안의 한 분파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다가 내의 내분을 이용해 오와리의 대부분을 손에 넣고 오히려 본가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 갔습니다. 그런 노부히데의 후계인 노부나가의 모리야꾸(傅役・교육계)였던 것이, 노부히데의 가신중에서도 두번째로 꼽히는 히라테 마사히데입니다. 그는 옛 가곡에 통달하고 다도를 즐겨 풍류를 즐기는 문화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노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노부나가의 딸, 도쿠히메의 기구한 인생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노부나가의 딸, 도쿠히메의 기구한 인생 에이로쿠10년(1567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장남 노부야스(信康)와 오다 노부나가의 딸 토쿠히메(徳姫)가 결혼했습니다. 이들은 고작 9살로, 어린 신랑 신부는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정략 결혼을 한 것입니다. 이 다케치요는 이에야스의 정실 쯔키야마도노(築山殿)와의 사이에 태어난 장남 노부야스(信康)입니다. 토쿠히메는, 고도쿠(五徳)라고도 불렸다는데요 우리나라의 발음으로는 '오덕'이 되어버리네요. 그 후 두 사람 모두 18세가 되는 무렵에 장녀가 탄생해 다음 해에는 차녀도 탄생합니다만, 남자 아이가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부부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설에는 토쿠히메와의 사이에 남자아이가 태어..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문화편; 무장의 취미, 다도 일본 전국시대 문화편; 무장의 취미, 다도 전국시대 무장들에게 다도는 엄청난 유행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의 엄청난 수 의 도공을 끌고 가기도 해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부릅니다. 또 오다 노부나가가 어째서 혼노지에간 이유 중 하나가 다름아닌 '다기'를 구하기위해서 였다는 설도 있지요. 일본에 차가 전래된 것은 가마쿠라시대 이에사이(栄西)라는 스님이 중국을 방문해 일본에 돌아오면서 반입했다는 설이 일반적입니다. 한편으로는 나라시대의 스님, 교우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도 합니다. 시즈오카에 있는 호우메이사의 본존불상을 조각하다 피로로 눈이 감기려는 교우키(行基)에게 한 할머니가 무언가를 내밀었습니다. 이것을 마시자, 피로는 씻은듯이 사라지고 눈이 번뜩 뜨여 조각을 마무리 했다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