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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4) 범인은 누구인가? 히데요시 흑막설 일본 전국시대;혼노지의 변(4)범인은 누구인가? 히데요시 흑막설 혼노지의 변으로 가장 이득을 본 것은, 노부나가가 반죽해논 것을 떡으로 만든 히데요시입니다. 게다가 츄고쿠로의 원군을 요청한 것도 다름아닌 히데요시이지요.(타카마츠성 공방전) 만약 히데요시가 노부나가에 요청하지 않았으면 노부나가는 그대로 아즈치성에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혼노지의 변은 일어날 수 없었겠지요. 이 히데요시의 원군 요청에 대해서는, '빗츄 타카마츠성에의 공격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모리의 대군이 지원하러 온다는 정보가 있어, 그렇게 되면 형세가 역전할 가능성도 있기에'보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아무튼 히데요시로부터의 그 편지가, 아즈찌에 닿은 것이 5월 15일 입니다. 그리고, 타카마츠성을 구하기 위해, 깃카와 모.. 더보기
혼노지의 변(3) 범인은 누구인가? 이야에스 흑막설 일본 전국시대;혼노지의 변(3) 범인은 누구인가? 이야에스 흑막설 덴쇼 10년 6월 2일 노부나가가 혼노지에서 할복하고 맙니다. 반노부나가 포위망을 찟고, 전국 통일을 눈 앞에 둔 노부나가는 서쪽의 모리를 토벌하기 위해 수도로 돌아가, 6월 4일 출진을 예정하고 선봉으로 아케치 미쓰히데를 파견했습니다. 그러나 저번에 썼듯이, 혼노지의 변이 일어나고 맙니다. 혼노지의 변이 왜 일어났는가?(혼노지의 변의 서막이 오르다), 그리고 그 경과(전국시대의 풍운아, 혼노지에서)에 대해서 썼다면 오늘은 흑막설에 집중해 범인을 찾아 보겠습니다. 덴쇼 10년(1582년) 5월 30일, 교토에서 사카이로 이동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사카이의 항구를 유람 하는 등 사카이 관광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반달전 이야에스는 아즈치성에..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2) 전국시대의 풍운아, 혼노지에서 한 무더기 재가 되다 일본 전국시대;혼노지의 변(2)전국시대의 풍운아, 혼노지에서 한 무더기 재가 되다 덴쇼 10년(1582년) 6월 2일은, 전국시대 최고의 명장면 '혼노지의 변'이 일어났습니다. 이 해의 3월에 가이의 다케다를 멸한(다케다가 멸망하다) 오다 노부나가는 서쪽의 산요, 산인에 관심을 가집니다. 정확히 그 무렵, 하시바 히데요시가 인솔하는 츄고쿠 평정군은 모리의 미즈 무네하루(清水宗治)가 농성하는 타카마츠성을 포위하면서도, 좀처럼 점령할 수 없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모리의 원군이 찾아오자, 노부나가는 스스로 출진할 것을 결의해, 그 선봉으로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를 원군으로서 파견하기로 합니다. 명령을 받은 미츠히데는 5월 중순에 거성인 탄바 카메야마성(亀山城)에 들어가 출진의 준비를 갖추어, 6월 1일 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1) 혼노지의 변의 서막이 오르다 일본 전국시대;혼노지의 변(1) 혼노지의 변의 서막이 오르다 교토의 대궐앞에 길이 팔척( 약 110 m)의 승마장을 설치해 당대의 오오기마치 덴노의 앞에서 화려한 군사 퍼레이드를 벌인 오우마조로에(御馬揃え)에서 1년 2개월 후 오다 노부나가는 오랜만에 수도로 돌아옵니다. 이번에 노부나가는 언제나 호위 하는 기마무사들(馬廻衆)도 동반하지 않고, 얼마안되는 시동과 측근만을 데리고 숙소인 혼노지에 도착했습니다. 허나 본거지인 아즈치에는 하시바 히데요시가 공격하는 츄고쿠 지방을 지원하기 위한 군비가 정돈되고 있었고 6월 4일에는, 그 대군을 인솔해 서쪽으로 출진할 예정이었습니다. 전날의 비가 대지를 적힌 덴쇼 10년(1582년) 6월 1일, 하카타에서 온 상인 시마이 소우시쯔(島井宗室)를 불러 노부나가는 명 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히데요시의 츄코쿠 대귀환 타카마츠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히데요시의 츄코쿠 대귀환타카마츠성 공방전 덴쇼 10년(1582년) 츄고쿠 지방의 공략을 진행시키고 있던 하시바 히데요시가, 빗츄 타카마츠성을 공격했습니다. 천하통일을 눈 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는 덴쇼10년(1582년) 가이의 다케다를 멸망 시켜(다케다가 멸망하다), 드디어 남는 강적은 츄고쿠 지방뿐이었습니다. 츄고쿠 지방의 평정을 맡은 하시바 히데요시는, 덴쇼 8년(1580년)에 하리마, 미츠키성을(미키성 농성전), 다음 9년(1581년)에 돗토리성(돗토리성 점령)을 점령해 드디어 덴쇼 10년(1582년) 빗츄까지 진군합니다. 도중에 비젠 오카야마 성주 우키타 나오이에(宇喜多直家)가 아군에 되어(2차 코우즈키성 공방전) 사기 충전한 히데요시군은 타카마츠성(高松城)을 목적으로 정해 덴쇼10년..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부전자전? 오다 노부타다의 에린지 토벌 일본 전국시대;부전자전? 오다 노부타다의 에린지 토벌 덴쇼 10년(1582년), 오다 노부타다가 에린지(恵林寺)가 불에 타, 주지인 가이센 조키(快川紹喜) 등이 죽었습니다. 키요카즈 겐지 유파를 이어받는 토키(土岐) 출신으로 여겨지는 가이센 조키(快川紹喜), 그는 교토의 묘신지(妙心寺)등에서 사사 받아 미노의 소후쿠지(崇福寺)의 주지를 맡은 뒤에 가이의 다케다 신겐에게 초대되어 에린지의 주지가 되어 가이와 미노의 외교 관계 등을 맡은 다케다 측의 승려였습니다. 신겐에게 가이에 초대되기 이전에, 오다 노부나가가 불렀음에도 거절하고 가이에 갔기 때문에, 노부나가가 조키를 싫어했다는 소문도 있지만, 진실은 잘 모릅니다. 아무튼 덴쇼 10년(1582년) 다케다 가쓰요리가 덴모쿠산에서 할복해 다케다가가 멸망합니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오다군 호쿠리쿠로 진공하다, 우오츠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오다군 호쿠리쿠로 진공하다, 우오츠성 공방전 덴쇼 10년(1582년) 나카조 가게야스(中条景泰)등이 할복해 우오츠성(魚津城)이 함락되어 시바타 가쓰이에등의 오다군 이 호쿠리쿠(北陸)를 제압했습니다. 덴쇼 3년(1575년), 나가시노 전투로 다케다를 물리친(나가시노 전투) 오다 노부나가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에치고의 우에스기 겐신이었습니다. 겐신은 나나오성을 점령하고(나나오성 공방전) 테도리가와에서 시바타 가쓰이에가 이끄는 오다군을 몰살 시키나(테도리가와 전투), 덴쇼 6년 초 급작스레 죽어(겐신 사망겐신 사망), 그 후계를 놓고 오타테의 란(오타테의 )이 일어나 버립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노부나가는 군을 진군시켜 엣츄를 정복합니다. 게다가 덴쇼 8년(1570년)에는, 시바타 가쓰이에..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다케다가 멸망하다 일본 전국시대;다케다가 멸망하다 덴쇼 10년(1582년) 오다, 도쿠가와 연합군에 추적당하던 다케다 가쓰요리(武田勝頼)가 처자와 함께 가이 덴모쿠산(天目山)에서 할복 했습니다. 덴쇼 3년(1575년)에 일어난 나가시노 전투(나가시노성 공방전)에서 일반적으로는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연합군이, 가쓰요리가 인솔하는 다케다군에 압승한 것 같이 그려지는 유명한 전투입니다. 하지만 전투가 8시간에 달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한 쪽의 압승이라기 보다는 일진일퇴의 격전이었을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든 간에 이 전투로 바바 노부하루, 야마가타 마사카게, 나이토 마사토요 등 신겐 때 부터의 중신들이 죄다 전사한 것도 사실입니다. 산간벽지 가이에서 발호해 전국 다이묘가 된 다케다 신겐 덕에 가쓰요리는 늘 부담을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노부나가 다케다를 토벌하다 다카토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노부나가 다케다를 토벌하다다카토성 공방전 덴쇼 10년(1582년), 오다 노부타다(織田信忠)에 공격받은 니시나 모리노부(仁科盛信)가 분전의 뒤의 할복 해 다카토성(高遠城)이 점령 당했습니다. 덴쇼 8년(1580년), 10년에 걸쳐서 계속 되고 있던 이시야마 혼간지와의 전투(텐노지 전투)에 결착을 붙인 오다 노부나가는 기나이에 적이 없게 되어, 드디어 다케다 공략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덴쇼 9년(1581년)에는, 노부나가와 동맹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다케다령의 서쪽의 요충지 타카마 카미성을 탈취합니다.(타카마 카미성 공방전) 이에 대항하는 다케다 가쓰요리는 본격적으로 신푸성을 구축하고, 고후에서 니라사키로 거점을 옮기고, 군단을 한층 더 강화시키려 합니다. 하지만 타카마카미성을 잃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요다 노부시게, 타나카성의 성문을 열다 타나카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요다 노부시게, 타나카성의 성문을 열다타나카성 공방전 덴쇼 10년(1582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공격받고 있던 다케다의 산하 스루가 타나카성(田中城)의 요다 노부시게(依田信蕃)가 성을 넘겼습니다. 덴쇼 3년(1575년) 나가시노 전투(나가시노성 공방전)로 아버지 신겐의 시대부터의 많은 가신을 잃은 가이의 다케다 가쓰요리(武田勝賴)였지만, 아직 스루가의 영지는 건재하고, 서쪽의 요충지인 타카마카미성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덴쇼 6년(1578년) 초에 우에스기 겐신이 죽은 일로 발발한 미타테의 란(미타테의 란)에서 가쓰요리는 호조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호조와 동맹을 맺은 카게토라가 아닌 카게카쯔를 후원합니다. 물론, 카게카쯔가 준 돈 때문이었겠지만, 이로 인해 다케다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