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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카게카츠 오타테란 승리의 일등공신 센토우인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카게카츠 오타테란 승리의 일등공신 센토우인 센토우인(仙桃院)은 나가오 다메카케(長尾為景)의 딸로, 우에스기 겐신의 이복 남매(또는 동모이부 남매)라고 합니다. 이름은 아야(綾)라고 전해집니다. 텐분(天文) 6년(1537년) 나가오 마사카게(長尾政景)의 정실로 시집갑니다. 장남인 요시카게(義景)는 10살에 요절했으나, 차남인 카게카츠(景勝)는 후에 겐신의 양자가 되어, 친자식이 없었던 겐신의 사후 벌어진 오타테의 란(오타테의 란)에 승리하여 겐신을 잇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우에스기가의 선조가 됩니다. 에도(江戸)시대의 군키모노(軍記物: 군사소설)의 영향에 의해, 오랫동안 장녀가 하타케야마 요시하루(畠山義春)에게, 차녀(세이엔인(清円院))가 우에스기 카게토라(上杉景虎)에게 시집갔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오다가의 유모, 요우토쿠인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오다가의 유모, 요우토쿠인 요우토쿠인(養徳院)은 이케다 마사히데(池田政秀)의 딸로 오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이케다 츠네토시(池田恒利)의 정실이 되어 이케다 츠네오키(池田恒興)를 낳았습니다. 이케다 츠네오키는 오다 노부나가와 젖 형제로 알려져 있는데요, 요우토쿠인이 노부나가에게 젖을 먹이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명이 '키치호시(吉法師)'였던 노부나가는 유모들을 몹시 애먹였다고 합니다. 키치호시는 유아때부터 까탈스러워 유모들의 유두를 물어뜯는 바람에, 유모가 오래지 않아 일을 관두어 몇 명이나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에 노부나가의 아버지 노부히데는 고심하다 츠네토시의 아내인 요우토쿠인을 불러 젖을 물리게 했습니다. 그녀가 젊고 아름다웠기 때문일까요? 오다 노부나가는 그녀의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노부나가의 사랑을 받은 여동생, 오이누노가타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노부나가의 사랑을 받은 여동생, 오이누노가타 오이누노가타(お犬の方)는 미노국을 다스린 오다 노부히데의 딸로 천하를 거머쥔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입니다. 그리고 전국시대 여성 중 가장 유명한 오이치노가타의 누나(여동생이라는 설도 있습니다)입니다. 호는 오노히메(大野姫)입니다. 그녀는 성장해 오노성(大野城)의 성주 사지 노부카타(佐治信方)에게 시집갑니다. 그리고 카쯔나리(一成)를 낳지요. 하지만 남편은 덴쇼 2년(1574년)에 전사하고 맙니다. 이때 노부나가는 여동생에게 시모교(下京) 지시전(地子銭)을 줍니다. 노부나가는 비정하기로 유명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가족들에게는 관대한 측면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다른 여동생에게 한 짓을 보자면 공과 사는 철저히 구분한 듯 합니다.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아사쿠라가의 경국지색? 고쇼쇼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아사쿠라가의 경국지색? 고쇼쇼 고쇼쇼는 에츠젠의 전국 다이묘이자 반 노부나가 동맹의 선봉이었다가 참패해 그 두개골이 술잔이 되고마는 아사쿠라 요시카게의 측실입니다. 그녀는 전국시대 전기부터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까지 살았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아사쿠라의 가신 사이토 우효부쇼유(斎藤兵部少輔)의 딸입니다. 기록에 따라 다양하게 불리지만, 이번 포스팅에서는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고쇼쇼'로 통일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녀는 스와관(諏訪館)에서 살았기에, '스와님'이라고도 불렸던 것 같습니다. 그녀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위의 일러스트를 보시면 대충 감이 오실겁니다. 요시카게의 장남 쿠마기미마루(阿君丸)가 에이로쿠 11 년 (1568 년) 독살이 의심되는 돌연 세상을 떴습니다. 어린 장남에..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시즈가타케 전투(3) 히데요시, 가쓰이에를 꺾다 일본 전국시대;시즈가타케 전투(3)히데요시, 가쓰이에를 꺾다 덴쇼 11년(1583년), 시바타 가쓰이에와 하시바 히데요시의 사이에 발발한 오다가내 분쟁 시즈가타케 전투가 있었습니다. 혼노지에 쓰러진 오다 노부나가 사후(혼노지의 변) 미쓰히데와의 야마자키 전투(야마자키 전투)로 아케치 미쓰히데를 넘어뜨린 하시바 히데요시는 오다의 계승자를 결정하는 키요스 회의(키요스 회의)에서 노부나가의 장손 산포시를 추천하고 스스로 후견인이 되어 노부나가의 장례까지 본인이 맡습니다. 이에 시바타 가쓰이에는 노부나가의 삼남 코베 노부타카를 후계자로 추천하고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노카타(お市の方)를 아내로 맞이해 히데요시에 대항합니다. 그리고 겨울을 맞이해 에츠젠에서 움직일 수 없음을 간파한 히데요시가 반대세력을 짖누르는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키요스 회의로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다 일본 전국시대;키요스 회의로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다 덴쇼 10년(1582년) 6월 27일 죽은 오다 노부나가의 후계자를 결정하는 키요스 회의에서 장손 산포시(三法師)가 상속자로 결정되었습니다. 아케치 미쓰히데가 일으킨 혼노지의 변(혼노지의 변)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죽은 것이 덴쇼 10년(1582년) 6월 2일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주군의 죽음을 복수하려 하시바 히데요시가 미쓰히데를 야마자키의 전투(야마자키 전투)에서 무찌른 것이 6월 13일의 일이었습니다. 노부나가가 생전에 뒤를 잇게한 장남 노부타다가 노부나가와 함께 죽어버렸기 때문에 오다군은 시급히 주군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키요스 회의가 열립니다. 이 회의를 소집한 것은 오다가의 필두 가로인 시바타 가쓰이에였습니다. 그리고 회의에 출석한 인물..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노부나가의 거성, 아즈치성 불타다 일본 전국시대;노부나가의 거성, 아즈치성 불타다 덴쇼 10년(1582년) 오다 노부나가의 거성인 아즈치성이 불타 올랐습니다. 혼노지의 변(혼노지의 변)으로 츄고쿠대귀환(츄코쿠 대귀환)을 실시해 기나이로 돌아와 미쓰히데를 덴노산에서 무찌른 하시바 히데요시(야마자키 전투)가 주군의 복수를 갚았다고 한 이틀 뒤, 오미 사카모토성()으로 귀환한 미쓰히데의 사위 아케치 히데미쓰(明智秀満)는 성으로 진군하는 오다군을 보고, 성내에 있던 미쓰히데의 재보를 빼닌 뒤 일족과 함께 할복 했습니다. 실은, 「다이코키(太閤記)」에서는 이 히데미쓰가 아즈치성에 방화했다고 합니다. 야마자키의 전투 당시 아즈치성에 있던 히데미쓰가 아케치측의 패배를 알고 사카모토성으로 향할 때에 방화했다고합니다. 이 히데미쓰는 사카모토성으로 향하는..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8) 이야에스, 서둘러 미카와로 돌아가다 이가코에 일본 전국시대;혼노지의 변(8) 이야에스, 서둘러 미카와로 돌아가다 이가코에 '혼노지의 변'의 충격적인 소식은 점차 전국으로 퍼져갑니다. 전날 우오츠성을 점령한(우오츠성 공방전) 시바타 가쓰이에와 마에다 토시이에에게 노부나가가 사망했다는 소식은 이틀 뒤인 6월 4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호쿠리쿠 담당 부문의 무장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상경한다는 것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있던 장소는 노부나가의 세력권의 최전선인 국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부나가 사망의 소식을 들은 적은 사기가 충전하여 오다군을 토벌하려 하지요. 이런 상황은 우에노의 다키가와 가즈마스나, 시나노의 모리 나가요시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가즈마스는 1만 8천의 군사를 인솔해 우마야바시성(厩橋城)을 나와 상경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7); 노부나가의 시체는 어디있는가?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7); 노부나가의 시체는 어디있는가? 루이스 프로이스의 「일본사」는 혼간지의 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가슴에 총탄을 맞았으므로 할복 자살했다고 하는 사람도, 저택에 불을 질러 불에 타 숨졌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화재가 컸기 때문에, 노부나가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다 오제 호안(小瀬甫庵)의 「노부나가기信長記」에도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목을 찾았지만 전혀 발견되지 않고, 미쓰히데가 많이 수상하게 여겼지만, 유해 같은 것조차 찾아낼 수 없었다 또, 「대자원구기록大慈院旧記」에는, 이세의 호시아이성(星合城) 주 호시아이 노리후사(星合教房)의 아내의 이야기가 쓰여져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의 아내가 교토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히노 언덕(日ノ岡)에서,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5) 도대체 범인은 누구일까? 미쓰히데 결백설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5)도대체 범인은 누구일까? 미쓰히데 결백설 혼노지의 변은 단 하루의 사건이지만 전국시대는 이 사건에 이전과 이후로 바뀌는 데다 의문점이 상당히 많은 사건이지요. 오다 노부나가는 사실 죽지 않았다는 설부터 이야에스가 진범이라는 설, 히데요시가 진범이라는 설도 있는데, 오늘은 아케치 미쓰히데가 범인이 아닌게 아닌가? 하는 설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혼노지의 변에서 나온 속담「적은 혼노지에 있다敵は本能寺にあり」라는 말은 에도시대에 쓰여진 「카와스미 다이코키川角太閤記」가 최초로 정작 혼노지의 변에는 나온 말이 아닙니다. 이번의 마쓰히데 군의 진정한 목적이 노부나가 토벌인 것도 아케치 미쓰히데의 매우 일부의 중신만이 알고 있었다고 하나, 정말인지는 모르지요. 즉, 아케치 미쓰히데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