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고쿠시대 썸네일형 리스트형 일본 전국시대; 미카타가와라 전투(4) 총소리로 다케다 군세를 벼랑으로 몰다, 사이가카게 기습 일본 전국시대; 미카타가와라 전투(4) 총소리로 다케다 군세를 벼랑으로 몰다, 사이가카게 기습 겐키 3년(1572년) 미카타가와라 전투가 끝난 밤에, 도쿠가와의 군세가 다케다의 진지에 야습을 시도했습니다. 겐키 3년(1572년) 미카타가와라 전투에(미카타가와라) 승리한 다케다 신겐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망간 하마마츠성의 북쪽으로 1 km정도 떠러진 곳에 있는 사이가카게(犀ヶ崖)의 북측에 포진 합니다. 심야가 되자, 이에야스 부하 아마노 야스카게(天野康景)와 오오쿠보 타다요(大久保忠世) 등이 패전을 만회 하려고 야습을 걸치는 작전을 세웁니다. 16정의 총과 약 100명의 군사를 거느려 은밀하게 지름길로 이동하는 데다가, 눈이 올 듯해 어둑어둑한 밤이고, 적은 지리를 이야에스군만큼 잘 모르기 때문에 야습..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미카타가와라 전투(3) 이야에스 다케다에 참패하다, 미카타가와라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미카타가와라 전투(3) 이야에스 다케다에 참패하다, 미카타가와라 전투 겐키 3년(1572년) 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생애로 최대 패전 미카타가와라 전투가 있었습니다. 4만 5천의 대군을 인솔해 가이를 출발, 교토를 향해 서쪽으로 나아가는 다케다의 앞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있는 하마마츠성이 가로막습니다. 군사의 수가 훨씬 뒤떨어지는 이에야스는 농성 작전을 취해, 쳐들어 오는 다케다군에 대비합니다. 하지만 다케다군은 이에야스를 무시해 하마마츠 성벽아래를 그냥 지나치려고 합니다.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이야에스지만 이때는 아직 혈기를 가진 젊은이었지요. 이대로 통과시키는 것은 가문의 수치라며 가신들의 의견도 듣지 않은채, 미카타가와라에 진군합니다. 이에야스가 인솔하는 도쿠가와군의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미카타가와라 전투(2) 이야에스 고립되다, 후타마타오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미카타가와라 전투(2) 이야에스 고립되다, 후타마타오성 공방전 겐키 3년(1572년) 도토미에 침공한 다케다 신겐의 별동대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후타마타오성을 포위했습니다. 히토고토자카 전투(히토고토자카)를 펼친 다케다 신겐의 본대와 이누이성(犬居城)으로 움직인 별동대가, 하마마츠성(浜松城)의 북동에 위치하는 후타마타오(二俣尾城)성을 포위했습니다. 성을 지키는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부하 나카네 마사테루(中根正照)와 아오키 사다하루(青木貞治), 마츠다이라 야스야스(松平康安)였습니다. 공격하는 다케다측은 신겐의 아들 다케다 가쓰요리(武田勝頼)를 주력으로 한 부대였지요. 후타마타오성은, 텐류우강과 후타마타오강에 둘러싸인 대지 위에 쌓아 올린 천연의 요충지에 위치한 성이라 공격하기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미카타가와라 전투(1) 혼다 타다카쯔의 분전, 히토코토자카 전투 일본 전국시대;미카타가와라 전투(1) 혼다 타다카쯔의 분전, 히토코토자카 전투 겐키 3년(1572년) 도토미에 진출해 온 다케다 신겐과 그것을 맞아 싸우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이에 미카타가와라 전투의 전초전인 히토코토자카 전투(一言坂の戦い)가 있었습니다. 상경한 뒤 노부나가와 사아가 험악해진 요시아키가 가장 의지한 것은 전국 최강이라 구가된 가이의 다케다 신겐이었습니다. 결국 겐키 3년(1572년) 본거지 쯔즈지가사키관(躑躅ヶ崎)에서 출진한 신겐은 호조 우지마사의 원군 2,000을 포함한 약 2만 5,000의 대군세를 3개로 나누어 각각 다른 루트로 침공합니다.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가 인솔하는 5,000의 군세는 시나노의 이이다 방면에서 미카와로 남하해 오쿠미카와(奥三河)에 침공하고, 이에야스군..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케다 신겐, 상경을 시작하다. 진정한 목적은?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다케다 신겐, 상경을 시작하다. 진정한 목적은? 겐키 3년(1572년) 말 가이의 다케다 신겐이 드디어 상경을 목적으로 원정을 시작합니다. 가이의 호랑이 신겐도 이제 노쇠한 무렵, 그는 서쪽으로 원정을 떠납니다. 원정의 목적은 상경입니다. 이미, 신겐보다 어린 우에스기 겐신이나 오다 노부나가도 상경을 했었고, 당시 노부나가와 불화가 된 15대 무로마치 막부 장군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요청도 있어, '수도를 지배하는 사람은 천하를 지배한다'라고 말해졌던 전국시대, 그는 상경의 길을 떠납니다. 하지만 이를 절대 상경이 목적이었다 단언할 수 없는 점도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 신겐의 출진이, 정말로 상경 목적이었는지에 대해 정리해 보려 합니다. 이때는 이미 12월도 중순을 지난 무렵..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케다와 오다가 엎치락 뒤치락, 이와무라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케다와 오다가 엎치락 뒤치락, 이와무라성 공방전 겐키 3년(1572년) 다케다 신겐의 중신 아키야마 노부모토(秋山信友)에게 공격받으면서도 농성을 계속하고 있던 이와무라성이 함락 당했습니다. 이와무라성은 미노국의 남동부에 위치해, 동쪽은 시나노, 남쪽은 미카와에 접하는 장소로 교통의 요소이며,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 일은, 그 노부나가의 아버지 오다 노부히데(織田信秀)도 눈치채고 있어, 가마쿠라 시대부터 이 땅을 지키는 토야마가의 후예인 이와무라 성주 토야마 카게토우(遠山景任)에게 자신의 여동생 요쯔야노 가타(おつやの方)를 정실로 시집가게 해 이와무라성을 수중에 넣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카게토우와 오쯔야노 가타의 사이에는 아이가 없어 오다 노부나가의 5남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다 노부나가, 히에이잔 렌라쿠지를 토벌했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다 노부나가, 히에이잔 렌라쿠지를 토벌했다? 겐키2년(1571년) 오다 노부나가가 히에이잔 렌라쿠지를 토벌했습니다. 전국시대의 승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조해 주세요.(전국시대의 승려) 히에이잔 렌라쿠지는 12세에 출가한 사이쵸(最澄)가 렌라쿠 4년(785년)에 승려의 자격을 얻은 직후 히에이잔에 입산합니다. 그 후, 코우닌(弘仁) 14년(823년)에 렌라쿠지로 이름을 바꾼 천태종의 총본산입니다. 이 당시 절은 단순히 종교기관이 아니었습니다. 정치와 종교아 완전히 구분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절은 많은 승병을 거느리는 군사 세력이기도 했습니다. 제72대 시라카와덴노는 심지어'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은, 카모강의 물의 흐름, 주사위의 눈 그리고 히에이잔의 승병이다'라고 했다고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천하재패의 제일의 장애물, 나가시마 잇코우잇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노부나가 천하재패의 제일의 장애물, 나가시마 잇코우잇키 겐키2년(1571년) 오다 노부나가가 자신에게 대항한 나가시마 잇코우잇키에 대해 공격을 시작 했습니다. 이시야마 전투가 발발해 이시야마혼간지와 노부나가가 본격적으로 대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켄뇨의 격문은 이세의 나가시마의 원증절의 조금도 종문도에게도 닿습니다. 이세 나가시마(長島)는 기소가와, 나가라가와, 이비가와라고 하는 3개의 강이 합류해 이세만에 유입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강이 삼각지를 고리와 같이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와쥬우(輪中) 지대로 불렸습니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함께 치수공사를 해서 서로간의 협력 체제가 강고하고, 지역의 결집이 단단했습니다, 그들을 한군데 묶는 것이 바로 간쇼지(願証..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케다와 호조, 후카자와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다케다와 호조, 후카자와성 공방전 겐키2년(1571년) 다케다와 호조가 후카자와성(深沢城)의 소유권때문에 격돌한 '후카자와성 공방전(深沢城攻防戦)'이 끝났습니다. 이마가와 우지자네를 물리치고, 스루가를 손에 넣은 다케다 신겐에게 있어서 이 후카자와성은 이웃나라 사가미와 국경을 접하는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그것은 사가미를 본거지로 하는 호조 우지마사(北条氏政)에 있어서도 같았지요. 어떻게든, 이 땅을 손에 넣고 싶은 우지마사는 신겐의 칸바라성(蒲原城)을 점령하려던 사타토우케(薩埵峠)에서 큰 피해를 입은 에이로쿠 12년(1569년) 이후에도 가끔 후카자와성에 출병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이 성을 지키는 것은 다케다측의 코마이 마사나오(駒井)였습니다. 겐키 원년(1570년) 우지마사는 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숨통을 뚫다, 가타다 전투와 사와산성 함락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노부나가 숨통을 뚫다, 가타다 전투와 사와산성 함락 겐키 원년(1570년) 오다 노부나가와 아자이 나가마사, 아사쿠라 요시카게 연합군이 격돌한 '가타타 전투(堅田の戦い)'가 있었습니다. 아네가와 전투(아네가와 전투)로 오미의 아자이 나가마사와 에츠젠의 아사쿠라 요시카게의 연합군에 승리한 오다 노부나가는, 이대로 나가마사의 본거지 오타다성을 공격하자는 가신의 진언을 뿌리쳐, 오타다성 근처의 토라고젠산(虎御前山)에 쌓아 올린 성채와 요코야마성(横山城)을 키노시타 히데요시에 지키게 한 것으로 끝을 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교토로 돌아오는 길에 아네가와의 전장으로부터 도망간 아자이의 가신, 이소노 가즈마사(磯野員昌) 등이 지키는 사와산성(佐和山城)을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 등에 포위하게 하.. 더보기 이전 1 ··· 10 11 12 13 14 15 16 ··· 5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