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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천하재패의 제일의 장애물, 나가시마 잇코우잇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천하재패의 제일의 장애물, 

나가시마 잇코우잇키



 겐키2년(1571년) 오다 노부나가가 자신에게 대항한 나가시마 잇코우잇키에 대해 공격을 시작 했습니다.


요시아키의 반 노부나가 동맹



 이시야마 전투가 발발해 이시야마혼간지와 노부나가가 본격적으로 대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켄뇨의 격문은 이세의 나가시마의 원증절의 조금도 종문도에게도 닿습니다. 이세 나가시마(長島)는 기소가와, 나가라가와, 이비가와라고 하는 3개의 강이 합류해 이세만에 유입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강이 삼각지를 고리와 같이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와쥬우(輪中) 지대로 불렸습니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함께 치수공사를 해서 서로간의 협력 체제가 강고하고, 지역의 결집이 단단했습니다, 그들을 한군데 묶는 것이 바로 간쇼지(願証寺)라고 하는 혼간지 절 이었습니다. 이들은 법주 켄뇨의 격문에 응해 나가시마 잇코우 잇키를 일으킵니다.


간쇼지(願証寺)의 모습



 결국 노부나가에 계속 반발하고 있던 나가시마의 혼간지 문도들이 결국 이토 시게하루(伊藤重晴)를 공격해 나가시마성을 빼았고, 노부나가의 남동생 노부오키(信興)가 맡는 오와리의 오기에성(小木江城)을 공격해 노부오키를 할복하게 하고  이세의 다키가와 가즈마스(滝川一益)를 패주 시킨다는 사건이 발발합니다. 노부나가의 당면 목표가 이시야마혼간지에서 나가시마로 바뀐 순간이었습니다. 노부나가는 조정을 개입시켜 일단 이시야마혼간지나 아사이, 아사쿠라의 두사람과 강화합니다.  그리고, 다음 해 겐키2년(1571년)  5만이라는 대군으로 나가시마의 잇코우 잇키를 공격합니다.



점선으로 표지된 곳이 나가시마입니다



 나가시마 잇코우잇키는 총지휘를 하고 있던 시바타 가쓰이에에게 부상을 입혀 그 대군을 불과 몇일에 철퇴시켜 버립니다. 이 때 예전부터 노부나가와 함께한 용장 우지이에 보쿠젠(氏家卜全)이 전사합니다. 이윽고, 덴쇼 원년(1573년)에 아자이, 아사쿠라 연합을 무너뜨린 노부나가는 그 해의 9월, 6만의 대군을 인솔하고 이세의 각 성을 점령한뒤에, 다시 나가시마 잇코우 잇키를 공격합니다. 이 2번째의 공격은 반대로 기습을 당해 하야시 미치마사(林通政)가 죽음을 맡고, 노부나가 자신도 위기에 빠집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한다면 노부나가가 아니지요. 노부나가는 심기일전하고 이번에는 장기전을 생각한채로 덴쇼 2년(1574년), 노부나가는 3번째로 나가시마 공격을 개시합니다. 나가시마는 노부나가의 천하 패도의 길에 큰 장애물 중 하나였습니다. 나가시마 잇코우잇키와 노부나가가 어떻게 되었는가는 또 다음 포스팅에 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