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센고쿠시대

일본 전국시대 영주편; 멍청한 것인가 시대를 잘못만난 것인가, 이마가와 우지자네 일본 전국시대 영주편;멍청한 것인가 시대를 잘못만난 것인가, 이마가와 우지자네 덴쇼 3년(1575년), 이마가와 우지자네(今川氏真)가 상경해 교토 쇼코쿠지(相国寺)에서 부친의 원수, 오다 노부나가와 대면했습니다. 동해도 제일궁이라 불리며 천하를 노리던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당시 일개 시골 무장이었던 오다 노부나가의 칼에 오케하자마(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쓰러지고 맙니다. 죽은 아버지의 뒤를 이은 것은 바로 이마가와 우지자네입니다. 보통 우지자네는 아버지만 못해 나라를 망친 리더로 묘사됩니다. 그러면 정말로 우지자네는 무능했을까요? 다케가의「고요군감」은 신겐을 빨아주는 것으로 유명한데, 여기서는 우지자네를 비판하지만, '마음은 매우 강하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당시 상황상 훌륭한 리더였던 요시모토의 급작스런 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히사히데, 노부나가에게 첫 번째 반란을 일으키다 일본 전국시대; 히사히데, 노부나가에게 첫 번째 반란을 일으키다 덴쇼 원년(겐키4년 1573년) 말,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요청에 따라 오다 노부나가 포위망에 참여하고 있던 마츠나가 히사시데가 항복해 다몬성(多聞城)을 노부나가에 양도했습니다. 이 마츠나가 히사시데(松永久秀)는 그 생애에 2번 노부나가에 항복하고, 2번 칼을 섞었습니다. 처음은 오다 노부나가가 제15대 무로마치 막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받들어 상경했을 때 바로 항복해 츠구모카스(作物茄子)를 바쳐 오히려 노부나가에 마음에 들어 요시아키의 가신이 되었습니다.(마츠나가 하사히데) 그 후, 노부나가에 2번 반기를 들어, 그 2번째 반란에서는 장렬히 폭사합니다만, 이 때도 노부나가는 히라구모(平蜘蛛)를 주면 모반을 용서한다고, 마왕이라고 칭해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아자이를 멸망시키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노부나가, 아자이를 멸망시키다 덴쇼 원년(1573년) 8월 27일, 오다 노부나가의 군세가 북 오미의 아자이 나가마사의 본거지 코타니성에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노부나가와 각축을 벌인 아자이, 아사쿠라는 아네가와 전투 등이 있은 뒤로 노부나가가 우세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노부나가는 에츠젠을 공격하는 한편, 아사쿠라가와 동맹 관계에 있는 아자이가에 책략을 걸고 동시 있었습니다. 바로 북 오미의 무장들에게 은밀히 오다측에 가담하게 한 것이지요. 그 책략이 성과를 내서 오미 야마모토산성(山本山城)의 성주 아쯔지 사다유키(阿閉貞征)가 오다측에 붙습니다. 이것을 절호의 기회라 생각한 노부나가는 재빨리 아자이가의 본거지 코타니성에 주력 부대를 향하게 합니다. 이를 안 아사쿠라 요시카게는 자신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아사쿠라를 공격하다, 토네사가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아사쿠라를 공격하다, 토네사가 전투 덴쇼 원년(1573년) 에츠젠의 아사쿠라 요시카게를 오다 노부나가가 추격한 토네사가 전투(刀禰坂の戦い)가 있었습니다. 아네가와의 전투 이후로도, 오다 노부나가에게 저항을 계속하고 있던 에츠젠의 아사쿠라 요시카게와 오미의 아자이 나가마사 그들의 노부나가 포위망은 제일의 거물인 다케다 신겐의 죽음 이후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쇼군 요시아키를 교토에서 추방한 노부나가는 계속해 오미로 쳐들어갑니다. 물론, 노부나가의 타겟은 아자이 나가마사와 아사쿠라 요시카게였습니다. 나가마사의 거점 오다니성(小谷城)을 포위한 노부나가군에 대해 아사쿠라의 원군은 성의 북측에 진을 쳤습니다. 노부나가는 먼저 이 원군에 공격을 개시합니다. 그런데 얼마 뒤, 이 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아사쿠라를 멸하고 에츠젠을 정벌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노부나가, 아사쿠라를 멸하고 에츠젠을 정벌하다 덴쇼 원년(1573년) 오다 노부나가가 에츠젠의 전국 다이묘 아사쿠라를 멸망시킨 '에츠젠 정벌(越前征伐)' 있었습니다. 아네가와 전투이후 도망친 아사쿠라와 아자이는 계속해서 노부나가와 반목합니다. 그러나, 덴쇼 원년(1573년) 드디어 노부나가는 대군을 인솔해 에츠젠으로 진공을 개시합니다. 보통이 아닌 기세를 느낀 요시카게(義景)는 서둘러 2만의 군사를 인솔해 히키타성(疋壇城)으로 향합니다. 요시카게는 기세등등한 노부나가 군세에 성을 들어가기 전부터 공격을 받아, 겨우겨우 히키타성에 들어 갔습니다. 노부나가는 재빨리 이번에는 성으로 향해 총공격을 개시합니다. 심상찮은 오다군의 기세에 중신 야마자키 요시이에(山崎吉家)를 잃어, 간신히 본거..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도요토미 히데츠구 모반죄로 할복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도요토미 히데츠구 모반죄로 할복 분로쿠 4년(1595년) 7월 15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카 도요토미 히데츠구가 모반의 죄에 의해 할복해 향년 28세로, 불과 4년간만 관백 자리에 있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츠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누나인 토모(とも)와 미요시 요시후사(三好吉房) 사이의 장남으로 에이로쿠 11년(1568년)에 태어났습니다. 16세에 히데요시의 가족의 한 명 시즈가타케의 전투(시즈가타케 전투)로 첫 출진이 됩니다. 다음 해의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에서는, 히데요시를 설득해 스스로가 총대장이 되어 도전합니다만, 이야에스에게 참패하고 맙니다.(나가쿠데 전투) 히데요시의 조카이기에 직위를 얻었다는 오명을 벗어내고 싶었던 그는 오히려 오명을 거듭해 버렸습니다. 18세가 된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시카가 요시아키, 노부나가에게 쫓겨나 쇼군직 복위를 도모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시카가 요시아키, 노부나가에게 쫓겨나 쇼군직 복위를 도모하다 덴쇼 원년(1573년) 무로마치 막부 제15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있는 우지 마키지마성(槇島城)을 오다 노부나가가 공격했습니다. 어린 시절 쇼군직 계승과는 거리가 멀어 절에 들어가 생활을 하던 중, 미요시 삼인중과 히사히데의 손으로 쇼군이 죽고, 허수아비 쇼군이 세워지자, 이에 분노한 요시아키는 여러 세력을 끌여들여 자신이 쇼군이 되려 합니다.( 요시아키, 코호쿠지를 탈출하다) 그러나 상대는 그 미요시가, 많은 전국 다이묘들은 그에게 답장을 해 주지 않지요. 그러던 그를 구해준 것이 오다 노부나가, 노부나가는 파죽지세로 상경해 요시아키를 쇼군으로 만듧니다.(수도에 입성한 노부나가) 그런 노부나가를 '아버지'라고 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다 노부나가, 요시아키의 니죠고쇼를 태우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다 노부나가, 요시아키의 니죠고쇼를 태우다 겐키4년(덴쇼 원년 1573년) 오다 노부나가가 니죠고쇼(二条御所)에 불을 지른 '상경 방화 사건(上京焼き討ち)'이 있었습니다. 상경후, 계속해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요시아키와 갈등을 겪던 노부나가는, 요시아키가 깃들이는 니죠고쇼가 있는 상경일대를 불질러 버립니다. 루이스 프로이스의 「일본사」에 의하면 그 땅에 있던 모든 사원이 소실해, 주변의 2~3리에 있는 50개의 마을이 태워져 마치 마지막 심판의 날같았다 하지만 「신초코기」에는 '상경에 방화했다'고 밖에 써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진위가 의심스런 히에이잔 토벌(히에이잔 렌라쿠지를 토벌했다?)때도 '모든 것을 다 태워 , 눈도 뜰 수 없는 모양이었다' 라고 되어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이..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케다 신겐의 마지막 전투, 노다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다케다 신겐의 마지막 전투, 노다성 공방전 덴쇼 원년(1573년) 상경 중이었던 다케다 신겐이 도쿠가와의 노다성(野田城)을 공격했습니다. 이 덴쇼 원년, 신겐은 53세, 겐신은 44세, 노부나가가 40세, 히데요시와 이에야스는 아직 30대였지요. 자신의 운명을 알았던 것인지, 신겐은 작년부터 상경에 착수합니다. 충분히 천하를 노릴 수 있있던 신겐은 만반의 준비를 한 상경이었습니다. 아직 풋나기인 이에야스를 미카타가와라(미카타가와라)에서 격파한 신겐은 이에야스의 거성 하마마츠성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노다성을 목표로 합니다. 그리고 덴쇼 초 노다성을 포위한 신겐은 공격을 개시합니다. 미카타가와라에서 대패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에야스는 원군을 보내는 보지만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미카타가와라 전투(5) 신겐, 히로히데의 목을 노부나가에 보내다 일본 전국시대; 미카타가와라 전투(5) 신겐, 히로히데의 목을 노부나가에 보내다 겐키 3년(1572년) 승리한 다케다 신겐이 수급을 확인했습니다. 미카타가와라 전투가(미카타가와라) 끝난 다음날, 신겐은 죽인 무장의 확인을 실시합니다. 그 중에는, 이에야스와 동맹 관계에 있던 오다 노부나가의 원군 히라테 히로히데(平手汎秀)의 목도 있었습니다. 그는 노부나가의 모리야꾸(傅役; 스승역)인 중신 히라테 마사히데(平手政秀)의 삼남(손자라고 하는 설도 있음)입니다. 마사히데는 젊은 날의 노부나가가가 기발한 패션을 하고, 양아치들의 리더가 되고, 날뛰어 오와리의 망나니로 불리고 있었을 무렵,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노부나가에 호소한 인물입니다.(히라테 마사히데의 할복) 노부나가가 정말로 생각이 없지는 않았기에, 자신에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