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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인물편/영주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다 노부나가, 히에이잔 렌라쿠지를 토벌했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다 노부나가, 히에이잔 렌라쿠지를 토벌했다? 



 겐키2년(1571년) 오다 노부나가가 히에이잔 렌라쿠지를 토벌했습니다. 전국시대의 승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조해 주세요.(전국시대의 승려)


 히에이잔 렌라쿠지는 12세에 출가한 사이쵸(最澄)가 렌라쿠 4년(785년)에 승려의 자격을 얻은 직후 히에이잔에 입산합니다. 그 후, 코우닌(弘仁) 14년(823년)에 렌라쿠지로 이름을 바꾼 천태종의 총본산입니다. 이 당시 절은 단순히 종교기관이 아니었습니다. 정치와 종교아 완전히 구분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절은 많은 승병을 거느리는 군사 세력이기도 했습니다. 제72대 시라카와덴노는 심지어'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은, 카모강의 물의 흐름, 주사위의 눈 그리고 히에이잔의 승병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육천마왕이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히에이잔은 단지 걸림돌로 보였겠지요.



히에리잔렌라쿠지


 당시 노부나가는'사면초가'의 상태였습니다. 에츠젠의 아사쿠라 요시카게, 오미의 아자이 나가마사 연합군에다 미요시 삼인중이 나가시마 잇코우 잇키를 일으켜( 나가시마 잇코우잇키) 주위는 적뿐이었지요. 신흥 종교인 이시야마 혼간지와도 교전중인 데다가, 맹장 다케다 신겐의 움직임에도 주의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원래는 이즈음에서 멸망했겠지만, 오다 노부나가는 굴하지 않습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그의 결정은 하나씩 적을 물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정확히 그 무렵, 아자이, 아사쿠라 연합군의 무사가 노부나가와의 전투에서 패주한 뒤 히에이잔에 도쳐, 렌라쿠지가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노부나가는 이에 경고를 계속하나, 렌라쿠지는 묵살하고 맙니다.



반 노부나가 연합



 아무리 승병이 강하다고 해도 그들은 어디까지나 승려, 그에 비해 노부나가군은 정예 중 정예입니다. 겐키 2년 9월에 노부나가는 오미의 젠류지(善立寺)를 공격한 김에 비와코 부근 사카모토까지 진군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부나가가 이대로 교토로 돌아간다 라고 생각할 때에 노부나가는 갑작스레 히에이잔 공격을 발표합니다. 당연히 그의 중신 아케치 미쓰히데, 사쿠마 노부모리 등은 깜짝 놀라 주군을 말립니다. 당연히 노부나가는 이를 묵살합니다. 결국 그는, 히에이잔을 토벌했습니다. 본당은 물론이요, 중요한 불상이나 경전도 죄다 재가 되어 도망치는 사람들은 잡아 죽여 여자, 아이, 승려를 포함한 3천명남짓이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히에이잔 토벌이 진짜일까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쓴「신초코기」에는, 


・・・안개와 같이 다 태워버려・・・눈도 뜰 수 없는 모양었다. 수천의 시체는 뿔뿔이 흩어졌으니, 불행한 운명이었다.


 라고 히에이잔 토벌의 이야기가 써져 있습니다. 하지만 「신초코기」는, 저자가 직접 보지 않은 노부나가의 일들도 상세하게 쓰여진 것들도 있는데다, 다른 기록들가 많이 차이가 나는 부분도 있어, 이야기를 모아서 쓴 것도 있지 않는가 라 생각합니다. 한편, 예수회 신부가 쓴 「일본서교사(日本西教史)」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모든 승려를 도륙 해,・・・사원을 태우워, 맹수와 같이 찾아 다니도록 명해 군사를 동굴 속에 도망쳐 숨은 사람들 마저 찾아 내 모두 태워 죽였다.

 

하지만 그 역시 다른 기록에서는 실제 역사와는 다른 소문들을 그대로 쓰고 있기 때문에, 기록의 진위에 대해서는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한 승려가 히에이잔을 방문했을 때 쓴 일기에 의하면


 본당은 관리가 되지 않아 낡았고, 등 조차 2~3개 만이 켜져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승려는 거의 산에서 떠나, 사카모토 근처에서 여자와 놀고 고리대금을 하는 등 호화 삼매경에 빠져 학업을 소홀히 하고 있다. 


 라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시가현 교육위원회의 발굴 조사에서 큰 화재가 있으면 당연히 남게되는 초토의 자취나, 인골등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아, 노부나가의 히에이잔 토벌에 의문을 한층 더합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히에이잔렌라쿠지 토벌



 하지만 히에이잔에 노부나가가 쳐들어간 것은 명백해 보입니다. 다만, 도망친 아자이나 아사쿠라의 무사를 잡으러 간 것이겠지요. 히에이잔의 타락한 승려들은 노부나가를 배신하면서도, 설마 노부나가가 쳐들어 올 것이라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종교가 정치를 지배하는 당시 일본에서, 히에이잔은 다소 광오한 태도를 취해도 무장이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노부나가는 정치와 종교가 다름을 명백히 하며, 타락한 히에이잔에 쳐들어가 패주한 적 무장들만을 잡았겠지요. 이는 히에이잔의 자긍심에 큰 스크래치를 냈을 것이고, 그들은 히에이잔 쇠퇴의 모든 원인을 노부나가에게 전가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아마 노부나가의 히에이잔 렌라쿠지 토벌의 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