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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고쿠시대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케다 신겐의 적남 요시노부의 할복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케다 신겐의 적남 요시노부의 할복 에이로쿠10년(1567) 아버지 다케다 신겐에 의해서 유폐 되고 있던 적남 요시노부가 할복 했습니다. 텐분7년(1538년)에, 가이의 다케다 신겐의 장남으로 정실 산죠노가타와의 사이에 태어난 타케다 요시노부(武田義信)는 아버지의 애정을 받으며 자랍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노부토라를 쫓아낸 일의 반작용인지, 자신의 아들에 대해서는 무한한 애정을 쏟은 것 같습니다. 텐분 21년(1552년) 요시노부가 15세 때 스루가의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딸과 결혼했을 때에는 거국적으로 축하했고 다음 해 아시카가 요시테루에게 이름의 한 글자를 받아 요시노부라 자칭했을 때에도 매우 기뻐해 집까지 신축해 버렸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 다음 해에는 앞의 이마가와에 사가미..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전국 3효웅 마츠나가 하사히데, 대불전을 불태우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전국 3효웅 마츠나가 하사히데, 대불전을 불태우다 에이로쿠10년(1567년) 사이토 도산, 호조 소운과 함께 전국 3효웅으로 불리는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미요시 삼인중과의 싸움으로 도다이사의 대불전을 불태웠습니다. 이녀석은, 보통 인간이라면 무서워서 할 수 없는 것을 세 가지나 했다. 첫번째는 주인을 죽인것, 두번째는, 쇼군을 암살한 것, 그리고 마지막은 대불을 태워버린 것이다. 어느 정월의 주연 때, 노부나가는 가신 마츠나가 히사시수를 이런 말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소개했습니다. 그 '신불도 무서워하지 않는 마왕'이라 불리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이러한 평을 받았습니다. 한편 루이스 프로이스에게는 '천하의 지배자' 라고 평 되고 후세에는 전국 3효웅 이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이 마츠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이나바야마 공방전(2) 노부나가, 천하로의 제일보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이나바야마 공방전(2) 노부나가, 천하로의 제일보 에이로쿠10년(1567년) 오다 노부나가의 침공을 받고 있던 사이토가의 거점성 이나바야마성이 함락 됐습니다. 미노의 중신인 미노 삼인중을 설득한 오다 노부나가는 이나바산 밑의 이노쿠치성(井ノ口城) 밑에 불을 질러, 이나바산 공략의 봉화를 들었습니다.(이나바야마성 공방전) 미노 삼인중을 포함한 오다군은 총원 1만 5천, 한편 사이토군의 상세한 수는 불명하지만 이보다는 적었을 것 같습니다. 사이토군은 성의 방어력을 살려, 저항합니다. 하지만 미리 군사를 분산해 배치하고 있던 일이 오히려 치명적으로 작용해 버립니다. 노부나가는 사방으로 시시가키(鹿垣・목책)을 쌓아 올리고 산을 둘러싸, 성과 외부의 연락을 차단하는 '포위작전(取り籠め)'을..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기타편; 다케다 신겐의 시나노 재패의 원동력, 인재활용법 일본 전국시대 기타편; 다케다 신겐의 시나노 재패의 원동력, 인재활용법 다케다 신겐이 지배하는 가이의 동쪽은 호조의 사가미, 남쪽은 이마가와의 스루가라고 하는 대국들이 있고 서쪽은 거대한 아카이시 산맥이 방해되고 있었기 때문에 북쪽의 시나노를 다케다의 영지로 하는 것은 아버지 노부토라의 시대부터 오랜 세월의 꿈이었습니다. 당시의 시나노는 슈고 오가사와라 나가토키(小笠原長時)로 후츄(府中)에서 통치하고 있었지만, 그 범위는 분지주변의 치기미, 아즈미와 이나만으로, 그 이외는 현지에 뿌리내린 코쿠진들의 군웅할거인 상황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추방한 신겐은 스와를 점령하고 북시나노를 좌지우지하는 무라카미 요시키요와 힘을 겨루던 신겐은 결국 텐분 22년(1553년)에 요시키요의 본성을 점령해 시나노 전 국토를 거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이나바야마성 공방전(1) 노부나가의 미노 공격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이나바야마성 공방전(1) 노부나가의 미노 공격 에이로쿠10년(1567년) 미노의 사이토 요시오키(斉藤義興)의 가신 미노 삼인중이 오다 노부나가측에 붙어 이나바야마의 밑의 이노쿠치성(井ノ口城)에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미노의 살무사' 사이토 도산은 그 파란만장한 인생을 자신의 아들 요시오키와의 전투로 끝냅니다.(니가라가와 전투) 하지만 그는 죽기 전에 쓴 유언장에서 자신의 사위인 노부나가에게 미노를 양도한다고 했습니다. 그 때 출진은 했지만 장인을 도울 수 없었던 노부나가는 그 '양도장'을 대의명분으로 '장인어른을 애도하는 전투'라며 가끔 미노로 진공합니다만 전선은 교착되어 있었습니다. 노부나가를 처음 본 도산은 '미노는 사위의 것이 될 것이다'라고 자신의 아들 보다 노부나가가 기량이..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제2차 갓산토다성 공방전(1) 사슴과 늑대의 사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제2차 갓산토다성 공방전(1) 사슴과 늑대의 사투 에이로쿠9년(1566년) 갓산토다성을 포위중인 모리 모토나리가 항복을 신청한 아마고 요시히사의 생명을 보전해 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쿠니진에서 어느덧 전국 다이묘로 발을 내딛고 있는 모리가, 이번에는 아마고가를 목표로 정합니다. 전국 굴지의 책략가 모토나리는 먼저 이와미 은광을 점령해 자금줄을 끊고(이와미 은광 쟁탈전), 하쿠로쿠성을 점령해(하쿠로쿠성 공방전) 주위의 성들을 손에 넣습니다. 이제 고립된 갓산토다성을 모토나리는 3만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포위합니다. 에이로쿠8년 처음으로 출진한 모토나리의 손자 테루모토(輝元), 모토하루(元春)와 차남 모토하루(元長)의 아들 킷카와 모토나가(吉川元長)가 합류해 이 전투의 주역이 모두 모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제 2차 갓산토다성 공방전(2) 아마고가의 멸망과 재흥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제 2차 갓산토다성 공방전(2) 아마고가의 멸망과 재흥 에이로쿠9년(1566년) 아마고가가 갓산토다성을 모리군에 포위되어 결국 항복을 표명했습니다. 아마코 하루히사는 산인(山陰) 8개국을 지배하는 대영주였지만, 하루히사 만년에 동족의 대립에 의해 분쟁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이쓰쿠시마 전투의 서막) 모리가에서 이 분란을 획책했다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이렇게 혼란에 빠진 아마고를 가만이 놔둘 모리가 아닙니다. 아키의 모리 모토나리는 아마고가의 영지에 진공하기 시작합니다. 하루히사는 필사적으로 응전하지만 이미 기세를 탄 모토나리, 게다가 모리는 대립하고 있던 큐슈의 오오토모와도 화해해 총 전력을 대 아마고가에 쏟아 붓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루히사가 급사하고 뒤를 이은 아들 요시히사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신겐의 미노와성 공략, 나가노가 멸망과 신가게류 탄생 일본 전국시대; 신겐의 미노와성 공략, 나가노가 멸망과 신가게류 탄생 에이로쿠9년(1566년) 다케다 신겐의 공격을 받고 있던 미노와성(箕輪城)이 점령당해 성주 나가노 나리모리(長野業盛)가 할복해 나가노가가 멸망 했습니다. 가이의 호랑이 다케다 신겐이, 에치고의 용 우에스기 겐신과 가와나카지마 전투를 반복하던 에이로쿠 초 신겐은 동시에 이 우에노에도 끊임없이 진공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 우에노 서부에 위치하는 미노와성의 성주는 관동 굴지의 지장 나가노 나리마사(長野業正)입니다. 그리고 그의 가신 중에는 무예로 명예 높은 카미이즈미 노부쯔나(上泉信綱)나 히키다 카케카네(疋田景兼)가 있어 아무리 신겐이라도 쉽게 정복하지 못하고 공격을 반복하다 지치고 있었습니다. 에이로쿠4년(1561년) 성주 나리마..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아시카가 요시아키, 코호쿠지를 탈출하다 일본 전국시대; 아시카가 요시아키, 코호쿠지를 탈출하다 에이로쿠8년(1565년) 나라의 코후쿠지에 유폐 되고 있던 가쿠게이(覚慶)가 호소카와 후지타카(細川藤孝)등의 안내로 오미로 탈출했습니다. 이 가쿠게이라고 하는 스님은 누구일까요? 어릴 적에 나라의 코후쿠지에 들어가 29세까지 불문 외곬의 길을 걸을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무로마치 막부 제 12 쇼군 아시카가 요시하루, 형은 제13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바로 무로마치 막부 15 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입니다. 요시테루를 살해한 히사히데와 미요시 삼인중은 차기 쇼군에 요시테루의 아버지 요시하루의 남동생의 아들 아시카가 요시히데를 옹립하려합니다. 원래 아시카가 막부는 대대로 쇼군직을 이어야 할 적자 이외는 절에 들어가 승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 암살당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 암살당하다 에이로쿠8년(1565년) 무로마치 막부 제 13 대장군 아시카가 요시테루가 마츠나가 히사시데를 비롯한 미요시의 세력에 의해 암살되었습니다. 오닌의 난(오닌의 란) 이후 오다 노부나가가 허울만 남은 막부를 파괴하기까지 무로마치 막부는 껍데기만 남아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수도에서 쫓겨나기까지한 쇼군의 위상을 찾으려는 아시카가 요시하루의 유지를 이어 당시 최고의 권세를 가진 미요시 나가요시를 상대에 분투한 제13 대장군 아시카가 요시테루는 여러번의 교전 끝에 나가요시와 화해해 에이로쿠 원년(1558년) 겨우 교토로 돌아와 쇼군 직무를 해 나가게 됩니다. 유능하고 무용이 뛰어난 쇼군이 직무를 잘 해나가는 것을 모두가 반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쇼.. 더보기